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곧 자아실현, 칼 구스타프 융

무의식, 일상으로의 초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이 매우 명백했었는데 다음 순간 무엇을 말할 생각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던가, 또는 친구를 소개할 때 그 이름이 입 속에서만 맴돌 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이 나지 않는군’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이 무의식으로 되었던 것이고, 또는 일시적이나마 생각이 의식으로부터 분리되었던 것이다. 히스테리나 이중성격, 최면상태 그리고 완전히 잊고 있던 일의 꿈 속 출현.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무의식을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생각하든가, 느끼든가, 행동하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자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의식’ 이라고 부르는데, 오랫동안 정신은 곧 의식이라 믿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이 믿음을 무너뜨리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지면서 의식하고 있지 않은 정신활동 즉, ‘무의식’ 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C. G.융의 무의식 분석

무의식에의 논의를 활성화 시킨 장본인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비해 생소하지만 분석심리학의 대부라 불리는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이하 융.)을 통해 무의식에의 지경을 넓혀보자.

“무의식은 위대한 안내자요 벗이요 의논상대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융은 무의식 연구의 목적을 사람들이 그 자신을 알고자 하는 것을 돕고, 그 결과 지각과 사려 깊은 자기개발에 의해 그들이 충실하고 풍부하며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두었다. 이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정신병의 근원이며 환자의 해방의 도구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무의식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을 중시한 융의 연구방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개인으로 하여금 그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의 잠재적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는 ‘무의식적 영향’을 밝혀내어 개인의 어려운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또한 융의 치료방법이었다.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는 다만 분석을 실시함으로써 지난날의 정신적 외상을 명확히 하면 됐는데, 융은 환자를 현실에 적응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류 보편적 원시적인 무의식이 존재하는걸 알고 있나

또한 융은 모든 인간의 영혼에는 이른바 ‘집합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가설로 인간 심리의 연구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집합무의식이란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형성되는 개인무의식과 달리 한 개인의 생활에 나타나는 어떤 것으로도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형태로서 원초적이고 옛날부터 이어받은 인간 마음의 형태이며 특히 같은 민족 안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알코올중독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뱀의 환각 정도를 집합 무의식의 예시로 볼 수 있다. 보고 배우지도 않은 성경이나 신화의 내용이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꿈 또한 이와 상통하는데, 집합 무의식의 개념은 실로 놀라운 착상이자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융은 정신의 맨 처음 발달단계와 관련된 또 하나의 정신 층을 발견해낸 것이다.

꿈은 무의식의 심부름꾼

무의식으로부터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그리고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무의식과 의식은 하나로 결합되어야 하고, 따라서 서로 평형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것들이 분리되기에 이르면 심리적인 장애가 따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의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으로부터 합리적인 부분으로 보내지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자이다.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빈곤한 의식은 풍부해지고 잊혀진 본능의 말을 다시금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의 주인은 누구일까-무의식과 인간 영혼의 주인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물론 인간과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지만 융의 관점에서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 혹은 무의식적인 요인이 계획이나 결정 속에 몰래 들어올 때의 방법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확실히 자기자신의 주인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인간은 개성화의 과정이 완성되었을 때, 즉 의식과 무의식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보상할 때 전체로서 통합되고, 차분하면서도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 C.G.융

문설아 기자 gatsby08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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