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절망적이고, 삶을 포기 하고플 때 삶의 이유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될까? 여기 삶의 끝이라고 여겨질 때 주저앉지 않은 한 여인이 있다. 바로 자클린느 오리올이다. 프랑스의 대통령 뱅상 오리올의 며느리였던 그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온갖 뜬소문에 시달이던 그녀는 비행을 하나의 돌파구로 삼았다. 뱅상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조종 훈련을 하여 면허증을 땄으며 공군 전투기를 타고 싶어 공군 면허 시험에도 도전하였다. 그녀에게 미쳤다고, 서른 한 살이나 먹은 여자가 아일 둘씩이나 두고 목숨을 건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하지만 자클린느는 두 달간의 집중훈련 끝에 공식적인 공중곡예 시범 비행에 성공하였다.

그녀의 인기와 명성이 시아버지의 명성을 능가할 무렵, 한 항공회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그 회사의 수륙 양용기를 타고 날다가 파리근교의 센 강 위에 착륙한다는 계획. 그러나 그 계획이 실행되던 1949년 7월 11일, 그녀의 몸과 얼굴은 망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녀의 인생이 끝났다고 말했다. 충격으로 기절했던 그녀가 의식을 되찾아 무심코 입을 만졌을 때, 그녀의 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턱과 광대뼈는 부서졌고, 한 쪽 눈은 푹 패인 눈 안쪽으로 떨어져 있었다. 보트에서 구급차로 옮겨질 때,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물었다.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요?”

얼마간 회복이 된 후에 그녀는 대통령 별장으로 옮겨졌다. 별장 안의 모든 거울이 치워졌다. 프랑스 신문들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 추켜세웠던 그녀의 얼굴은 한 순간에 흉측하게 변해버렸던 것이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해가 지면 일어나 유령처럼 빈방이나 정원을 헤매는 유폐된 삶이 그녀 앞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찾지 못하게 되리라는 공포,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50년 9월, 자클린느는 성형외과 최고 권위자인 닥터 컨버스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닥터 컨버스는 사고가 나기 전 사진을 보며 얼굴을 고쳐나갔는데 그 수술 사이사이에 그녀는 억척스럽게도 벨 항공사에서 헬리콥터 조종술을 배워 면허증을 땄다. 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녀는 직업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목숨을 건 지옥 훈련 끝에 그녀는 프랑스의 시범 비행사 제 29호가 되는데 성공했다.
언제나 죽음 가까이에 사는 날들이었지만, 자클린느는 날기 위해 사는 영원한 자유인이 되었다. 하늘은 진정 그녀의 왕국이자 삶 그 자체였다. 그녀의 자서전 [I Live To Fly]에는 오직 날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갖 장애를 극복한 한 여성의 강인한 외길 인생이 펼쳐져 있다.

익어가는 가을, 그녀의 삶처럼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은 어떨까.

권애경 기자 coricori04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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