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의 부활 이끈 데미안 허스트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충격에 빠졌던 2008년 가을, 런던 소더비(sotheby’s)에서 열린 경매는 세계적인 경제 악재에도 단일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며 미술 경매시장의 역사를 다시 썼다. 경매에 나온 220여 점의 작품이 1억 1146만 4800파운드(2282억 5650만 원)에 낙찰되면서 1993년 피카소가 세운 최고가(1300여억 원)를 갈아치운 것이다. 경매회사 수익금과 자선단체 기부금을 제하고도 이틀 만에 1800억 원을 손에 쥔,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몸값의 주인공이 현대 미술의 이단아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 <상어>

가난한 미대생, 쿠데타를 꿈꾸다
작품뿐 아니라 전시 기획과 홍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그는 20여 년 전 뉴욕 중심이던 현대 미술계에 런던을 각인시켰던 ‘프리즈전’의 주역이다. 1998년 런던 골드스미스대 학생이던 허스트가 동료 10여 명과 함께 헌 창고에서 열었던 단체전이 신선한 자극으로 인식되면서 호평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유명 미술품 컬렉터인 찰스 사치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이후 허스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충격과 논란의 중심에 있으면서, 현대 미술의 슈퍼 스타로 군림해 왔다. 첫 개인전과 국제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들은 엽기적인 작업 방식에 대해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았다. 1995년 런던 테이트(Tate) 갤러리가 매년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터너상을 수상했고, 1997년 영국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으로 현대 미술의 이단아이자 슈퍼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삶과 죽음은 본디 하나라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살아 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은 찰스 사치가 당시 5만 파운드(약 1억 원)에 구매하여 이슈가 됐던 그의 대표작이다. 지난 2005년,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이 14년 만에 찰스 사치가 구입한 가격의 140배인 1200만 달러(약 135억 4000만 원)에 구매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이 작품은 포름알데히드 용액 안에 모터가 부착된 상어의 시체를 넣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유영하게 만든 것으로, 생물의 사체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다. 죽은 상어가 움직임을 갖는 아이러니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관객은 눈앞에 놓인 상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과 그것에 대한 공포를 체험한다. 특히 ‘죽은’ 상어가 ‘살아 있는 듯’ 유영하는 찰나를 통해 죽음의 순간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삶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비로소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이후 허스트는 죽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물고기, 돼지, 양 등 각종 동물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 관람객은 동물로 대체된 ‘죽음’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자신의 유한한 삶과 그에 대한 욕망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Mother and Child Divided)>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반 토막으로 자른 뒤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각각 설치해 놓은 작품이다. 관객이 분리된 수조 사이로 걸어가면서 그대로 드러난 소의 내장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혐오감을 넘어 죽음의 공포까지 불러일으킨다.

다이아몬드로 죽음을 덮다
2007년 런던 경매에서 1억 달러(약 940억 원)에 팔려 이목이 집중됐던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도 그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세기에 살았던 유럽 남성의 두개골을 본떠 만든 모형을 백금 2156g으로 도금하고, 그 표면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촘촘히 박아 만든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작품의) 두개골은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싼 다이아몬드와 함께 웃고 있다. …죽음의 상징인 두개골에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덮어 욕망 덩어리인 인간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조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치 앞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죽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허영에 눈먼 인간을 풍자한 것이다. 그는 이어 내놓은 신작 에서도 19세기 생후 2주 미만에 사망한 아기의 유골을 사용했다. 이를 둘러싸고 창의적인 미학 작품이라는 옹호도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비윤리적 행위라는 비난 역시 만만치 않다.

예술가와 기업가 사이
허스트 스스로 “예술은 돈으로 사는 것”이라고 밝혔듯 그의 이미지는 ‘가난한 예술가’보다는 부유한 기업가에 가깝다. 실제 그는 영국 내 5개 스튜디오를 두고 있으며, 함께 일하는 조수만 180명에 달한다. 그는 작품 활동 외에도 미술품 수집, 부동산 투자 등으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자신의 작품을 다시 사들여 더욱 비싼 가격에 되파는 등 그가 작품 가격을 교묘히 조절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소문 역시 미술계에 널리 퍼져 있다.
최근 허스트는 파격적인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화랑이 독점하던 미술 작품의 유통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에 도전했다. 대부분은 화랑이 작가의 작품을 사들여 컬렉터에게 판매하거나, 이렇게 구매한 작품을 소장자가 다시 경매에 내놓는다. 그런데 2008년의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허스트가 미술계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작가와 컬렉터 사이의 직거래를 시도해 화제가 됐다. 허스트 본인은 경매 결정에 대해 “미술품을 파는 매우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말했지만, 일부에서는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상업주의 쇼라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죽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그는 충격적인 이미지와 엽기적인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죽음을 기발하고 엉뚱한 시각에서 바라본 그의 작품은, 경쟁에 시달리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참고자료)
*<현대조형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연구: 데미안 허스트를 중심으로>, 현정아, 고려대학교, 2001
*<영국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신체 이미지의 특성에 관한 연구: yBa 작가를 중심으로>, 선영란, 경희대학교, 2008

정한비 기자 chunghb@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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