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영어능력에 따라 유연한 영어강의 정책 필요

▲ 한동대는 개교 3년 후인 1998년 김영길 전 총장의 연설 이후 ‘국제화’를 기치로 삼았다. 이에 2001년 한동대의 명칭은 ‘한동대학교(Handong University)’에서 ‘한동 글로벌 대학교(Handong Global University)’로 변경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한동대의 대표적인 정체성 중 하나다. 한동대는 국제화를 위해 ▲외국인 교수 임용 ▲다양한 외국인 유학생의 수용 ▲영어강의 비율 증가 등 크고 작은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 중 ‘영어강의 비율’은 대외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표다. 하지만 국제화를 실현하기 위해 영어강의를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역효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본지는 재학생 3803명 및 국제관 거주 학생 225명을 대상으로 영어강의에 대한 만족도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는 재학생 476명, 국제관 학생 153명이다. 재학생 대상 설문조사는 9월 5~13일까지 학생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국제관 거주학생 대상 설문조사는 9월 11일과 12일 이틀간 점호 시 설문지를 직접 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본 설문조사는 영어 능력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실무영어강의를 어느 수준에서 시작했는지를 고려했다. 이는 영어배치고사를 통해 결정되는 한동대 학생들의 실무영어 시작 단계가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하게 공신력 있는 지표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 실무영어 단계별 시작 학생 수는 EF부터 시작한 학생(이하 EF)은 252명, EC부터 시작한 학생(이하 EC)은 112명, ERD부터 시작한 학생(이하 ERD)은 70명, EGC부터 시작한 학생(이하 EGC) 35명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제일 낮은 수준의 EF부터 EC,ERD, EGC의 순서로 분류했다. 또한, 국제관 거주 학생 대상 설문조사 응답자 중 영어가 모국어인 응답자는 12명,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응답자는 141명이었다.

 

