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로 접어들면서 한 가지 고민이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문성이 있는가? 국제어문학부라는 전공을 택했던 순간, 동아리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선택했던 순간, 직장을 선택했던 순간, 결혼을 결심한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던지, 나는 어떠한 키워드를 가지고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는지 불현듯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질문의 자락에서 나는 어떠한 오류를 범하는 사람인지 점검해 보고 싶었다. 나의 생각과 선택은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는 전제로 그저 살아온 것은 아닌지.
전세계적인 막스 플랑크는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후 독일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자신이 정립한 양자물리학 개념에 대한 강연을 반복하였고 3개월 간 20회 이상 거듭되자 그의 운전사도 강의 내용을 다 외웠다고 한다. 하루는 막스 플랑크의 컨디션이 좋지 않자 그의 운전사는 강의 내용을 다 외우고 있으니 청중석 앞자리에서 자기 모자를 쓰고 쉬라고 권유하였다. 운전사는 들은 대로 수준 높은 강연을 성공리에 진행하였고, 강의가 끝날 즈음 한 교수가 예상 외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운전사는 이렇게 단순한 질문은 자신의 운전사도 대답할 수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겠다고 하며 재치있게 위기를 모면했다.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오류 중, ‘운전사의 지식’이라는 오류가 있다. 지식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과 연구를 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진짜 지식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운전사의 지식(Chauffeur’s knowledge)이 있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는 곳에만 투자하라는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강조한다. 그는 능력의 범위를 파악하고 그 범위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의 능력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 범위를 서두르지 않되 단단히 구축해 나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입, 취업,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업을 끝내고 나면 각자의 등급과 영역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오늘날의 이 시대에서 부단히 나를 만들어 가는 노력과 능력의 범위를 확장해 가는 연습은 그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인정할 줄 아는 양심,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은 진정 나를 깨닫게 해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때 이 마음은 더 크고 넓어진다.
능력의 범위 못지 않게 능력의 내용도 중요하다. SNS가 주된 통로인 이 시대에 우리는 쉽게 정보를 소비한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다 보면 자칫 나의 사고력과 주견을 잃기 쉬운 것이다. 정보를 소비하는 자에서 정보를 생산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해 본 것, 내가 가 본 곳, 내가 발견하고 알아낸 것 말이다. 일방적인 정보의 수용은 무의식중에 우리를 그저 받고 얻는 것에 익숙해진 수동태형 인간으로 만들기 쉽다. 주워 들은 것을 전하기 바쁜 운전사의 지식의 오류에서 벗어나 나의 전문성을 깨닫고 진짜가 되어야겠다. 자기의 것을 생산하고,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는 능동태형 한동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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