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공부의 어려움과 채용 방법의 수시 변화 때문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소신있게 시작하길


어디서 많이 본듯한 비율 19 : 1, 70 : 1, 85 : 1. 그렇다. 차례대로 올해 있었던 우리 나라 3대 고시인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의 경쟁률이다. 135:1과 90:1을 각각 기록한 7, 9급 공무원 시험을 포함하면 5년 만에 혹은 사상 최고 경쟁률이라는 '자랑스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공무원 시험 열풍. 심지어 아무리 적은 인원을 뽑는다고는 하지만 입법고시가 기록한 304:1 이라는 경쟁률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수치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맞물린 청년 실업은 고시를 비롯한 각종 공무원 시험의 열기를 한층 북돋고 있다. 취업 대란 가운데서도 유독 상당수 구직자들이 직업선택의 우선순위에 두는 공직. 그 원인은 쉽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안정성의 측면이다. 60세까지의 정년과 퇴임 후에도 지급되는 연금은 분명 다른 직종이 갖지 못한 공무원만의 메리트이며 수많은 대학생들을 고시로 이끈 유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회적 명예를 취하려 공직에 진출하기도 한다. 온라인 상에 범람하는 '5급 공무원이 나중에는 몇급까지 진출할 수 있느냐.'는 식의 급수 대조 질문, 일선 결혼 정보 회사인 D사 등을 비롯해 기성세대의 고시 합격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직도 고시를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고시에 합격하기까지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시에 관한 모든 정보가 집결되어있다는 신림동. 어림잡아 3만 여명의 각종 고시 준비생들이 운집해 있는 이곳은 '고시의 메카'이다. 현재 이 곳에 있는 오지훈(01, 법학부) 학우의 이야기를 빌려보면 고시생들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렇다. 오전 7시~8시, 오후 12시~1시, 5시 30분~6시 30분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학원 혹은 독서실에서 계속 공부에 매진하는 생활이다. 이에 대해 홍종성 학우(01, 법학부)는 "계속 공부만 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때문에 초심과는 달리 해를 거듭할수록 계획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며 소위 '장수생'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통계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 사시 합격자 평균 연령은 결코 적지 않은 만 30세 정도이다.

들쭉날쭉한 시험제도도 수험생들을 힘겹게 한다. 이미 토익 등의 공인영어시험이 고시 영어를 대체하였고 금년도부터 외시와 행시에 도입된 공직 적성평가(PSAT)는 좀처럼 난이도를 종잡을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달 25일에 앞으로의 고시 2차 시험을 오픈북 테스트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적지않은 고시생들은 이들로 인해 다른 시험으로 옮기거나 고시를 포기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법학교육원의 천인철 사법고시 팀장은 "올해는 다시금 안정된 분위기를 회복했으나 사법고시에 토익 시험 점수 도입이 결정된 지난 해는 혼란이 극심했었다."라고 말했고, 익명을 요구한 한 행시준비생은 "장기적 안목의 검토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일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고충을 드러냈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6급 행정 공무원이 각 대학의 우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인턴 채용되며, 사법개혁위원회에서는 2008년부터 로스쿨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고시가 단계적으로 축소될 것이 자명해졌다. 이미 이들 정책은 온, 오프라인상에서 뜨거운 감자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코앞에 닥친 인턴채용에 대해 6만 5천 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카페 '행정고시 사랑'에서는 "인턴제로 인해 채용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현실적 걱정과 함께 "인턴제 도입이 얼마나 객관적일지 의문이다."라며 실효성을 의심하는 의견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로스쿨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7~8개 정도 대학에 개설, 1200명 가량을 모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전국의 유수 대학들을 긴장하게 하며 법학부의 존폐 여부까지 쟁점화 시키는 로스쿨. 고시 만능주의를 척결하고 대학 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는 그 취지의 성공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로스쿨'이라는 제도 자체와 선발 규모는 앞으로의 고시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2013년부터는 사법시험이 완전 폐지될 뿐더러 1000명을 뽑는 고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1200명 선발은 고시 낭인에 이은 로스쿨 낭인을 양산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청난 노력을 요하고 잦은 변수가 도사리는 고시계는 그야말로 인생의 사활을 건 격전장이다. 그러므로 막연한 합격 기대와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안정적 특징, 성공주의에 젖어 고시에 투신하는 모습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적어도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외치는 한동대학생들에겐 보다 강하고 건전한 동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본인이 다른 직업이 아닌 이 직업을 꼭 택해야 하는지, 거듭 생각해 보고 결정하길 바란다. 마음을 먹고도 고액 연봉 등의 주변 유혹을 못 이기고 맘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라며 공무원의 사명감을 강조한 인천광역시경제자유구역청 한성원 과장(91년 11월 행시합격)의 말은 결코 흘려 들어서는 안될 귀한 조언이다.

지인수 기자 ultra19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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