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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 십시일반(十匙一飯) 필요해”‘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를 만나다.
이해진 기자  |  leehj@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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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5  00: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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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에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황유미 씨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황유미 씨는 입사한 지 2년 만인 2005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그녀의 나이 21세 때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아버지 황상기 씨와 이종란 노무사 등 많은 사람의 노력 끝에 2011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여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2심 재판이 2년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현재 황유미 씨 이외에 수많은 피해자가 산재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영화에 이종란 노무사로 표현된 인물은 굉장히 억척스럽게 나온다. 실제론 억척스럽다기보다는 따뜻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녀를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사무실에서만나보았다. 그녀에게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현재 반올림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반올림, ‘Sharp’라는 이름에 맞게 우리 단체는 ‘Solidarity(연대), Help(피해자 지원/상담), Action(실천), Research(연구), Public Relations(홍보)’의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저는 직업병 피해자 상담과 산업재해 신청 대리를 하는 ‘Help’의 일을 주로 했어요. 하지만 피해자 제보도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커서, 지금은 반올림 상임 활동가로서 ‘Help’의 일을 포함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어요.
 
Q 반올림이 만들어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인 고 황유미 씨가 2007년 3월 6일에 돌아가시고, 황유미 씨 아버님께서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게 됐어요. 그 당시 저는 민주노총 경기 법률원에서 노동상담을 하던 노무사였어요. 아버님께서 “내 딸의 병이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직업병 같다고 언론이나 사회단체, 정당에 호소해도, 삼성에 관한 문제는 다루기 힘들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삼성과 싸워 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 해, 11월 20일에 19개 단체가 규합해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발족을 하게 됐어요.
 
Q 집회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나요? 기업 측의 방해는 없나요?
 
정기적으로는 2주에 한 번씩 가족들의 1인 시위가 이루어지고, 비정기적으로는 이슈를 집중시켜야 할 때 이루어져요. 주로 서초동 삼성 본관이나 공장 앞에서 하고요.
기업 측의 방해는 정말 많아요. 피해자 가족들께서 주로 영정사진이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시는데, 몸싸움으로 다치기도 하시고 영정사진이나 피켓이 부러지기도 하는 경우가 계속되어왔어요.
 
Q 반올림 측의 산재 주장 근거는 무엇인가요?
 
현행법상 노동자가 피해를 증명하게 돼 있어요. 어떤 물질에 노출돼서 이 병에 걸렸는지, 그 물질에 얼마만큼 노출되었는지, 이 병과 그 물질과의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해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구조에요.
안타깝게도 뇌종양이나 희귀병의 경우, 발병 원인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아직 많이 부족해요. 현대 의학이나 과학의 연구가 아직 부족한 것뿐이지 직업병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닌데, 그 이유로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산재 불승인 당하고 있어요.
‘의심되는 개연성이라도 있으면 산재로 인정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전 예방의 원칙에 맞게 법의 구조를 바꾸고 그에 맞는 예방적 조치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에요.
 
Q 삼성 측은 노동자들이 발병 원인을 회사 책임으로 돌린다고 주장하면서도, ‘영업비밀’이라며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이나 공정 전반을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게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석연치 않고 의심되는 부분이에요. 삼성이 오만하고 대응을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또 하나의 가족>에서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죠’라는 대사가 있듯이 실제로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어요. 한편, 삼성은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피해자가 더 많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피해자들의 산재신청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여요. 자신들이 사는 방식대로 돈을 주면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은데, 그들 마음처럼 되지 않은 거죠.
 
Q 삼성에서 피해자가 많이 나오고 문제가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이 일을 했는데 하혈을 해요, 허리 통증이 심해서 일을 바꿔 주세요.”하면 “너만 힘든 거 아니다, 다 힘들다. 너희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이런 식의 현장 분위기, 조직 문화 자체가 개선되어야 할 문제를 무마시켜 버리는 까닭이에요.
2011년에 법적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까진 실질적으로 삼성에 노조가 만들어질 수 없었어요. 단일노조만 인정됐던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신청하려고 하면 기업 측에서 먼저 행정관청에 신고해 놓아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에요.
이윤, 생산성만 중시하는 사업주에 대항하여 노조를 만드는 것은 자연 발생적이고 당연한데 삼성은 이를 철저히 막은 거죠. 보통 노동자들이 문제가 있어 노조를 찾아가면, 노조는 어느 정도 해결해주거나 같이 싸워줘요. 하지만 문제를 하소연할 창구가 없던 삼성의 노동자들은 발병할 때까지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어떤 회사보다 급속도로 성장한 삼성의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숨어있는 것이에요.
 
Q 거대 기업을 상대로 싸우고 계시는데, 힘든 점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아픈 노동자들이 치료받고, 그 가족이 입은 경제적 타격을 보상받는 것이 거창한 바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 노동자들이 삼성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버려요.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죠. 제일 가슴이 아픈 건, 피해자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망적인 현실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싸우고 산재신청도 하시는 분들께서 절망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해요.
 
Q 반올림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진상규명을 통한 산재인정 및 보상, 두 번째는 삼성의 민주노조 건설 지원이에요. 마지막 목표는 이윤 만능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에요. 공해가 많이 발생하고 저임금의 노동력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주로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어요. 그런 나라들은 반도체 산업의 발전속도에 비해 인권 수준이나 법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에요. 단지 남의 나라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되며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생산성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Q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반도체 노동자 문제가 학생들과 무관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20대 노동자들이 사실 공장에서 일한 죄밖에 없는데, 그걸로 인해 암 투병을 하고 죽고 하는 문제에 대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문제로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올해3월 6일에 고 황유미씨 추모기일 7주기를 맞아요. 이와 더불어 삼성 백혈병 직업병 인정 싸움이 7년째 맞이하고 있는데, 올해만큼은 좀 더 많은 힘이 모아져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감독은 투자자가 없어 일반 시민들이 투자에 참여하는 제작 두레 방식으로 10억 원의 제작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투자를 한 시민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이처럼 작은 손길이 모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모인다면 정말 큰 힘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이종란 노무사가 나지막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복수노조: 한 사업장 내에 여러 개의 노조가 존재하는 것 단일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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