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276호 4면과 5면은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너나꽃)’라는 제목의 인터뷰로 채워집니다. 너나꽃은 각종 인문학 작품의 제작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너나꽃을 통해 타인의 삶을 조망하여 ‘너’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삶과 문학

 

세상의 모든 것은 내 안에서 해석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시선 끝으로 해독했던 세상이 더 이상 나와의 관계 안에서 파악되지 않을 때, 저마다의 고유성이 느껴지는 순간, 모든 것은 낯설어집니다. 그 낯섦은 모순 또는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모순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은 켜켜이 쌓여 인생이라는 퇴적층을 만듭니다.

 

우리는 인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읽어야 합니다. 문학은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몰랐던 나의 모습을 섬세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병을 낫게 할 수도, 기계를 발명해 사람들의 삶을 편하게 할 수도 없어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가 없어 가치 있습니다.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억압할 수 없고, 효용성의 논리와 욕망이 만연한 세상에서 나를 위해 작은 축제를 열어줍니다.

 

 

<나는 길을 걷고, 사랑을 잃었다> 김가은 시인과의 만남

시를 통해 인(人)과 생(生)을 이야기한 김가은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살아온 배경은 개인에게 유동적으로 작동하여 각각 다른 인생을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과 환경을 통해 달라지는 인생의 미묘한 간극을 사랑하는 김가은 시인은 인생의 희로애락과 아이러니를 말한다. 지난 9월 시집 <나는 길을 걷고, 사랑을 잃었다>를 출간한 김가은 시인은 간호학을 공부하다가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과 17학번으로 편입하여 올해 졸업했다. 지금은 회사 생활과 글을 쓰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Q. 한동신문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커뮤니케이션학부 17학번 23살 김가은입니다. 올 2월 졸업한 따끈따끈한(?) 졸업생이기도 하고요. 현재는 서울의 한 방송국 편성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9월에 공저 시집 <나는 길을 걷고, 사랑을 잃었다>를 출간했고, 그 덕에 이렇게 좋은 기회로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김가은 시인 (김가은 시인 제공)
김가은 시인 (김가은 시인 제공)

 

Q. 언제부터 시를 쓰셨나요? 시를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글은 초등학생 때부터 즐겨 썼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시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요. 그러다 간호학과로 진학하면서 시간에 쫓겨 글과 멀어지게 됐어요.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니까 정말 우울하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동대에 편입했고, 3학년 때부터 시나리오와 극본을 쓰면서 평소 관심있던 시도 다시 쓸 수 있었어요. 책에 담긴 시들은 모두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쓴 시예요.

 

Q. 작가님의 시 주제가 ‘인과 생’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이 발견하신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요.

저는 저를 ‘프로편입생’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만큼 어릴 적부터 잦은 이사와 편입을 했고, 다양한 환경, 직업, 사람을 보며 자랐어요. 그러면서 인간의 생은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느꼈어요. ‘오늘’이라는 절대적인 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어제의 결과물이고,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위한 마중물이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바라보는 인간과 삶의 아이러니, 희로애락에 대한 시선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인생을 논하기엔 너무 어리잖아!’ 싶기도 하겠지만, 이때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시선도 있는 법이니까요.

23살의 제가 생각하는 인생은 실뜨기 놀이 같아요.(웃음) 저랑 인생이 서로 실의 양 끝을 쥐고 노는 거예요. 중요한 건 서로 같은 실을 잡고 있을 뿐, 인생은 결코 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나란히 붙어 힘을 겨루기도, 서로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히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과정’으로 볼 줄 아는 것, 상대를 이기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이 놀이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Q. 40편 정도의 시 중에 <산다는 건>이 제일 처음에 나오는데, 이 시는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온 시인지 알려주세요.

<산다는 건>은 ‘인과 생’이라는 시의 주제를 가장 잘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입사 후 한 달 지났을 즈음 쓴 시인데, 조금 우울한 시기였어요. 매 학기 치는 시험이 싫어 독하게 졸업하고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사회도 쉽지 않은 거예요. ‘내가 뭐 때문에 열심히 살았지? 뭐가 그렇게 급했지?’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후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이 시간을 다시 미래의 후회로 남기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 듯, 무엇이든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이 시를 통해, 미련을 두는 것이야 말로 미련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결국 마침표로 끝나니까,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다는 후회 섞인 물음표에서 이제는 괄호를 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의 시 중 <익숙한 사랑>이라는 작품이 위로로 다가와요. 계속해서 변해가는 세상 속에 작가님의 익숙함은 어떤 것인가요?

