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학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여 하나님의 목적대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존재한다.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인재 양성이 한동대 교육의 제일되는 목적이다. 이 시대에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은 학생이다. 교수는 학생을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인재로 양성하는 큰 일의 책임을 맡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요14:12)을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How Should We Then School?)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할 것이다.

20세기는 기독교가 지성(Intellectualism)에서 점진적으로 멀어진 시대로 기억된다. 지성의 주류를 이루었던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대학들이 세속화됨으로 기독교계는 지식 혹은 이념의 전쟁(The war of ideas)에서 밀려났다. 하나님의 진리를 배제한 채로 학문과 지성을 추구하는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론은 무신론 학자들이 안전하게 거하는 곳이 되었다. 진화론은 학계에서 시작하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칸트(Immanuel Kant)는 인간의 지식은 오감(Five senses)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되어있음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게 세상을 변화시켰다. 반면에,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이론은 많은 기독교 과학자들로 하여금 진화론에 맞서 창조진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마음을 다해(With all your mind) 하나님을 사랑한 결과였다(마22:37).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세상의 변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생각은 마음(Mind)에 있는 가치관(세계관)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Renewing of your mind)으로 변화 받아야 한다(롬12:2).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대학에서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시작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상(Ideas)의 불씨는 기독교 대학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대학교육은 전공교육과 더불어 학생의 마음(Mind)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교육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복수전공제도의 틀 속에서는 그렇게 교육할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수요자중심교육(Demand-driven education)의 대명사였던 복수전공의무제도를 완화할 때가 되었다. 아무리 복수전공에 대한 사회적 요구(Demand)가 있을지라도, 이제는 단수전공을 허용하고, 성경, 기독교 세계관, 세계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 리더십을 포함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인재를 양성키 위한 목적중심교육(Purpose-driven education)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물은 흐르는 대로 두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결국, 물은 바다에 모이며, 모인 모든 물은 Sea Level 이 된다. 더 이상 저장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는 물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한강물인지 낙동강물인지, 1급수인지 2급수인지 구별할 수 없다. 더 이상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낼만한 물이 아니다. 반면에, 흐르는 물을 미리 저장하고, 방향을 바꾸면, 사막에 강을 내고, 옥토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물이 된다. 한동대도 흐르는 대로 두면, 이미 세속화된 기독교대학들의 전철을 밟을까 염려스럽다(히2:1). 대학은 흐르는 대로 흘러 가기가 쉽다. 기독교대학들의 역사가 이를 증거하지만 한동은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목적을 등한히 여길 수 없다. 지금까지 한동대 교수들이 학생교육에 대한 열정과 헌신과 희생은 타 대학 교수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대학을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한동인을 다윗처럼 이 시대를 위해(행13:36), 에스더처럼 이 때를 위해(에4:14) 부르셨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김영섭 교수 (전산전자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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