▲ 전공 영어 수업 중 한 학생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A씨는 문과 출신 이공계열 학부생이다. A씨는 영어를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듣고 쓰는 것은 힘든 토종 한국인이다. A씨가 이번 학기 들은 과목은 M과목으로 문과 출신 학생이 이공계 전공을 듣기 위해서는 꼭 들어야 하는 교양 강의다. 이번 학기 M과목은 영어로 열렸다. A씨는 전공 실력 향상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왔지만, 첫 수업부터 난관이었다. 한국어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공계 과목을 영어로 들으려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종 한국인만 영어강의를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에 능숙한 학생에게도 영어강의는 난관이다. 교환학생 B씨는 한동대에 오기 전 먼저 한동대로 교환학생을 왔던 외국인 학생에게 제대로 된 영어강의를 듣고 싶으면 영어권 교수가 하는 강의를 들으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 교수가 진행하는 L강의가 자신의 전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첫 수업에서부터 교수는 “한국말이 편한 사람은 한국말로 질문해라”, “영어가 불편하면 PPT발표도 한국말로 해도 된다” 등의 통보를 했다. 또한, 수업 중에도 교수가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한국말을 섞어가며 설명했고, 학생들은 한국말로 질문하기도 했다. 교수가 한국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도 있긴 했지만 이는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일괄적인 의무 영어 학점, 많은 부작용 낳아
한동대 학생들은 일정한 정도의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고, 교수들도 주어진 영어강의 시수를 채워야 한다. 08학번 이후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33학점 이수 전공 시 12학점 ▲45• 60학점 이수 전공 시 21학점 ▲66학점당 이수 전공 시 24학점을 영어로 들어야 하고, 실무영어를 제외한 교양 9학점을 영어로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또한, 2010년 이후에 임용된 교수의 경우에는 한 학기당 의무 강의시수인 9시수(9학점)를 모두 영어로 강의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이 교수들 사이에서 완벽히 시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학교 측은 이를 권장하고 있다. 교무팀 백주흔 계장은 “원래는 한 학기당 9시수 이상 영어강의를 다 해야 하지만 강제로 검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 결과 한동대는 2013년 기준 약 33%에 달하는 높은 영어강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같은 해 영어강의 비율이 10% 내외인 서울대와 부산대, 경북대 등 유수 국립대와 25%를 상회하는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의 유수 사립대학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이다. 이로 인해 한동대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영어강의 비율 부문에서 8년 째 4위권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미리 책정해놓은 의무 영어강의 비율에 학생과 교수를 맞추는 방식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는 의무로 이수해야 하는 영어강의 학점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학생의 영어 수준에 따라 영어 전공•교양 강의의 만족도와 영어 강의 수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걸 영어로 하니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영어강의는 소수의 영어실력이 뛰어난 학생에게는 전공•교양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만 영어를 못하는 다수의 학생에게는 오히려 전공•교양 지식 습득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F의 47%, EC의 33%는 영어강의가 전공•교양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해, 도움이 된다는 의견보다 각각 10%, 9% 많았다. 반대로 ERD의 23%, EGC의 49%는 영어강의가 도움이 된다고 답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보다 각각 1%, 21% 더 많았다. 특히, 영어 수준이 가장 차이 나는 EF•EGC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EF는 영어강의의 효용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원이 48%, 긍정적인 의견을 표한 인원이 27%인 반면, EGC는 긍정적 의견 49%, 부정적 의견 28%로 EF와 정반대되는 현상을 보였다. 설문조사 의견란에서 한 학생은 “교양이나 전공수업을 영어로 함으로써 지식전달이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걸 영어로 하니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라는 의견을 표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전공지식을 얻기 위해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특정학과(UIL 등)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와 맞물려 영어강의 수에 관한 의견 또한 영어실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였다. EF 38%는 ‘영어강의가 많다’는 의견이 ‘적다’는 의견보다 18% 높은 반면, EC•ERD•EGC 는 ‘영어강의의 수가 적다’고 응답한 인원이 ‘많다’는 의견보다 각각 15%•14%•38% 많았다. 모두에게 동일한 영어강의 수가 주관적인 영어실력에 따라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달리 체감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학생들은 “(영어강의를)좀 더 줄였으면 좋겠다”라는 의견과 “(영어강의가)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한다”라는 상충된 의견을 설문조사 의견란에 제기했다.
한편, 국제관 학생의 경우 영어강의의 수가 충분하다는 의견(30%)과 부족하다는 의견(34%)이 고르게 나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전체 설문조사 결과와 흡사했다.
일부 학생은 설문조사 의견란을 통해 영어강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한 학생은 “영어로 진행될 경우 효율적인 과목과 한국어로 진행돼야 할 과목의 구별이 필요하다”라고 답했으며 또 다른 학생은 “영어전공, 교양 강의는 필수가 아니라 유창한 영어실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수강할 수 있는 기회로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영어실력활용능력 수준에 따라 집단을 달리 구성해야 할 것을 제안한 논문 또한 있다. 2013년 인하대학교 진성희•김학일 교수가 쓴 ‘전공 영어강의 만족도 및 학습효과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에 관한 연구’에는 영어활용능력 수준에 따라 집단을 달리 구성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 논문은 “(영어 전공강의가) 영어활용능력이 평균 이상인 학습자들에게는 전공내용에 대한 학습과 함께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영어강의를 수강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영어활용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학습자들의 경우 전공 내용습득 자체에 오히려 역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인 교수의 영어강의 ‘미흡’ 하지만 영어실력 향상엔 ‘다소 도움’
모든 표본에서 많은 학생들이 ▲한국인 교수의 영어강의가 미흡하다 ▲영어실력 향상에 다소 도움된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인 교수의 영어강의는 영어를 못하는 학생과 잘하는 학생 모두에게 ‘미흡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영어실력이 좋은 학생일수록 한국인 교수의 미흡한 영어강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EF•EC•ERD•EGC 모두 한국인 교수의 영어강의가 미흡하다는 의견이 다수(EF 33%•EC 29%•ERD 53%•EGC 66%)였으며 국제관 거주 학생 또한 부정적 답변이 긍정적 답변보다 12%가량 더 많았다. 이에 대해 한 학생는 의견란을 통해 “한국인 교수의 영어수업에서 발음이나 문법, 표현력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며 “(이러한 경우)전공수업은 전공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며, 영어교양은 쉬운 과목인데 비해 들이는 노력이 매우 커지고 소득 또한 높지 않다”라고 답했다. 또한, 국제관 설문조사 의견란에서는 ▲한국인 교수의 영어 유창성과 발음 문제 ▲100% 영어강의에 한국말을 섞어 쓰는 것 등의 한국인 교수에 대한 불만의 의견이 대다수를 이뤘다.
한편, 영어강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는 다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강의가 영어 실력향상에 도움된다는 학생은 40%였고, 도움되지 않는다는 의견은 35%였다. 각 영어 수준별 긍정과 부정의 비율 차이는 10%이내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국제화 지수에서 유명무실해지는 ‘영어강의 비율’
높은 영어강의 비율에 대한 대내적 평가도 좋지 않았지만 대외적 평가 또한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교육부와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에서 영어강의 비율 지표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로 한동대가 자랑하던 높은 영어강의 비율은 각종 평가의 ‘국제화 지수’ 점수에 더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에 교육부에서 주관한 대학교육 역량강화사업의 국제화 지수 평가기준은 ‘영어강의 비율 지표가 토픽(한국어능력시험) 4등급 이상의 외국인 학생비율’ 지표로 대체됐다. 중국, 동남아 등 비영어권 유학생들의 비중이 커져 영어강의 비율이 국제화 지표로서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제화 지수 지표변화는 반대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방청록 교무처장은 “우리 학교는 영어강의를 중심으로 국제화를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어어학능력 여부를 우선 판단하는 토픽 판단에서는 불리한 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경우 국제화 지수 점수 중 영어강의 비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29%에서 20%로 줄어들었다. 2012년, 2013년 국제화 지수 평가에서도 영어강의 비율이 각각 30%이상, 25% 이상이면 만점 처리돼 영어강의 비율 지표 만점대학이 대폭 늘어났다. 높은 영어강의 비율로 좋은 국제화 지수 점수를 받아왔던 한동대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위 권에 머물던 한동대의 국제화 지수는 2012년, 10위권으로 떨어졌고 그 후 2013년에 이르러서는 1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한동대의 커리큘럼은 현행과 같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방청록 교무처장은 “우리 학교가 그 동안 글로벌 대학을 표방해왔기 때문에 영어강의 문제에 조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며 “이(영어강의 커리큘럼 변동)에 대해 아직 특별한 입장은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무팀 백주흔 계장은 “학교는 앞으로 교원을 뽑을 때도 영어 강의를 더 잘하시는 분을 뽑을 것이다"며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해야 하는 분들이 늘어나므로 영어강의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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