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작가에게 듣는 인생이야기

2012 서울연극제 초청작으로 매회 매진을 기록한 <콜라소녀>의 김숙종 작가를 만났다. 김숙종 작가는 이전 2009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재밌는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극 전개로 수많은 앵콜 공연과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녀에게서 희곡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직장과 작품활동을 병행 중인 김숙종 작가는 저는 비주류 작가에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는 원래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어요 말을 잇는 그녀의 눈빛은 말과 달리 다른 작가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상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제약회사에 다닐 때 일이에요. 그 당시 회사는 학력에 따라 월급을 차등 지급했는데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신입사업과 5년 차인 제 월급이 같은 거예요. 어디라도 좋으니 대학교 졸업장을 가져오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숭의여대 문예창작과를 다니기 시작했죠

Q 작가님 하면, 수많은 앵콜공연과 매회 매진을 기록한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어요.

졸업 후 신춘문예를 준비했어요. 최종심사까진 계속 올라갔죠. 그런데 아니 그래서 더 잔인하다고 할까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작품을 알아주지도 않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 그런 시간이 4년이 지속되니 모든 게 싫어졌어요라는 말을 마치고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게 정말 소질이 있나? 라는 의구심이 점점 커지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그 동안 저에게 글에 소질이 있다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있던 제 마음을 작품에 담았어요라는 말로 작품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구상한 배경을 설명했다.

Q 마지막에 김종태가 양상호 앞에서 자살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군요?

그녀는 작품 속에 소질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김종태를 만화가의 길로 걷게 한 양상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김종태가 성공했다고 봐요. 그만큼의 복수도 없으니까라는 말을 마치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당시 저도 제게 소질이 있다고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김종태라는 캐릭터를 만든 거 같아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양상호가 어린 김종태에게 만화에 소질 있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고 봐요. 그 순간만큼은요

Q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글에 소질이 있다는 사람을 용서하시는 건가요?

김숙종 작가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충남 부여에서도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자랐어요. 그러다 보니 방학마다 농활 온 대학생이 많았어요. 도시의 새하얀 언니, 오빠들은 까맣고 작은 소녀에게 정말 잘 대해줬어요. 그리고 그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 소녀에게 자신들의 주소를 적어주고, 그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답장이 오지 않아요. 소녀는 다시 편지를 보내지만, 또 답장은 오지 않았어요라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대학생들이 저를 대할 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잘못한 건 까만 소녀에게 여지를 남겨뒀다는 것이라며 말꼬리를 잘랐다.

Q 연극인으로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통영연극제의 한 관객 이야기를 시작했다. 갓 중학교에 올라온 듯한 교복 입은 아이가 용돈이 부족해 표를 구하지 못해 울상인 거에요라며 그 관객의 얼굴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사정을 들은 대표님께서 허락하셔서 입장할 수는 있었지만, 공연이 매진이라 바닥에 앉아서 봐야 했는데, 중학교 1학년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극을 꼼짝도 안 하고 푹 빠져 연극을 관람하는 거예요. 공연이 끝난 후 연극을 이해했느냐는 물음에 활짝 웃으며 너무 재밌게 봤다는 거에요. 지금도 그때 연극을 보던 그 아이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힘이 난다며 그 관객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Q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물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선행돼야 해요.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됐던 그 결과에 순응할 수 있거든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걸음을 내디딜 수 있거든요. 물론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뿐더러 그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하는 젊은이를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며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승복하는 젊은이가 많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넌지시 드러냈다.

한경석 기자 hangs@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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