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학점 천덕꾸러기에서 ‘강추’하는 인성 교양 학문으로

전국 347여 개의 대학(신학대학 포함) 중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돼 채플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학교는 모두 70여 개이다. 기독교 대학은 종합 대학과 달리 학문뿐만 아니라 신앙을 대학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 대학에게 채플은 선교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교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채플은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학과목이 되어 버렸다.

채플? 지루하고 졸린 쓸모없는 수업?

채플을 반대하는 측은 기독교 학교가 헌법20조에 해당하는 학생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95년 숭실대학교 한 학생이 채플불참을 이유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해 이에 '학위수여이행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학교는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교육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며 채플을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채플의 정체성을 논란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 학기 의무적으로 채플을 수강해야 하는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에서는 채플의 자율화를 주장하는 학생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명지대학교(이하 명지대) 인문대학 학생회는 '기도하지 않을 권리와 기도할 권리의 평등'을 주장하며 집단적인 채플 반대운동을 벌였다. 연세대학교(이하 연세대)에서도 '연세대 채플의 자유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채플 거부운동을 벌였다.

연세대는 학기 중 필수 채플 학점을 채우지 못한 학생은 10여만 원을 따로 지불하고 방학 동안 2박 3일간의 집중이수 캠프를 듣는다. 이화여대의 경우, 채플수업에 낙제하면 다음 학기 채플수업 2개를 동시에 해 총 8번의 채플수업을 듣게 한다. 이들은 이러한 채플의 강제성에 불만을 표하며 채플 과목 자체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채플을 단지 졸업을 위한 의무학점 정도로 여기는 학생들이 많다. 또한 채플을 대리출석하거나 출석 아르바이트까지 성행하는 것이 오늘 날의 현실이다. 채플이 기독교의 정체성이라면 지금 바로 그 기독교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채플! 재미있고 유익한 인성수업!

이러한 학생들의 반발에 기독교 대학들은 채플의 목적인 선교와 인성교육이라는 ‘기독교 이념’과 더불어 ‘학생만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기존집회형식에서 벗어나 찬양 위주의 채플에서부터 드라마 채플, 뮤지컬 채플, 영어 채플 등 채플의 다양화를 통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도하여 자발적인 참여와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외에도 비기독교들을 위한 소그룹 성경공부나 저명인사를 초청해 간증을 듣는다거나 교내 동아리의 연합공연예배 등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명지대는 ▲세족식 ▲제자들을 위한 교수음악회 ▲부활절,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마다 채플이 학생들과 교수가 하나 되는 축전와 나눔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학생이 채플 시간과 종류별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자발성을 도모하는 것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채플의 변화에 비기독인인 이화여대 국문과 3학년 김유미 씨는 “기독교적 색채가 거의 없는 무용이나 연극 강연 등은 일단 거부감이 없고 관심을 끈다”며 “언제부턴가 기독교에 관해 관심이 가고 더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명지대 교목실 김용달 씨는 “신입생 중에 비기독인이 60∼70%에 이르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예배만 강요하면 거부반응을 보일 수 있다“며 “그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채플의 변화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 형식에 치우쳐져 기독교적 영성을 양성해야 하는 채플이 단순한 재미와 흥미 위주의 공연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학교의 목적은 영성훈련과 선교에 있지만 이러한 이념이 학내 비기독교 학우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오히려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사랑’을 해치게 될 것이다. 채플은 바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차윤경 기자 chayk@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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