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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독도, 7광구14년 뒤 빼앗길 가능성 농후해
윤예준 기자  |  yunyj@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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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5  0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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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세계일보
 
하지원, 안성기, 오지호 등 한국의 유명배우들이 참여해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던 영화 <7광구>. 하지만 영화 <7광구>가 아닌 분쟁지역으로서의 7광구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자원의 보고 7광구   
 
제주 모슬포항의 서남쪽에 있는 마라도에서 149km 아래, 중국 퉁다오에서 247km, 일본 나가사키 현 도리시마에서 276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어도는 남북으로 1.8km, 동서로 1.4km의 크기를 가진 작은 수중 암초다. 이를 중심으로 남한 면적의 80%가 넘는 구역으로 획정된 것이 개발구역 '7광구'다.
 
옛 제주도의 구전민요에도 기록된 7광구를 정부에서 우리나라의 영토로 공표한 시기는 이승만 정권 (1948~1960년 집권)이 집권해있을 시기다. 1951년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영토’라고 새겨진 동판을 수중에 설치했으며, 1970년대에는 박정희 정부가 이어도를 우리나라 영토라고 선언했다. 또한, 2003년에는 해양기지를 건설하여 이어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공고히 하려 했다.    
 
7광구가 논란이 된 것은 이 지역에 많은 자원이 매장돼있기 때문이다. 2004년 실시한 탐사 후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연간 가스 수입량이 2,200만 t인 데 비해, 공동개발구역 동남쪽 중국 측 해상 광구의 가스 매장량이 10억t 이상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7광구 매장량은 3,600만t을 훨씬 웃돌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5년 미국의 우드로 윌슨 연구소의 보고서에는 7광구에 대해 ‘또 하나의 걸프만과 같은 자원의 보고’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7광구에 대한 탐사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일본의 소극적 개발, 왜?   
 
1947년 1월 일본의 제안으로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으로부터 오끼나와 해구까지를 범위로 하는 한일 공동개발협정이 체결된 이래 6년 후 공동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24년간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7광구 개발 지연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7광구를 둘러싸고 진행된 협정과 영유권 개념의 변천사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1970년 우리나라가 먼저 영유권을 선포했을 당시, 인접 국가 간의 대륙붕 경계는 해구를 따라서 경계를 긋는다는 자연연장 개념이 우세하던 시대였기에 영유권 주장이 가능했다. 이 시기에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이 없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기술력을 목적으로 한일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기존의 자연연장 개념과 달리 수역을 거리에 따라 균등하게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배타적 경제수역의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을 도입할 경우 한일 공동개발협정이 끝나는 2028년 상대적으로 일본과 가까이에 위치한 7광구의 70~80%를 일본에게 빼앗길 수 있다.  
 
80년대 이후 일본은 공동탐사를 중단했고 협약 제 3조에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탐사가 진행될 수 없음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앞서 진행된 7개지역의 탐사 중 5곳에서 석유부존 가능성이 발견됐지만 협약에 따라 단독 개발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석유공사는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역시 석유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석유공사의 <2010~2014 전략경영계획>에는 퇴적모델 도출을 목적으로 하는 탐사계획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불참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 
 
7광구를 위한 침묵
 
 ‘페르시안 걸프만이 기름의 진원지라면 동중국해는 천연가스의 또 다른 진원지가 될 것이다.”라고 미국 윌슨 국제 연구소가 말했듯, 7광구에 상당량의 천연자원이 매장돼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공동탐사 거부로 우리나라 2번째 유전개발이 지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조용한 외교
 
세계 각 나라의 해양영토 간 문제가 생기자 1999년 UN은 2009년까지 대륙붕한계위원회에 대륙붕 영토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각 나라 정부에 요청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탐사선 탐해 2호로 2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 조사를 마친 후 외교통상부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마침내 2009년 영토분쟁 방지를 위한 기준 마련을 목적으로 대륙붕 한계위원회의가 열린다. KBS의 '한중일 대륙붕 삼국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정식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표지 포함 8장의 예비문서만을 제출한다. 또한, 당시 대륙붕 정식문서제출과 관련된 민간 자문단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김영구 전 해양대 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예비문서조차도 내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예비문서 제출로 2012년까지 제출일을 연장받은 우리나라는 2012년 12월 뒤 늦게 정식정보를 제출했으며,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조용한 외교'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7광구, 비단 한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영토분쟁이 과열됨에 따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센가쿠 열도와 동중국해 등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 모두와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중국이다. 중국은 대륙붕한계위원회에 7광구 관련 정식정보를 제출하는 등 7광구를 자국의 영토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7광구 영토분쟁은 한 중 일 세 나라 간의 일시적이고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2006년 3월 7일 중국은 베이징에서 열린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실무회의에서 일본에 7광구 공동개발을 제안했고, 이를 성사시켰다. 이 구역은 과거 일본과 우리나라가 공동 탐사시추작업을 시행한 지역과 인접해있어 "개발 가능성이 없어 더는 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본의 말이 모순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중국은 바다 밑과 더불어 7광구의 상공을 방공식별구역(CADIZ)으로 설정하는 등 7광구에 대한 야심을 키워가고 있다. 한편, 대륙붕 한계위원회는 '영토분쟁 발생 시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를 원칙으로 삼고 있어 세 나라의 외교력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독도와 7광구 영토분쟁이 점점 미궁으로 빠지며,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7광구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만이 7광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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