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만든 한동대 동문 제작진 인터뷰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는 서로 다른 성정체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크고 작은 다름과 갈등을 극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 서울독립영화제 <퀴어마이프렌즈> 시놉시스 중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지난 9월 8일, 인디플러스 포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GV행사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한동대학교 동문이 함께 만든 영화로, 동성애자인 ‘강원’과 기독교 배경을 가진 ‘아현’의 우정을 그린다. <퀴어 마이 프렌즈>를 만든 서아현 감독, 강사라 PD, 송강원 출연을 만나 보았다.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아현 감독(이하 서):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07학번 서아현입니다. <퀴어 마이 프렌즈> 감독이자 강원님을 7년간 미저리처럼 쫓아다닌 친구를 맡았습니다.

강사라 PD(이하 강): 한동대 공연영상학과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08학번 강사라입니다. <퀴어 마이 프렌즈>의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송강원 출연자(이하 송): 저는 한동대 06학번으로 입학을 했고, 제가 아마 공연영상이랑 국제어문을 했을 거예요. 2010년에 미국 대학으로 편입해서 졸업은 하지 않았어요. 송강원입니다.

 

지난 9월 8일에 인디플러스 포항에서 GV가 열렸고 저희도 참석했는데요. GV에 어떤 마음으로 참석하셨는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서: 포항에서 GV 요청이 와서 너무 기뻤고요. 사실 저도 한동대에서 20대 절반을 보냈기 때문에 포항은 각별한 곳이기도 해요. 또 저희가 모두 한동대에서 만났고 거기에서 저희 다큐도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강: 저는 사실 저희 영화가 논란이 될 법하지 않은, 너무 소프트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포항에서 상영하는 건 걱정되는 게 있었어요. 인디플러스 상영 전에 학교에 잠시 들렀는데, 학교에 저희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봤어요.그걸 보고 ‘그래도 학교에 우리 영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사람들이 보러 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송: 저에게 포항은 10년 넘게 가보지 않았던 동네인데, 학교가 가진 어떤 철학을 떠나서 저한테 너무 소중한 공간이거든요. 이 모든 게 시작된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어요. 우리가 전국에서 상영한다면 포항에서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기도 했고요. 셋이 같이 포항에서 “그거 기억나? 그거 먹던 거 기억나?” 그것만 1박 2일간 하다 왔어요.

 

세 분이 한동대에서 만나신 것과 졸업 이후에도 우정을 이어가신 것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은데요.

서: 저희는 한동대에서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작품을 셋이 함께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얼마 전에도 (<메두사의 뗏목>을) 젊은 연극제에서 하신 것 같던데, 저희 셋도 2009년 젊은 연극제에 참여했어요. 저는 연출부로 있다가 조연 배우로도 참여했고, 강원님은 이미 여러 차례 배우를 했었고요. 또 사라PD님도 기획팀에 있었어요. 같이 연극을 하다 보니까 거의 하루 종일 붙어서 수업 듣고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연습하고 12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같이 과제하고… 한 학기 동안 계속 그렇게 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사라 PD님과는 이후에 단편영화 작업을 서로 도와주고는 했고요.

강: 영화를 만들 때 품앗이처럼 서로 도와주는 게 저희한테는 너무 당연했어요. 졸업하고 나서 어느 날 아현이가 강원오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한다고 했는데, 저로서는 늘 같이 하던 거니까 ‘그럼 그냥 같이 하는 거지 뭐.’이렇게 됐던 것 같아요.

서: 저희 세 명이 영화를 대표하긴 하지만, 다른 한동대 친구들도 물심양면으로 제작에 도움을 주었어요. 또 영화에 나오는 친구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다 한동대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저희는 졸업하고 나서도 주기적으로 모이는 편이었는데, 아마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시기를 그 친구들과 함께 통과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친구들이 잘 알고 있고, 강원에 대한 마음이 저와 마찬가지로 애틋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것 같아요.

