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전력난, 정부는 가계탓하기에만 급급

우리나라에서는 올 여름 전력수급경보만 30회 이상 발령됐다. 이는 극심한 전력난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많은 전문가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2011년 9월 15일에 일어났던 대정전과 같은 사태 혹은 그 이상의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예측했다.

무더워진 여름 그리고 원전중단 사태까지

올 여름 전력수급경보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전력수급경보는 전력수급현황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전력수급경보 1단계인 준비단계는 예비전력이 500kW 미만일 경우, 2단계 관심단계는 400kW 미만일 경우에 발령된다. 그리고 그 아래로 100kW 단위로 총 5단계까지 경보가 발령된다. 지난 8월에는 낮 동안 예비전력이 400kW대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준비단계가 25회 이상 발령됐다. 그리고 관심단계는 6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 이상 발령돼 전력 부족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이번 전력난의 원인으로는 우선 올해 유난히 길고 무더워진 여름이 있다. 기상청은 “올 여름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온이 높은 날이 잦았고 9월까지 일시적인 고온현상이 이어져 유난히 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여름 유례없는 무더위로 냉방수요가 급증해 7월 전력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고온 현상보다 더 큰 원인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총체적인 관리부실로 발생한 원전비리가 몇몇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켰기 때문에 전력 위기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원전의존도가 31%로 높아 일부 원전이 중단될 경우, 전력 공급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5월 28일 원전비리로 인해 발생한 신고리 원전 2호기와 신월성 원전 1호기의 가동이 중단된 후 재가동이 지연되고 있어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어왔다. 전문가들은 이 점을 미뤄볼 때 원전비리가 전력난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민간의 전기 사용 절감만이 답인가?

정부가 블랙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으로는 ▲근무시간에 공공기관의 냉방기 및 공조기 가동 전면금지 ▲실내조명은 원칙적으로 소등, 불가피한 경우(계단, 지하 등)만 사용 ▲사용하지 않은 사무기기, 냉온수기 등 자율단전 ▲승강기 사용 최소화 등이 있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상당수는 민간의 전기 사용을 억제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정부는 국민들의 희생에만 기대 전력난을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관계 당국은 전력난의 원인을 철저하게 살펴 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며 정부에 효과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일부 여론에서는 민간 전기 사용뿐 아니라 산업용 전기 사용 또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식경제부에서 2013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전체의 14%, 산업용은 55%다.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유승훈 교수는 “산업체의 전기요금이 가정보다 싸고 누진세도 없는 상태다. 전력난의 더 효율적인 극복방법은 사실상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 그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 또한 산업용 전기료 인상을 검토하며 이와 같은 여론에 귀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산업체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전기 사용을 강제로 억제할 경우 기업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며 산업용 전기 사용 절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는 그동안 민간 전기 사용의 절감에 집중하며 다소 소극적인 해결방안만 내세웠다. 하지만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준영 기자 yoonjy@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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