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음대에 진학한 임대환(상담심리 03) 씨를 만나다

▲ 지난 21일, 양덕 한 카페에서 만난 임대환 씨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기자 주화

한동대에서 자랑하면 안 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피아노, 기타, 영어 실력이다. 음대도 없는 대학교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잘 다루는 것을 자랑하면 안 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한동대엔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 음악을 단순히 취미로 그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버클리 음대에 진학한 한동인이 있다. 임대환(상담심리 03)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저 음악이 좋던 그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모인 버클리 음대로 향한 사연을 지금부터 들어보자.

Q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이름은 임대환입니다. 나이는 32살이고요. 재수해서 03학번이에요. 처음에는 상담심리,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그러다가 사회복지 전공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군악대 제대 후에 공연영상 전공에서 연극 관련된 음악들을 많이 맡아서 했죠. 버클리 음대에선 ‘Electronic production and design’이라고 컴퓨터로 음악 만드는 것을 전공했어요.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피아노고요, 요즘에는 작곡 쪽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Q 원래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렇죠. 음악은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어요. 어려서 이모께서 하시는 피아노 학원에서 컸었고, 원래 클래식 피아노는 보통 사람들이 치는 체르니, 하농, 바흐 정도까지만 치다가 그만뒀는데, 나중에 늦바람이 불어서 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작을 좀 늦게 한 편이죠. 22살 되던 말쯤에,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임대환 씨는 ‘음악이 좋아서’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2주 만에 배운 트럼펫으로 군악대에 들어간 것도, 피아노 파트로 들어온 병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아노를 치지 못했지만 초코파이 박스를 건반 모양으로 만들어 보이싱 연습을 하고, 피아노를 만져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다음부턴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을 한 것도, 제대하고 나선 혼자 화성악 이론 등 음악 공부를 한 것도 ‘음악이 좋아서였다’고 했다. 그 마음이 버클리 음대로의 발걸음에 힘을 보탰다.

Q 버클리 음대는 어떻게 진학하게 되신 건가요?
“군악대 제대 후, 음악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연극 음악을 맡아서 하고, ‘석류’라는 재즈 밴드에 들어가서 연주 활동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요. 그 시기, 버클리 출신이셨던 지금의 제 스승님께서 포항에 학원을 여셨어요. 알고서 간 건 아니고 제가 가르쳤던 학생이 거기에 가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 갔는데, 저보고 피아노를 한 번 쳐보라고 하시는 거에요. 저를 매우 좋게 보시고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셔서, 그때부터 버클리 진학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상담사를 앞으로의 비전으로 정할 것인지. 음악 쪽으로 진짜 한 번 해볼지 고민이었는데, ‘지금 안 하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열정이 제일 컸었던 것 같아요. 그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버클리 입학시험을 쳤죠.”

한동대 입학면접 당시, “한동대에 왜 지원하게 됐느냐”라는 질문에 임대환 씨는 “저는 버클리 음대에 가기 위해서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여기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면접관인 조준모 교수님께서 신기하게도 합격시켜 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땐 막연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딱 10년 뒤, 그는 정말 버클리 음대에 입학하게 된다.

Q 그렇게 시작한 버클리 음대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진짜 진짜 힘들었어요. 한동대는 전공과목 하나가 3학점이잖아요. 버클리는 2학점에요. 전공이 2학점이고 2시간 내내 수업하고 그렇게 16학점을 들어요. 그러니까 전공을 총 8개를 들어야 하는데, 그 비중 하나하나가 3학점 전공 이상의 것이에요. 굉장히 타이트하게 시키는 학교에요. 엄청 힘들어요. 열심히 하게 되니까 실력이 많이 늘기도 많이 늘죠. 그런데 진짜 진짜 힘든 학교였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낯선 타지 생활이 그를 힘들게 했다. 장학금을 받고, 부모님께서 지원을 해주셨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 부담이 컸다고 한다. 거기다 맥북과 300만 원 주고 산 중고차를 도둑맞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보통의 한국인들보단 잘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그래도 그에게 힘이 된 것은 버클리의 훌륭한 교수님들과 가르침, 그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었다.
“진짜 잘 배울 수 있어서. 버클리는 정말 좋은 학교더라고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랑 아무렇지도 않게 교류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분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 일단 좋은 커리큘럼으로 잘 배울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또한, 거기서 제가 신앙을 깊이 가질 수 있게 됐거든요. 차 도난 당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완전 패닉 상태였는데, 그때 저희가 위로 받을 수 있을 만한 따뜻한 교회를 찾게 됐어요. 좋은 교회인 동시에 따뜻한 공동체였죠. 그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임대환 씨는 2011년 5월에 버클리에 입학한 후 2년 8개월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2013년 12월 27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항에 살고 있는 그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상명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또한, 언론정보문화학부 이문원 교수가 대표로 있는 ‘C-virus’ 극단의 공연 음악을 작업하고 있다. 한동과의 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Q 만약에 다시 한동대에 다시 다니시게 된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싶으세요?
“일단 영어를 더 열심히 했을 거에요. 버클리를 위해서?(웃음) 근데 영어는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보통 영어는 취업하기 위해, 졸업하기 위해, 스펙을 위해 하는 공부잖아요. 솔직히, 그게 미국인이랑 만나서 얘기하면 아무짝에 쓸모 없거든요.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진짜 살아 있는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부분이나 내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영어로 된 것이 많아요. 진짜 영어를 잘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되는데 한국에선 영어를 단지 스펙 쌓는 공부로만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동대 다시 가면 ‘살아 있는’ 영어 공부를 할 것 같아요. 한동대는 또 그런 기회가 많잖아요. 교환학생들, 재외 학생들, 그런 친구들과 친해져서 영어를 더 열심히 하면 진짜 훨씬 좋은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한동대에서 꼭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진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뭐든지 간에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이 흘러가는 삶의 방향대로 살아가는 게 너무 잘못됐다고 보거든요. 사회 구조가 그렇게 된 거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친구들도 그렇게 가는 거겠지만요. 그것이 그 사람의 비전이면 모르겠는데, 회사의 부속품이 되어 살아가는 게 얼마나 아까워요. 근데 이렇게 인생 살기엔 너무 허무하지 않나? 진짜 하고 싶은 일 찾아서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우리나라 학업 과정 거쳤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원하는 게 뭔지 진짜 모르는 거 아니에요. 본인들 대학 입학 원서 쓸 때, 어떤 것을 배우는 과인지 모르고 쓰잖아요. 그냥 대학교 간판, 과 이름 정도만 알고 쓰잖아요. 근데 그 상태에서 대학교에 왔으면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Q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지금 크리스천 음악가으로서 음악으로 하나님께 더 영광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 CCM이라는 장르가 일렉트로닉한 쪽의 음악들은 잘 없고, 발라드 아니면 록이에요. 저는 일렉트로닉하거나, CCM을 하우스나 덥 스텝(dub step)처럼 트렌디한 사운드의 CCM 을 만들고 싶어요. 또 한가지는요, 제가 상담심리를 공부했잖아요. 그래서 음악이나 작곡 등을 통해서 심리를 치료하는 사람, 그런 음악치료 쪽으로 일하고 싶어요. 진짜 음악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쪽으로요.”

* “한동대는 시작점이다”
우선, 한동대에서 아내를 만났어요.(웃음)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했었고요. 사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문제가 많아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까진 한 사람의 인생설계에 대해 특별할 게 없잖아요. 저는 그래서 버클리가 아닌 한동대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겪었던 경험들, 그때 만났던 사람들, 거기서 시작되었던 꿈에 대한 열정이 다 합쳐져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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