 

7년이라는 긴 시간 영화를 만드셨는데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서: 저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형 교회를 다녔어요. 교회를 통해서 한동대를 알게 되어 입학한 것이기도 했고요. 저의 세계관은 보수적인 기독교 세계관이 전부였다고 보시면 돼요. 그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게이다”라는 (강원의) 선언은 모태신앙인 저로서는 세계관의 지진 같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무작정 오빠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다 보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강원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강원의 삶을 지켜보는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지지자)로서 저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친구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완벽한 앨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없이 카메라를 들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한동대가 세상을 바꾸라고 얘기하잖아요. 저는 강원 오빠의 이야기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치기로 시작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카메라를 들고 7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보니까 바뀌어야 할 세상이 밖에 있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중요한 건 거창하게 세계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 것이 저한테는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아요.

송: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출연자잖아요. 영화의 만듦새와는 무관하게 저는 그냥 제 삶을 열심히 살아왔어요. ‘약간 이것들은 언제 끝나나..’, ‘아니 끝나긴 하나?’, ‘아현이는 언제 구직을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웃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영화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끈적하게 붙어있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 시절 자체가 자기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니까, 영화가 없었다면 각자의 트랙으로 뛰쳐나갔을 것 같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사람은 되게 관계적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혼자일 수도 없고 혼자여서도 안 되는 존재가 사람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기보다 관계적인 성장을 가져온다.’, ‘깊은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큐 작업을 통해서 서로 부딪힌 시간 안에서 가장 크게 배웠던 것, 그리고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 상기하고 싶은 것이 관계인 것 같아요.

강: 기획안에 그런 얘기를 썼어요. “한 번도 나 자신에 대해 질문해 보지 않은 여자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강원님은 늘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어느 순간에 다른 선로를 타서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더 찾아 나갈지언정, 끝까지 본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요. 저희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와 친구들의 관계를 더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퀴어 마이 프렌즈>는 동성애자인 강원과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아현의 관계를 그리는데, 한동대라는 환경의 특수성을 생각했을 때 굉장히 독특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 분이 한동대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정체화 해 나갔는지 궁금해요.

송: 저도 제가 뭐라고 대답할지 너무 궁금하네요. 오늘 밤새야 하는 게 아닌지 몰라. (웃음) 저는 집안이 무교라 한동대에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거부 반응은 없었어요. 오히려 아현과 사라처럼 어릴 때부터 ‘기독교는 이렇다’하는 생각이 내재화된 상태였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기독교 세팅이 있는 이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못 만났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다행이죠.

저는 수용하는 성격이라 한 학년 선배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도 막 가고 그랬어요. 결국 수련회까지 불려 가서 … 중간에 제가 집에 가겠다고 그러니까 선배가 삐지고 그랬는데.(웃음) 20대 초반, 한동대에 있을 때는 제 정체성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동성애자라는 나의 정체성과 기독교 대학의 괴리에 대해 고민할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어요. 오히려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미국에 가서예요

얼마 전에 저희가 이화여대에서 열린 GV에서 정체성에는 정말 다양한 결과 레이어(layer)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미 단어화된 ‘한국인’, ‘게이’, ‘군필’, ‘미필’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자기의 살을 발라내는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다 발라내고 나면, 결국 그 어느 것도 아닌 거예요. 영화에서도 나오잖아요, 제 정체성은 ‘한국인인데 후천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구구절절해지는 거죠. 정체성이라는 게 되게 구구절절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않고 되게 장황하고 애매하죠. 그런데 세상에서는 너무 빠르고 효율적으로 단어화시키고 경계를 그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경계에서 탈락하는 존재들이 생기고요.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도 완전히 구분되어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제 정체성을 편하게 느끼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져 있고, 그러니까 제가 했던 선택들을 좀 다른 프레임으로 보게 되는 시간도 좀 있었어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네요.

