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표현주의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들과 독일 표현주의인 다리파 화가들은 원시주의에 매혹되었다는 점과 화면에서의 강렬하고 주관적인 색채 사용과 자유로운 구성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야수파 화가들이 아직도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았음에 반해 독일 표현주의인 다리파 화가들은 물질적이고 타락한 세계에서 느끼는 인간의 억압과 비명을 보다 적극적인 형태 왜곡과 감정에 충만한 색채로 그렸다는 점에서 야수파들과 달랐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미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긍정적 재생을 이루어 새로운 유토피아의 도래를 촉구하고자 하였다.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서 나타나는 불안정함, 긴장, 반항적인 성격은 독일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독일 표현주의는 문명의 쇠락에 대한 두려움이자 재생에 대한 희망이었다.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 본능적이고 자유롭게 생동하고자 하는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의 열망은 특히 19세기 초의 독일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표현주의란 양식이 등장하게 된 것은 1910년과 11년 사이이다. 1914년 파울 페히터는 자신의 저작 <표현주의>에서 표현주의는 ‘인상주의에 반대한 독일 미술’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저작이 나오기 전까지 표현주의는 인상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의 모든 미술에 다 적용되었다. 지금은 표현주의와 엄격히 구분되지만 마티스(야수파), 피카소 및 블라크(입체파), 그리고 미래주의자들까지 모두 표현주의로 칭했다. 1912년 쾰른에서 열린 특별연합전의 도록에 의하면 표현주의는 표현형태를 단순화 그리고 강화시켜 새로운 리듬과 화려한 색채를 획득하고 장식적이거나 기념비적인 형태들을 창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표현주의자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었다. 이들은 외향은 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불변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고 봤다. 표현주의자들은 바로 이 너머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그것을 이들은 본질이라고 했다. 표현주의자의 한 사람인 칸딘스키는?이를 ‘내적 본질’, ‘내적 울림’, 그리고 ‘내면의 소리’라고 한다. 따라서 표현주의는 서양의 문화사를 계속 이어주는 이원론 즉, 물질과 정신을 분리시키는 것의 극단적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잘 그려진 사과의 이미지는 관람자에게 사과로 판독된다. 하지만 사과로 재현된 그 이미지의 구체적 현실은 물감 덩어리라는 칠일 따름이다. 칠은 그 자체 물리적 영역이고 매체에 불과하다. 르네상스 이래 추구되어온 진실이 표현주의자들에 의해 허구로 주장된다. 하지만 표현주의자들은 온전히 매체의 물리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칠이 재현될 수 없는 대상 즉, 내면을 재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표현주의의 아이러니가 목격된다. 순수한 본질을 재현하고 했지 순수한 그 실체를 미술에 구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진실의 추구는 표현주의 이후 서양미술사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완전한 실체를 구현한 지점에서 미술가들은 항상 곤경에 처해왔다. 표현주의의 칠은 미술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는 이 극명한 아이러니 즉, 칠의 물리적 속성 그 자체가 진실인가 아니면 칠 너머의 이미지가 진실인가 하는 난제를 제공해 준다.

권애경 기자 coricori04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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