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휠체어를 타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걸으면 길어봤자 10분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가도 20분이 넘게 걸린다. 건물에 들어가고 싶어도 얼마나 턱과 계단이 많은지, 장애인은 들어가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먼저 타려고 한다. 작동버튼에 장애인 표시가 뻔히 있는데, 자기들 편하고자 할 때만 장애인 행세다.
 장면2. 앞이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팔, 다리를 갖고 있다 해도,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건물을 찾아 헤매면 이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인도가 없는 길을 걷다 보면, 뒤에서 차가 오는지 알 길이 없으니 피한다는 것은 하고 싶어도 못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를 보고 비웃는지, 힐끔거리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느낌으로 다 알 수 있다. 그게 더 스스로를 비참하게 한다.
 장애인들이 삶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이 정도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리라.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를 거창하게 하며 장애인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 시설은 예나 지금이나 걸음마 수준이다. 2005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장애인 관련 예산 비율의 평균은 GDP 대비 1.2% 수준인데, 한국은 0.1%로 최하위 수준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내 가족 일이 아니라고 최소한의 관심도 두지 않는다면, 장애인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제곱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이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예수 대하듯 돌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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