(중략)

그러니 익숙함에 소홀해질 이유도

익숙함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익숙한 사랑> 중

저는 익숙함을 행복해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짜 행복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살고 있어요. 변화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우리는 모두 삶의 여행자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에게는 돌아갈 집이 필요해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삶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잖아요. 꼭 가족이 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익숙하고 따뜻한 사람, 장소, 기억과 물건까지, 우리는 우리를 품어주는 익숙한 것들에 기대 새로움을 받아들여요. 그런데 우리는 때로 ‘익숙하니까 질려’ ‘익숙해서 재미없어’라며 소중한 존재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익숙함은 익숙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니, 익숙함에 소홀해질 이유도 익숙함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Q.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를 담으실 예정인지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대학 졸업과 사회 입학을 함께 겪으며 느꼈던 감정과 에피소드를 담는 중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이때의 감정을 복기할 수 없을 것 같아, 적어 둔 일기를 조금씩 다듬고 있답니다. 사회초년생을 위한 책들을 보면서, 늘 지침서는 많지만 에세이는 적다고 느꼈어요. 제가 보기에 사회초년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인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제가 쓰고 있는 에세이는 사회초년생이 쓰는, 사회초년생에 대한 지극히 현재적인 글이에요. 노련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제 또래의 청년들에게 순수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첫 시집 출간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저도 같이 벅차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 책을 출판하셨을 때, 서점에서 시집을 보셨을 때, 소감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무덤덤했어요.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 교보문고 ‘이달의 책’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수막과 전광판을 구경하러 갔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매대에 꽂힌 제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봤어요. 그제야 ‘와, 이게 되는구나’ 싶었어요. 책을 내는 건 제 장기적 목표 중 하나였거든요.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걸 보면서, 역시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한동에서의 경험이 시에 녹아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알고 싶어요.

영화이론 수업을 듣다가 ‘로드무비’라는 단어에 꽂혀 <인생 장르>를 썼어요. 로드무비 속 주인공의 길은 결국 ‘최선의’ 결말로 이어져요. 해피인지 새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그게 마치 우리 인생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인생은 늘 최선이었고, 최선일 하나의 작품일 테니 승패와 고락에 연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제 신앙고백을 담은 <당신의 밤>도 ‘새벽에 벌떡’을 하면서 썼어요. 새벽예배 준비를 하며 출애굽기 묵상을 하던 중,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눈먼 인도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뜨거운 광야를 목적지 없이 걷던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태양을 걷어내고 나타난 하나님의 불기둥이죠. 그때서야 우리는 외치는 거예요. ‘아! 당신의 밤입니다.’ 회개와 탄성이 섞인 이 진심 어린 고백을 지금도 품고 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 작가님만의 시 쓰는 꿀팁이 있다면요?

적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구, 머리를 스치는 시상은 모두 적어 두는 거죠. 저는 주로 퇴근 후나 주말에 글을 쓰는데, 업무시간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 두고 퇴근 후 다시 읽어봐요. 우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순간 중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보석 같은 깨달음이 많아요. 그 생각의 순간을 잡아내고 기록하는 습관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적당히, 하고 싶을 때 쓰는 것도 중요해요. ‘오늘은 이만큼은 써야지.’, ‘완벽한 글을 써야지.’라는 욕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그건 과제잖아요. 과제는 재미가 없죠. 그때부터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어버려요.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욱 삶과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오래,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Q. 작가님에게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문학을 한다’니, 뭔가 엄청난 것을 하는 느낌이네요(웃음). 제가 글을 쓰는 것에 어떤 거창한 대의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 조금 더 치졸한, 욕구불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제 생각대로 흘러가잖아요. 흘러가지 않으면 지워낼 수 있고, 더 이상 지워낼 것이 없을 땐 그 글은 완성본이죠. 우리 인생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삶에서 무언가를 완성해낸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래서 저는 가끔 현실도피를 위한 수단으로 글의 세계로 도망을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수백, 수천 편이 쏟아져 나오는 문학의 세계에서, 제 글은 작은 얼룩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비록 제 글이 남들이 알아주는 ‘역사’가 아닌 그저 작은 ‘흔적’으로 남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거라 믿고요.

 

Q. 한동대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다른 시집이나 문학 관련 책이 있을까요?

류시화가 엮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 시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여기서 잠언은 성경의 ‘잠언’이 아니고 오랜 시대와 역사 속 살아남은 지혜의 말을 뜻해요. 마더 테레사 같은 유명인부터 인디언의 기도문이나 작자미상의 시들을 한데 엮은 시집인데, 하나같이 단순하고 쉽지만 큰 울림을 줘요. 쉽다는 것이야 말로 쉬운 게 아니라는 것, 쉬운 시야말로 잘 쓴 시라는 걸 느끼게 해준 책이라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이 밖에도 소설로는 청년의 허무를 가장 꽉 찬 언어로 담아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추천하고 싶고요. 에세이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다 예뻐서 정말 밑줄을 그으며 읽게 되는 림태주의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와 유명 소설가 박완서씨가 우리 할머니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박완서의 <호미>를 추천하고 싶어요. 다 제 개인적인 취향이긴 합니다만.(웃음)

 

Q. 마지막으로 한동인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졸업하기 직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동문학상에 도전했어요. 시와 평론 분야에 투고했고, 평론에서는 수상했지만 시는 상을 받지 못했어요. 시에 애착이 있던 터라 못내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재능이 없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계속 시는 썼어요. 상 받으려고 쓰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 좋은 출판사에서 알아봐 주었고, 출판사가 맺어준 인연들과 책을 낼 수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삶의 여행자들이에요. 필연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해야 하는 로드 무비의 주인공들이죠. 그러니 실뜨기하는 마음으로, 섣불리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며 즐기면 좋겠어요. 저는 글을 계속 쓸 거고, 기회가 되면 또 책을 낼 거에요. 그러니 여러분도 넓은 하늘을 두고 낮은 유리천장 아래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바라요. 결국 어디에서든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인생이라면, 조금 더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황지영 기자 hwangjy@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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