서: 오빠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오빠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떠올라요. 저는 졸업하고 나서 다니던 대형 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걸 좀 고민하고 있었고, 강원 오빠는 미국에서 커밍아웃을 한 뒤였어요. 어느 날 저녁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마가복음에 있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하시면서, 현대의 가라지는 동성애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이런 비유나 설교는 너무 익숙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강원 오빠의 커밍아웃을 경험하고 나니까 그 설교를 듣는데 제가 주변을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혹시 여기에 강원 오빠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다 나와서 미국에 있는 강원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하셨는데 나는 그 설교가 너무 불편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제가 막 열을 냈어요. 그런데 강원 오빠가 그걸 차분히 듣다가, “근데 아현아, 나도 잘 모르겠어. 이게 죄일 수도 있잖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땐 이미 오빠가 커밍아웃도 다 했기 때문에 오빠 안에도 정체성이 다 정리됐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얘기했던 거였죠. 그런데 오빠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커밍아웃이 한 번의 고백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 안에 고민과 갈등이 계속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오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강원의 삶에는 많은 이슈가 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이슈들을 대립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영화를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서: ‘어떻게 하면 강원이라는 한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고 입체적인 인물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인 것 같아요. 강원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저희가 강원님이 서 있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꾸며낼 수는 없기 때문에요. 애초에 강원이란 인물 자체가 그 당시에 기독교인 정체성에 엄청 몰입하지도, 동성애 이슈에 집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퀴어 퍼레이드에 처음 간 장면 같은 경우에도 사실 강원님이 그런 자리에 나가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죠.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여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내레이션을 수없이 고쳤어요. 강원이 갈등에 처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직접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거기에 강원과 함께 갔던 제가 느꼈던 생경함을 전달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 주인공의 삶과 영화가 다르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요.

기독교와 동성애, 군대 문제, 디아스포라의 삶… 강원님이 너무 많은 이슈의 복잡한 교차로 위에 서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다 부각해서 만들기보다는 저희가 7년간 그의 삶을 찍은 끝에 다다랐던 지점이 어디인지 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걸 찍고 있는 너와 나’ 그리고 ‘내 안의 변화란 무엇인가’ 라는 지점이요.

송: 문제적 인물이었구만, 아주.

 

영화 장면에서 특히 애정이 가는 장면이 있나요?

송: 이제 이 영화는 저한테 소중한 아카이빙이 됐어요. 그 중에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아현 감독님과 제가 싸우는 클라이맥스 장면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약한 저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곤 싶지만 그게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던 시절에,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터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현과 사라처럼 카메라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봐주는 친구들이 있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 카메라 앞에서 터진 제가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나를 지켜봐 주는 곳에서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냈던 장면이 진짜 담겨버려서 저는 그게 정말 고마운 장면인 것 같아요.

강: 저는 아현이 강원에게 “지옥까지 함께 가줄게.” 하는 장면에 애정이 가요. 일단 제가 그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고요. 저는 요즘에서야 영화와 거리감이 생기는 중이에요. 완성한 영화를 보내주는 과정인데,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그 장면의 아현의 모습에서는 영화를 처음 찍기 시작할 때의 제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저도 오빠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오빠가 지옥에 가야 한다면 내가 지옥까지 함께 간다.’, 약간 이런 치기 어린 마음으로 촬영에 참여했거든요. 이제는 그때의 모습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마음이 된 것 같아요.

서: 저는 베를린 가기 전에 크리스마스 때 같이 밥 먹는 장면이 영화 볼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다 있어요. 그 장면이 06학번 선배인 용복 언니가 살던 좁은 원룸이에요. 방 한가운데다가 식탁을 두고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그 기억이 아직도 좋게 남아있어요. ‘저 때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저렇게 해맑게 좋았는데’…베를린에서 만나자는 둥 다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는 둥 … 그런데 그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어요.

송: 정말 철이 없었지.

서: 20대가 끝나가던 그 무렵에 우리가 얼마나 앞으로의 30대가 장밋빛으로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갈 때 내가 마음을 붙였던 곳이 있다면 그런 친구들이랑 밥 먹는 그런 시간이지 않았을까? 서울에 와서 방황할 때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진짜 철없다. 부럽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스틸 컷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서: 저희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저희는 20~30대 분들을 주로 만나지 않을까 했는데 50~60대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굉장히 놀랐죠. 그들 또한 청춘의 방황이 무엇인지 너무 아시기 때문에 방황하는 저희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보신다는 걸 느꼈어요. 20~30대 관객분들은 불안이나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공감하시는 것 같았어요. ‘우리의 고민들이 사실 모두의 내면에 있는 종류의 고민이었던 게 아닐까’하고 영화를 개봉한 뒤에 생각하게 됐어요.

