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유목민, 비정규직을 파헤치다

지난 2월 26일, 기간제근로자보호법 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정기·명절 상여금, 성과금,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비 등을 차별금지 항목으로 명시해 그동안 모호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금지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비정규직 문제는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됐으며 이 시대의 보편적이고 중요한 현상이 됐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였다. 어째서 비정규직이라는 현상이 주목받게 됐을까?

IMF 그리고 비정규직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적 지원 조건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를 요구했다. 그 결과 1998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 협약’이 만들어졌는데, 주요 내용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의 도입이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1997년, 607만 4000여 명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1년 696만 2000여 명으로 4년 새 15%나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정규직은 715만 1000여 명에서 652만 5000명으로 줄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자 김대중 대통령은 사회안전망 확대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친북정책 우선이라는 기조에 가로막혀 문제화조차 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정규직 확대로 부작용이 심각해졌고 이에 따라 정부는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을 마련했다. 골자는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기업들이 2년 안에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기업에만 유리한 비정규직


기업은 비정규직 확대에 대해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경제 상황의 변동과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기업의 인력규모를 조정할 수 있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이 치명적일 수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 ▲고용 불안정 ▲저임금 ▲노동권 무력화를 꼽을 수 있다. 고용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실직하게 되는데, 따라서 만성적인 고용 불안정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수입에 대한 불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용이 불안하면 장기적인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없으므로 삶 자체가 불안해진다.

또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낮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임금이 낮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 임금을 낮게 책정한다고 노동자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해고가 쉬우므로 을의 관계에 서 있는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모든 노동자는 근로 3권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져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된 권리로서 당연히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면 재계약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회사가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동조합이 노동자에게 보장된 권리라고 하더라도 노동자 입장에서는 가입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고용 방식은 기업 경영에 이점이 된다. 기업은 비정규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정규직의 확산은 사회적 불만과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결국, 비정규직은 경제 성장이냐 사회 통합이냐의 근본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이 둘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한동인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김한솔 기자 kimhs@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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