2015년은 여성 혐오 대란의 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지난 1월 15일, 일명 ‘김군’이라는 18세 소년이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테러 집단인 IS로 떠났다. 2월 2일,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잡지 ‘그라치아’에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위험해요’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칼럼에서 “현재의 페미니즘은 뭔가 이상하다. 무뇌아적인 남성보다 더 무뇌아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성 혐오적 발언이라 생각하여 분노한 사람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운동을 벌여 맞대응했다. 최근엔 팟캐스트 ‘옹달샘의과 꿈꾸는 라디오(이하 옹꾸라)’ 방송에서 개그맨 장동민 씨의 발언이 문제가 됐고, Mnet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에 출연한 래퍼 송민호 씨의 랩 가사에서도 여성 혐오를 나타내는 문구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10년 전 ‘된장녀’로 시작해서 온라인을 위주로 이루어지던 여성 혐오는 미디어를 통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여성 혐오에 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성 혐오’라는 말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한국은 여성이 살기 충분히 좋은 사회다. 여자 대통령도 나왔고,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서도 여자 합격률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 초등교원임용시험에는 여성 합격자가 90%를 넘었으며, 여성의 대학진학률도 남성의 대학진학률을 추월했다. 이렇게 여성들이 살기 좋은 사회인데 여성 혐오라니, 시대 착오적 생각 아닌가?

된장녀부터 김치녀까지, 여성 혐오의 A to Z

시대 착오적 생각이라는 의견을 말하기 전에 먼저 ‘여성 혐오’라는 단어를 먼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여성 혐오를 정의하면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나 여성, 혹은 여성성에 대한 강한 편견을 말한다. 하지만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도쿄대 우에노 치즈코 교수에 따르면 여성 혐오는 단순한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넘어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제2의 성으로 인식하는 모든 언어와 행동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결혼한 여성이 남성을 내조해야 한다’와 같이 사소한 것들도 여성 혐오로 볼 수 있다. 여성 혐오의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그 중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온라인상의 여성비하 단어의 발전사는 화려하다. 된장녀로 시작해서 개똥녀, 군삼녀, 신상녀, 루저녀, 패륜녀, 지하철 막말녀 등 일부 몰상식한 여성을 전체 여성으로 일반화시키는 끝없는 ‘OO녀 시리즈’에 이어 보슬아치(여성의 성기와 벼슬아치를 합쳐 여성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신조어), 개보년(개년과 여성의 성기를 합쳐 여성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말) 등의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네이트 판의 게시글 제목에서 된장녀, 보슬아치, 꼴페미 등의 단어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은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디시인사이드 등의 특정 사이트를 가리지 않고 다음 아고라 토론방, 네이버 뉴스 댓글, 네이트 판 등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상에서도 관찰된다. 내용적인 차원에서도 ▲외모 ▲성과 여성성 ▲여성의 나이 ▲여성의 능력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멸시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한다. 이렇듯, 온라인상에서의 여성 혐오는 특정 사이트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그렇다고 여성 혐오를 온라인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최근의 사례에서 국민대 남학생들이 같은 학교의 여학생에 대해 ‘가슴은 큰데 얼굴은 못생겼으니 비닐을 씌워놓고 하자’등의 발언을 한 것이 발각됐다. 이 사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의 정하경주 씨는 “국민대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성희롱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성적 대상화 같은 행위들이 여성 혐오에 기반을 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보는 여성 혐오적 발언들이 가벼운 농담과 같은 놀이로 변질된 것이다.
여성 혐오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여성 혐오는 “경제불황으로 남성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남녀평등은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여성 혐오가 가부장 사회의 붕괴와 기존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중앙대 신관영 교수는 “여성 혐오는 지금 여성의 열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만들고 있다”라며 “특히 한국사회에는 남자가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자가 스펙을 쌓고 있다는 불안함이 내재돼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 여성부가 출범하고, 행정과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2010년 국회 및 지방의회 여성의원 비율을 보면 총 지방의회 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은 20.3%로, 95년 2.2%에서 18.1%p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근무 환경은 아직도 남성보다 열악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4년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8.6%인데 비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평균인 62.3%에 모자라는 57%에 머무른다. 남녀격차에 관한 OECD 국제비교를 보면 한국인 여성이 남성에 비해 37%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3월 기준 비정규직의 비율도 남성의 경우 26.2%인데 비해 여성의 경우 39.9%로 드러났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리천장’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가 혐오를 지운다

온라인과 사회가 보여주는 도를 넘은 여성 혐오에 여성 혐오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여성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가 가장 두드러지는 예이다. 이들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 문제의식을 공론화하자고 주장한다. 메갤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일베의 여성 혐오를 그대로 *미러링하여 보여준다.
이들은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김치녀, 보슬아치, 된장녀를 김치남, 자슬아치, 남성의 성기를 사용해 편협한 마음을 비웃는 단어인 소추소심 등으로 변형했다. ‘여자는 삼 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삼일한’은 ‘남성은 숨 쉴 때마다 패야 한다’는 ‘숨쉴한’으로 표현된다. 여성 혐오에는 남성혐오로 맞서겠다는 의지다. 또한, 스스로를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바꾼 정반대 세계인 이갈리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 갤러리를 합쳐 ‘메갈리아의 딸들’이라고 스스로를 명칭하며 여성 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격한다. 메갤 이용자들은 “혐오 대상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자 (과거에는 외면됐던) 여성 혐오 문제가 공론화 됐다”며 “(여성 혐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메르스 관련 정보가 있을 것만 같은 메갤이 현재의 메갤로 변화하기까지는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한국 여성 두 명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사실인 것처럼 전해진 것에서 시작됐다. 두 여성을 향한 비난은 당시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있었던 메갤에서 가장 심했다. 메갤의 유저들은 ‘김치녀’, ‘원정녀’ 등 여성 혐오 표현을 사용하며 두 여성을 비난했다. 이후 보도가 잘못 된 사실이라는 정정보도가 나왔음에도 비난이 계속되자 한 유저가 이를 비난하면서 현재의 메갤이 탄생했다. 하지만 메갤의 유저들이 활동한지 3일만에 미러링 용어들이 차단되는 등 여성 혐오 단어에는 둔감하던 사이트들이 남성에 대한 용어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메갤에 대한 억압이 가해지자 일부 사용자들은 메갤에서 나와 ‘메갈리아’란 사이트를 만들어 ▲여성 혐오 근절 운동 모금 ▲불법 몰카 근절 운동 ▲미혼모를 위한 기부팔찌 공동 구매 ▲여성 혐오 반대시위 등 여성과 관련된 활발한 운동을 하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이제 대한민국은 여성이 더 살기 좋은 나라라 말한다. 하지만 여자 대통령은 이제서야 나왔고,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서도 여자 합격률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남자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이다. 서울초등교원임용시험에는 여성 합격자가 90%를 넘었고 여성의 대학진학률도 남성의 대학진학률을 추월했다지만 여전히 사회 고위계층의 대다수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폭력이 커지고 그 폭력에 대한 분노와 박탈감이 여성 혐오로 표현된다. 폭력은 약자를 향해 흐르고, 여성은 그 약자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여성들의 반격은 더 이상 여성이 약자로 있지 않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고?>의 저자 윤보라 씨는 여성 혐오의 해결책으로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장 크게 꼽는다. “여성 혐오 현상에 주목하며 그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찾기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긴급한 정서를 느끼는 것입니다.”



*미러링: 거울처럼 상대와 비슷한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심리학 방법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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