강: 강원과 감독이 서로에게 본인의 친밀한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거기서 자신의 어떤 순간들을 발견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판단 없이 궁금해해 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저는 되게 살아가는 게, 대단히 수월하지는 않더라도, 살아갈 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 나름대로 해나간 선택들을 누가 보고 있었다는 데서 힘을 얻은 것 같아요. 또 서로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서 “지옥까지 같이 가자!”, 어깨동무하고 으쌰으쌰하는 - 그런 관계만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돌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관계, 이 구구절절해지는 관계를 관객분들이 느끼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관객분 중에,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출연자 비비안님이 계세요. 그분이 당신의 게이 당사자 아들에게 “아현과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씀해 주셨어요. 비비안님처럼 “나에게 아현과 같은 친구가 있으면 어땠을까”라고 말씀해주신 관객분들도 있었고, 반대로 아현의 상황에 이입했던 관객분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각자의 얘기를 투영했기 때문에 저희 영화를 몇 번씩 보시는 분들이 생기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동대 학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보여지면 좋겠나요?

강: 한동대에 있으면서 좋았던 기억도 많지만, 한편으로 제가 답답함을 느꼈던 지점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된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저한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학이라는 곳이 그걸 깨는 곳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본의 아니게 포항에 있다 보니까 다양성이 더 적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한동대 학생들이 보고 ‘이런 삶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조금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옆에 있는 좀 달라 보이는 친구들도 한번 둘러볼 수 있게요. 저희한테는 그게 되게 큰 바람인 것 같아요.

서: 저는 제가 대학교 때 <퀴어 마이 프렌즈>를 학교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퀴어 마이 프렌즈>는 제가 대학교 때부터 했던 고민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누군가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걸 참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영화가 고민에 대해 어떤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고민을 해보고, 나누는 것으로 해소감이나 해방감을 느끼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20대 초중반을 통과하고 계시는 분들이 ‘20대 중후반을 지나 30대로 가는 과정에서 저런 성장통을 겪고, 관계에 대해서는 저런 고민을 하는구나’...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시면 좋겠어요. 보여지는 거야 뭐, 보는 사람의 마음이라서 암만 얘기해도 더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요.

송: 선배가 영화 만들었다! 일단 보고 얘기하자. (웃음)

강: 교내가 어렵다고 한다면 포항의 어딘가에서라도 공동체 상영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송강원 출연자, 서주희 기자, 장예주 기자, 강사라 피디, 서아현 감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송강원 출연자, 서주희 기자, 장예주 기자, 강사라 피디, 서아현 감독

 

중요한 건 세상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퀴어에 대한 이야기이자 퀴어의 곁에서 살아가는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 등장하는 ‘퀴어’라는 주제는 주인공 강원의 (구구절절한)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강원과 아현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퀴어’라는 말은 희미해지고, 더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아현 감독은 7년 동안 영화를 찍으며 ‘이걸 찍는 너와 나’ 그리고 ‘내 안의 변화’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강원님이 너무 많은 이슈의 복잡한 교차로 위에 서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다 부각해서 만들기보다는 저희가 7년간 그의 삶을 찍은 끝에 다다랐던 지점이 어디인지 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걸 찍고 있는 너와 나’ 그리고 ‘내 안의 변화란 무엇인가’ 라는 지점이요.” (서아현 감독, 인터뷰 중 발췌)

어쩌면 바뀌는 건, 바뀔 수 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이해해 나가는 ‘너와 나’ 가 아닐까. 비록 아현과 강원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어려운 말들을 쏟아내지만, 아현과 강원은 ‘너와 나’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돌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끈끈한 관계망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거대한 담론도,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 아니다. 불완전한 서로에게 끈질기게 기대고 서로의 존재를 지지하는 것, 그뿐이다.

나에게 너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 ‘아현’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혹은 ‘강원’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는 우리에게 뾰족한 정답 대신 넓은 질문을 건넨다. ‘아현’과 ‘강원’은 답 없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여정에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장예주 기자 <22200637@handong.ac.kr>

서주희 기자 <joytotheworld@hand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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