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김영찬 기고
한동대학교 경영경제학부 96학번
LG전자 재직중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문인 등단작가
그린닥터스 재단법인 이사
Deep and Wide Foundation 난민 전문 선교사

2023년 2월 25일. 정말 오랜만에 한동을 찾았다. 2003년 졸업 이후에 두 번째 방문이자 거의 15년만의 방문이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포항으로 향하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더더욱 설레는 이유는 이번 방문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졸업 20년 만에 한동대학교 동문들의 영적 흐름의 중심에 서 있는 한동동문회 삼겹줄 기도회에 스피커(Speaker)로 온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줄이야...

 

나는 경영경제학부 96학번 학생이었고 2003년 봄에 졸업을 했다. 학창 시절에는 총학생회, 창조과학회, LAMB 등 열심히 학교 생활을 했지만 나는 그닥 모범생은 아니었다. 당시 뛰어난 리더십도 아니었다. 당시 95, 96학번 학생 중에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뛰어난 동문들이 많았고 나는 그 축에는 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훌쩍 지나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2002년 12월 졸업도 하기 전인 당시, 나는 LG전자 취업에 성공했다. 당시 무명 지방 대학이라는 편견과 무관심을 이겨내고 대기업이라는 관문을 첫 번째로 통과한 졸업생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한 분의 교직원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분의 성함은 김상구 선생님. 당시 한동에서 취업이라는 첫 관문을 뚫어내기 위한 작은 부서가 있었는데 취업지원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상구 선생님은 학교 봉고차를 새벽부터 운전하시면서 구미에 있는 LG전자까지 학생들 면접을 보게 하기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새벽부터 출발하면 아침에 겨우 구미에 당도하고 학생들 면접을 보는 시간에는 늘 차에서 자리를 지키시며 학생들의 면접을 응원하셨던 분. 당시 LG전자에서는 이 분이 운전기사로 알 정도로 헌신을 하셨다. 그렇게 나에게 가장 큰 은인이셨던 선생님을 이번 한동 방문에서 가장 먼저 만나 뵈었다.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취업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선생님은 그 사이에 하얀 머리가 더 많아진 모습이었고 예전에 느껴지던 그 강렬함도 세월의 무심함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만 가는 아쉬운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내년에 은퇴라고 하시니 세월이 참 빨리 흘렀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김상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선생님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당시의 소박한 한동의 모습들을 소외하였다. 세월은 지났지만 한동의 사람들과 그 정()은 그대로다.

 

선생님과의 만남 후에 나는 교정을 혼자 거닐며 변화된 한동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가장 먼저 발걸음이 가는 곳은 한동의 영적 보고(寶庫), 효암 채플이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은혜를 경험했던가...내 일생에 있어 가장 뜨거운 기도가 이 곳에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1대 총장님이셨던 김영길 총장님이 교도소에 수감되셨던 날로 기억된다. 우리는 그 때 눈물, 콧물을 쏟으며 총장님을 다시 학교 보내달라고 뜨겁게 기도하였다.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몇몇의 학생들이 찬양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일 예배 때 찬양으로 섬기는 Praise Team 인 것 같았다. 함께 잠깐 같이 찬양을 드리니 그 당시 경배와 찬양의 울리는 메아리가 들려온다. Praise the Lord!

 

잔디밭으로 쫙 깔린 중앙 축구장을 지나 나는 학생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변화된 놀라운 교정들을 보면서 나는 신기하고 또 신기해 했다. 잔디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니...LAMB은 전투적인 삶을 추구하며 새벽마다 그 흙바닥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였다. 그 날의 함성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선하다. 그 때에 축구를 함께 했던 지체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학생회관을 가기 전 기숙사 한편에서 나는 너무 놀라운 간판을 보았다. 그건 "버거킹" 이었다. 한동대에 버거킹이 생기다니...이제 햄버거 먹으로 더 이상 육거리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 주위에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2017년경인가 버거킹이 들어왔다고 한다. 놀랍다. 한동. 학생회관 2층은 당시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와 가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아닌가 한다. 여러 동아리 방들이 모여있던 곳. 그대로였다.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아 학생들은 없었지만 나는 마치 한 명의 신입생처럼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동아리 방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내가 늘 죽치고 있던 어떤 한 동아리방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방은 그대로인데 나는 많이 변했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아빠이자 한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는 여기에 서 있다.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변한 건 바로 내 자신이다.

