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옴부즈맨이라고 하면 신문독자 또는 TV와 같은 대중매체의 시청자입장에 서서 비판이나 고충을 대신해서 처리해 주는 기구나 사람을 의미한다. 필자도 한동신문을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옴부즈맨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서라도 반대의 입장에 서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한동신문의 독자로서가 아니라 한동신문의 입장에서 독자들을 바라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신문은 한 사회를 바라보는 돋보기로서 한 부분을 확대해서 비춰주기도 하며, 전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중한 신문을, 한동이라는 사회를 비춰주는 돋보기로서의 신문의 중요성을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금 신문을 바라보는 옴부즈맨 또한 아무런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달, 새로운 한동신문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도서관 혹은, 기숙사등과 같이 학교의 곳곳에서 신문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한동신문을 바르게 읽지 않는다. 단지, 신문의 기사를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문을 돋보기의 용도가 아닌 다른 곳에 마구 이용한다. 한동신문은 기숙사에서 야식을 먹을 때 바닥이 더럽혀지는 것을 감싸주는 일 외에도, 휴지로서, 걸레로서 때로는 이러한 역할마저 하지 못한 채 구겨져 버려지는 일도 허다하다. 지금까지 한동신문은 우리 학교를 알리는 조용한 외침으로서, 학교 내부를 비춰주는 돋보기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잘해왔다. 기사의 내용과 질을 따지기 이전에 한동인으로서 우리의 신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차홍철(경영경제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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