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서 바라 본 호미곶 등대의 모습

‘내 삶의 등대’, ‘등대 같은 사람’과 같은 표현을 할 때가 많다. ‘등대’란 사물 자체가 우직하고 묵묵하게 곁을 지켜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8년간 우직하고 묵묵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는 등대가 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인 포항 ‘호미곶 등대’가 그 주인공이다. 호미곶을 직접 보고, 호미곶 등대가 108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힘쓰고 계신 호미곶 등대 관리소장 김원도(56) 씨를 만나 호미곶 등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이와 더불어, 그에게 ‘등대지기’로서 28년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호미곶 등대, 대한국민 생명의 빛으로 남아
하늘은 높고 청명하며 햇살은 곱게 내리쬐어 가을임이 무색했던 지난 26일, 한국의 동쪽 끝 포항 호미곶을 찾았다. 포항의 유명 관광지답게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수많은 사람이 ‘인증샷’을 찍는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상생의 손’ 앞이다. 사진 속에서만 봤던 구조물이 실제 눈앞에 있다는 신기함도 잠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흰색의 높은 등대였다. 인파를 벗어나 간 그곳은 저 멀리 들리는 파도가 넘실대는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를 제외하고 너무도 고요했다. 사진을 찍던 몇몇 사람들도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이내 자리를 떴다. 안내판을 보니 이 등대의 이름은 ‘호미곶 등대’, 1908년에 처음 불을 밝혔다고 쓰여 있었다. 주변을 빙빙 돌아 찾은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고, ‘등탑’이라고 쓰인 낡은 팻말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했다. 자물쇠로 잠겨 있고 오래된 등대이기에 이제 더는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가던 관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1982년 이후로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관광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며 “아직 등대로 잘 쓰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1908년부터 2014년 지금까지, 108년 동안 포항 앞바다를 밝게 비춰 어선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美를 담은 호미곶 등대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오래된 등대라는 명성 외에도 호미곶 등대는 아름다운 외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보통의 등대는 투박하게 지어져 제 기능에 충실했다고 하면, 호미곶 등대는 등대라기보단 하나의 예술 조형물과 같은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기초에서부터 등탑의 중간 부분까지 곡선을 그리면서 폭이 좁아지는 형태를 띠는 데, 입구와 창문 하나하나에 우아한 장식으로 조형미를 더했다. 일반인에게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관리소장님께 간절히 부탁하여 내부를 잠깐 들여볼 수 있었는데, 내부는 마치 1908년에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등탑 내 각 천정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문양인 오얏꽃(李花文)이 새겨져 있고, 안쪽 문에 장식된 금색의 화려한 무늬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등명기가 있는 꼭대기까지 총 108계단이라는 철제 계단은 나선형으로 천장을 향해 있었다. 이렇듯 호미곶 등대는 대한제국의 미(美)를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더 돋보이는 듯했다.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슬픈 역사
뿐만 아니라, 호미곶 등대는 ‘근대 건축사의 살아있는 학습장’이라고 일컬어진다. 무려 26.3m, 약 6층 빌딩 높이의 등대를 철근을 사용하지 않은 채 벽돌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 만들었기 때문. 이러한 축조 기술은 오늘날에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다만, 호미곶 등대는 한국 사람이 건축한 것은 아니고, 기술력이 좋은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한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호미곶 등대의 가슴 아픈 역사다. 1907년 9월 9일 일본수산실업전문대학 실습선 쾌응환(快應丸)이 대보 앞바다를 항해하다가 암초에 좌초돼 승선자 일본인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일본은 이 사건이 한국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하였으며, 해난사고 발생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청일 전쟁의 승리로 의기양양하던 일본 담당자는 뻔뻔스러울 만큼 당당했다. 결국, 일본의 등쌀에 못 이긴 대한제국은 어쩔 수 없이 자국의 예산으로 등대를 제작하게 된다. 더욱 애통한 점은 실습선 사고 15개월 만에, 착공(4월 13일)한 지 8개월 만에 6층 높이의 등대가 완성됐다는 점이다. 기계도 변변치 않던 시기에, 빨간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려 26.3미터를 세워 올려야 하는 것을 8개월 만에 완공했다니. 한국인들을 강제노역하며 얼마나 재촉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호랑이의 꼬리’인 호미곶은 지형적으로 돌출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배가 포항항으로 들어올 때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다. 배가 돌출된 부분을 보지 못했을 때, 앞으로 직진하면 그대로 사고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다 근처에 암초도 많아 사고의 위험이 더욱 크다. 호미곶 등대가 처음 생긴 이후로 100년이 넘도록 호미곶 등대는 이렇게 위험한 바다를 다니는 수많은 배들의 길잡이가 돼주었다. 호미곶 등대는 일본인 때문에 만들어졌을 지라도, 이후 수많은 대한국민들을 위한 생명의 빛이었던 것이다.

‘호미곶 등대’의 감동을 이은 채 국립등대박물관(이하 등대박물관)으로 향했다. 호미곶 등대 옆에는 대한민국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등대박물관은 산업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점차 사라져 가는 항로표지 시설과 장비들을 영구히 보존, 전시하고 그 역사를 조사, 연구하기 위해 건립됐다. 호미곶 등대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등대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다양한 항로표지 유물도 직접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체험관도 마련돼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들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훌쩍 떠나기 좋은 화창한 가을이다. 호미곶 등대의 감동과 국립등대박물관의 유익함을 고루 느낄 수 있는 호미곶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등명기: 등대에서, 불을 켜 비추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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