 

나는 한동에서 공부하면서 평신도 선교사의 마음을 품은 적은 있지만 졸업 후에는 직장인으로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비전마저 잊어버린 채로...그러던 중 2018년 4월 LG전자 폴란드법인에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고 첫 해외 근무라는 것을 시작하였고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내 인생도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폴란드로 넘어오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떻게 이들을 보살펴 주었을까를 묵상하면서 난 남은 임기 동안 이들을 섬기고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 아니 나는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전쟁 이후 나는 이제 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난민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2022년 9월말 한국으로 귀임하고 나서도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들을 돕기 위한 난민 선교사로, NGO 단체의 이사로, 여러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발생 후에는 지진 발생 열흘 만에 현지를 방문하여 긴급구호와 의료봉사를 하고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고 나는 그냥 순종했다. 일주일이란 휴가를 내고 말이다.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나는 4월 26일 한동 사명선교포럼에도 초대되어 학생들 앞에 설 것이다.

 

이제는 이름도 잘 모를 건물들도 여러 군데 생겼고 (더 이상 한동은 한동:One Building이 아니었다) 그 건물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바로 도서관이다. 건물을 들어서서 몇 층을 위로 올라가는데 내가 학교를 다닐 때의 도서관이 아닌 것 같다. 리모델링을 했을까? 아니면 내가 도서관을 자주 와 보질 않아 기억이 없는 것일까? 나는 갑자기 재학생을 만나고 싶었다. 아직 개강도 하지 않은 도서관에 오는 학생이라면 범상치 않은 학생일 거라 기대하며 도서관 건물 4층에 올라가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마침 한 학생이 3층에서부터 올라온다. 두근거린다. 어떤 학생일까? 분명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만남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었다. "학생, 이 곳이 도서관이 맞나요? 학교를 오랜만에 와서 잘 모르겠는데 학교 안내도 좀 해주고 시간되면 얘기도 나눌 수 있을까요? 복도 계단 앞에서 만난 여학생은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너무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제가 여기 온건 편의점에서 밥 먹기 위해서 온 것이에요. 밥 먹고 시간되니깐 애기할 수 있어요" 아니 도서관에 편의점이 생겼단 말인가? 난 그 여학생의 안내를 받아 편의점에 들어가 간단히 먹을 것을 사주면서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만난 학생은 법학경영 전공하는 22학번 정연우 학생이었다 (실제 이름을 명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음) 앞으로 법률대학원을 목표로 하는 야심차고도 똑똑한 학생이었다. 우선 한동의 지원 동기를 물었다. 목사님이신 아버님을 통해서 계속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오고 있는데 한동에서 믿음의 동역자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왔다. 나는 당시 한동대가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학술적으로는 법학 모의 재판 학회에서도 열심을 다하고 있고 새새 공동체에서 새내기들을 섬기는 일로 열심을 다하면서 예배와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연우 학생.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동이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심지어 동문들 사이에서도 한동이 예전과 같지 않다. 초창기의 한동은 죽었다라고 하는 얘기들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한동은 기도하고 있고 예배하고 있고 진정한 기독교대학으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다만, 연우 학생의 말대로 기도모임에 더 많은 학생들이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 더 깊은 예배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반 다른 기독교대학과는 뭔가 더 차별화된 정체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좀 더 실무적인 얘기를 하자면 국제관이 따로 운영되고 있어 외국인 학생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적어 다소 아쉽다는 점, 졸업한 학교 동문들의 살아있는 얘기도 더 싶은 점, 학회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더 많은 Tip들을 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얘기해 주었다 (이 부분은 학교 정책에 최대한 반영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나는 연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가지 사실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한 가지는 연우 아버님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과 연우가 피아노를 잘 치는데 마침 그 날 저녁에 진행되는 삼겹줄 기도회에 반주자가 없었는데 선뜻 연우가 피아노 반주를 해 주어 더 예배와 찬양이 뜨거웠다는 사실이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연한 만남이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 다음날 주일 한동 동문들이 개척한 예수소망교회에서 예배까지 드리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동을 다시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한동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최근 한동의 동문들은 약 30명의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매주 그룹을 지어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룹 미팅을 시작하였다. 그룹 미팅을 중에는 동문들은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동문들이 먼저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켜보자는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삼겹줄 기도회는 계속된다) 참 의미 있는 행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애즈버리 부흥 운동처럼, 서울에 있는 이름만 기독교인 대학들 사이에서도 예배 부흥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한동에도 이러한 부흥의 바람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1995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여러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쌓여진 한동을 향한 기도의 응답들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Why not change the world? 나는 더 이상 이것이 우리 한동 안에서의 모토가 아니길 소망한다. 세상속에서, 열방속에서 더 많은 한동인들이 세상의 구석구석의 영역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감을 드러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은 훈련의 장소이자, 광야이다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님의 광야, 창조의 시간을 읽어보라) 왜냐하면 이를 통해 한동은 더 높은, 더 넓은 곳을 향해 비상(飛上) 해야 하기 때문이다. 4월 26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 이라는 주제로 학생들 앞에 설 것이다. 이것 또한 한동의 비상을 위한 하나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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