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 184cm에 몸무게는 70kg가 조금 넘는 27살의 남자다. 당신이 내 옆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얼굴과 체형, 머리 모양 등으로 누구나 우리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자, 이제 조금 징그럽겠지만 당신과 나의 피부를 걷어내 보자. 보이는 건 벌건 근육들이다. 만약 당신과 나의 체형이 비슷하다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한 차례 더 벗겨보자. 이젠 꿈틀거리는 내장과 주름진 뇌, 그리고 곳곳에 뻗어있는 모세혈관들이 보인다. 당신이 나보다 웬만큼 크거나, 작거나, 가볍거나, 무겁지 않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임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번만 더 벗겨보자. 뼈대만 보인다. 골반의 넓이를 비교해 겨우 성별 식별만 가능한 정도다. 이처럼 뼈만 남은 우리는, 별 다르지 않은 존재다.
한동대와 ‘세상’의 다른 대학교가 나란히 서있다. 딱 보면 구분 가능하다. 우선 학교 이름이 다르고 내세운 정신이 다르다. 한동대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동’이라는 머리 모양과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얼굴이다. 한꺼풀 벗겨도 서로 다른 대학임이 티 난다. 학부중심교육이라는 대퇴사두근과 글로벌 대학이라는 광배근이 보인다. 한 번 더 벗겨보면 좀 헷갈려도 겨우 식별은 가능하다. 잊어버릴 때 즈음 나타나는 게시판에 붙은 만원과 무감독양심제도 덕분이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끝까지 다 벗겨 보자. 역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뼈대다. 이젠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뼈와는 다른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돈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사회를 굴러가게 하며 지탱하는 근본적인 ‘ 뼈대’가 다름아닌 돈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동대도 다른 대학과 같이 그 골격이 돈으로 구성된 것은 당연하다. 놀랄 필요도, 실망할 이유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은 돈이기에, 돈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이상론적 질문은 공허하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돈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집중되는지, 그 집중되는 돈을 위해 집중적으로 착취되는 곳은 어디인지. 이 질문을 던진 후에야 뼈대를 공유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체들을 비로소 식별할 수 있다.
자, 그럼 한동대에게 물어보자. 한동대 는 어느 영역에서 돈을 아끼려 하는가. 답에 대한 질문은 명확하다. 바로 인력이다. 최저가입찰제를 통해 하청으로 일 하는 청소 근로자들은 20년째 꾸준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경비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100일이 넘도록 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말한대로, “노동권은 저들이 강요하는 조건 속에서 저들이 주고 싶은 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할 권리로 축소되고 있다…임금보다 더 싼 상품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거꾸로 된 세 상의 학교>, 181쪽) 그렇기에, ‘하나님의 대학’에서의 하나님은 차라리 기독교의 신을 코스프레하는 맘몬에 가까워 보인다.
‘세상을 바꾸자’는 한동대에 다니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한동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싶기에 27살에 신문사 편집국장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동신문사 30기 수습기자를 모집하려 각 수업을 돌며 발표를 할 때에도 ‘why not change the world’ 대신 ‘why not change the handong’은 어떠냐고 제안 했다. 그러나 이제서야 내 배움이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한동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한동 역시 변화시켜야 할 세상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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