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포항맑은단편영화제’를 다녀오다

수능 한파 때문이었을까, 늦가을의 심술 때문이었을까. 매서운 바람으로 쌀쌀했던 지난 11월 13일, 포항시와 한동대가 공동으로 주관·주최하고 포항 MBC가 후원하는 ‘제1회 포항맑은단편영화제’가 포항 시립중앙아트홀에서 열렸다. 객석에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잠시 영화를 보러 온 나이 지긋한 할머니, 과제를 잠시 내려놓고 발걸음 한 대학생, 교복을 입은 풋풋한 학생들까지. 옹기종기 좌석에 앉아 어우러진다. 그리곤 노을이 내려올 무렵, 포항 도심 속에서 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화려한 레드카펫도 없었지만, 청춘과 젊음을 주제로 한 드라마, 다큐멘터리, 코미디, 멜로에 이르는 12편의 작품의 이야기로도 영화제는 충분했다.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통한 공감과 웃음이 존재했던 영화제의 단 하루, 6시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맑은 의도’를 담은 영화제
이번 포항맑은단편영화제는 포항시와 한동대가 함께 기획한 영화제다. 한동대에서는 과거 여러 번 교내학생들의 작품의 영화제가 열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영화제는 교내행사로 지역주민이 참여하기 힘들었고, 참여자 대부분은 학생으로 제한돼 있었다. 한편, 지속해서 포항시에서는 시를 대표할만한 영화제를 만들기 원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나누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필요가 맞물려 첫 번째 포항맑은단편영화제가 한동대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영화로 구성되게 됐다. 또한,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또 다른 동기부여를, 포항 지역사회에는 부족한 문화적 충족을 제공하게 됐다.
학생들은 이러한 영화제에 ‘맑은’ 의도를 담았다. 기존의 지역 영화제는 다큐멘터리영화제, 청소년영화제, 노인영화제 등 장르나 제작자 계층, 촬영대상의 구분을 통해 특색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성연태(언론정보 08) 총감독은 포항맑은단편영화제의 경우 영화제 시장 안에서 이미 포화상태인 트렌드를 추구하지 않고, 작품의 ‘맑은 의도’를 컨셉으로 잡았다고 한다. “‘맑은 의도’라는 부분이 자칫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맑은 의도란 지나친 폭력성, 염세주의적 세계관, 의도가 불분명한 작가주의 등을 지양하고, 따뜻하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 뚜렷한 메시지를 추구하는 의도를 뜻합니다”라며 “쉽게 말해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아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감명을 주는 영화가 저희 영화제가 추구하는 영화들입니다. 궁극적으론 염세주의나 폭력성에 물든 영화들에 염증을 느낀 감독과 관객들이 포항맑은단편영화제로 모여들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감성을 영화에 그리다
영화제는 포항MBC 박지혜 아나운서의 사회로 막이 열렸다. 영화제는 성장통, 설렘&흥미, 가족애, 용서, 위로의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각 섹션의 주제를 통해 영화들이 담고 있는 따듯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것이 성연태 총감독의 설명이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잔잔한 울림을 주거나 기분이 좋아지거나, 다시 한 번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어요. 내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도하고, 우리들의 청소년 시절을 회고하게 하기도 하니깐요. 위로받아야 마땅할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도 하고…”
첫 번째 섹션에선 누구나 청소년 시절 성장하기 위해 겪었던 아픔, 성장통을 다뤘다. 작품들은 일찍이 성장통을 겪었던, 또는 겪어오고 있는 대학생들의 젊은 감성을 잘 살려냈다. 조엘리사벳 감독의 <Welcome to my life>에선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재외동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한동대 재외동포 학생으로서의 그녀가 느꼈던 장벽에 대해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어느 한 나라 색깔을 가지는 것이 아닌 두 나라 사이에서 두 색깔 모두 갖기를 원했던 그녀의 성장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였다. 또한, 그녀의 재외동포 학생으로서의 고민은 같은 한동대 학생인 기자에게도 그들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게 했다. 용서 섹션에서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진정한 용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영화제는 웃음과 공감도 놓치지 않았다. 박준형 감독의 <삽질하기 좋은 날>에서는 대학생인 두 남매의 연애담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남매의 코믹한 연기는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서울노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황민아 감독의 <동행>은 감독의 실제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6년 전 발병한 치매와 합병증으로 인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그들은 같은 요양병원 안에 있지만, 사정으로 인해 만날 수 없었다. 이에 감독은 가족들에게 만나지 못하고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게 해주자는 제안을 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마침내 몇 년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장면에서는 타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가까이 있는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그들만의 ‘맑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각 섹션의 순서가 끝난 뒤엔 영화의 감독과 관객이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두 번째 섹션이 끝난 뒤, 한 관객의 “섹션의 이름이 설렘과 흥미입니다. 제 시각에서는 영화에서 설렘과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곳에서 느껴야 하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조병훈 감독은 “저도 (제 작품에서 설렘을) 못 느껴요, 섹션의 이름을 제가 정한 게 아니라…”라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시상식에서는 ▲관객상 <재회>의 심찬양 감독 ▲감독상 <보기 좋다>의 조병훈 감독 ▲작품상 <닿을 수 없는>의 정세영 감독이 상을 받았.
이번 영화제를 관람한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장규열 교수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며 “그 동안 학교 안에서만 했던 영화제가 포항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앞으로는 학교 안에 있는 행사에서도 시민들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포항 북구 주민인 김순자(64) 씨는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부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알 수 있었다”라며 “포항시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포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 포항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화제의 숨겨진 뒷이야기
영화제는 물 흐르듯 안정적으로 진행됐지만, 이러한 진행을 위해서는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는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있었다. 그 영화제의 뒷이야기를 성연태 총감독에게 살짝 물어봤다. “아무래도 시와 함께하는 공식적이고 규모 있는 행사는 처음이다 보니 이것저것 실수하는 부분 없이 진행하도록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점들이 쉽진 않았죠.”
성연태 총감독은 영화제 오프닝과 첫 섹션을 지휘 감독할 때의 떨림과 설렘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관객 출입 통제, ppt, 영상, 조명, 음향, 아나운서 멘트 타이밍 등 모든 걸 큐시트와 무전기 하나에 의존해서 컨트롤 해야 했거든요.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잘 움직여준 팀원들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영화제의 홍보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포항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홍보가 어려웠어요. 티켓판매제나 예약제가 아닌 한 회 이뤄지는 ‘무료영화제’다 보니, 영화제 당일까지도 관객 인원 규모 파악이 힘들었죠. 무조건 힘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홍보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느낌이 마치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무조건 많은 포항시민에게 알려야 했으니까요. 포항시 곳곳에 포스터를 부착하거나 페이스북 이벤트 진행은 물론이고 육거리 실개천에서 부스도 설치해서 오프라인 홍보도 했어요. 이 모든 걸 한 달 안에 해야 하려니 어려움이 많았죠.” 끝으로 성 총감독은 “결벽증도 좀 있고, 성격도 유별난 리더와 함께하느라 팀원들도 많이 고생했을 거에요. 더 많이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네요. 이 자리를 빌려 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당신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영화제였다고 전하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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