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걷다




일제강점기,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하던 포항의 작은 어촌마을에 일본인들이 들어왔다. 더 넓은 어장을 찾아 조선에 온 가가와현의 어부들은 1883년 조선통상장정이 체결되는 동시에 항구를 개척하였으며 터를 잡았다. 그들이 터를 잡은 이 곳은 바로 구룡포, 기자는 100년 전 구룡포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했다.


옛 일본인의 삶, 곧이 그대로


구룡포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들은 그곳에 작은 일본을 만들었다. 구룡포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어부였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가옥을 보존하여 개장한 근대문화역사관은 일본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이곳을 방문한 일본인들도 1880년대의 일본가옥을 보며 신기해했다. 역사관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거실에는 일본의 전통 보온장치인 고다츠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 앉아 다도를 즐기던 일본인의 생활을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면 하시모토의 딸들을 위한 방들이 있다. 이 방들은 원래는 주로 손님들을 위한 방으로 사용됐고 더운 여름철에만 가족들의 침실로 사용됐다고 한다. 방의 구조는 환기와 일조를 돕는 란마라는 나무로 만든 창살로 이뤄져 있고, 벽에는 오시이레라는 붙박이 벽장과 치가이다나라는 두 개의 판자를 댄 선반이 있어 독특한 일본만의 가옥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 속으로 그리는 100년 전 거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걷다 보면 100년 전으로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낡은 지붕과 붉은 벽돌 그리고 뻥

뚫린 나무 창살, 모든 것이 오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물들 그리고 낮은 문지방 덕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은숙 문화관광해설사는 “100년 전 일본인들이 한 번 고기 잡으러 가면 배가 뒤집힐 정도로 많은 고기들을 실어왔다”며 “부유해진 일본인들은 향락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고, 당시 이 거리에 수많은 일본의 게이샤와 한국의 기생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사당이 있던 터, 목재로 구성된 가옥들, 그리고 한문을 간단하게 표기한 약자를 사용한 문패. 한가로움이 물씬 느껴지는 이곳에서의 고양이들은 더욱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용함과 한적함에 가려진 쓸쓸함이 역사 속에서 비통해했을 100여 년 전의 선인들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묵직해졌다.





구룡포,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다


근대문화역사거리 입구의 계단을 따라가면 양옆으로 작은 공덕비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단 맨 위에는 약 3m 크기의 큰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모두 구룡포에 터를 잡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 후, 이곳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잡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악행에 보복하듯 그 공덕비들을 모두 시멘트로 덧붙였다. 그 후에 그 공덕비들 뒷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되새겨 계단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계단 맨 위의 큰 공덕비 뒤에 6.25에 참전했던 사람들의 혼을 기리는 충혼각을 세웠다. 거리에 줄지어 있던 일본 가옥들도 모두 철거하여 일본의 것은 몇 채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우리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 이라고 생각해 포항시가 2009년 100년전 일본 가옥들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 근대문화역사거리에 남아 있는 일본 가옥들의 수는 50여 가구이다. 이렇게 남은 가옥 중에서 일부는 사람들이 사는 주택으로 또 다른 일부는 건물 형태만 유지돼 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선 여기 구룡포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발견했다. 옛 것과 지금의 것을 모두 포용하는 온고지신의 장소. 이번 가을에는 한적한 구룡포를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김지혜 기자 kimjh@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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