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김준형 원장
▲사진1: 김준형 원장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이하 김준형 원장)을 만났다. 김준형 원장은 1999년부터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2019년 국립외교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김준형 원장은 미국정치전문가로 국제 정세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인정받아 외교부혁신 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을 맡으며 정부에 봉사해왔다. 그는 2019년 8월 12일 국립외교원장으로 임명을 받아 현재까지 국립외교원에서 외교관을 양성, 외교정책을 연구 및 자문, 국민과 소통하는 기관의 차관급 기관장이다. 지금까지도 국제정치에 관한 여러 저서를 썼고, 10월 10일 ‘코로나19 X 미국 대선 그 이후의 세계’를 출간하여 코로나19가 미국대선에 미친 영향,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한반도와 세계정세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냈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다. 미국대선이 마무리된지 얼마되지 않았고, 연말이라 회의가 많아서 시간 조정이 어려웠다. 60분간 진행된 인텨뷰에서 국립외교원장으로서의 삶과 바이든 당선으로 인한 변화를 물었다. 외교원장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또, 국제사회가, 한미동맹이, 북핵문제가, 한미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했다. 그의 생활에 관해서 인터뷰를 할 때는 온화한 표정이 그치질 않았다. 계속 미소를 띄우고 농담을 섞으며 유쾌하게 답변을 했다. 외교원장의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 “방학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 기자를 웃겼다. 반면,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해서 물을 때 그는 국제관계학 강의 때만큼 강하고, 날카롭고, 논리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대답에서 묻어나왔다. 

정하람 기자(정 기자): 
요즘 미국 대선 결과와 전망에 대한 강의에 많이 초청되신다고 들었습니다. 또 새롭게 연구할 것도 많으셔서 바쁘실 것 같은데요,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김 원장): 
알다시피 제가 작년 8월 12일에 여기 부임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기존 외교원 업무를 배웠고요. 외교원은 외무고시 대신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을 통해 후보자를 뽑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외교안보 연구소가 내부에 있어서 여기 소속한 교수들, 전문가들과 함께 국가정책을 분석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해외에도 외교관 연수원이나 연구소들이 많기 때문에 해외 기관과 MOU를 맺고 방문하는 일이 많습니다. 작년에는 해외 방문이 잦았는데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코로나 때문에 다 중단이 됐습니다. 오히려 학교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연구를 하고 책을 많이 썼고요. 2권은 이미 출판을 했습니다. 1권은 내년 초에 쓸 것으로 예상합니다. 학교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상황이 됐네요(웃음). 

제가 미국 전문가니까 미국 대선에 관해서 강의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모든 기관이 대면 회의를 할 기대로 강의를 미루다가, 10월 말부터 11월 말에 모든 기관이 비대면 회의를 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바빴습니다. 하루에 7~8개의 일정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정 기자:
학생들이 교수님이 국립외교원장이 되셨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외교원장이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를 것 같아요. 교수님이 맡고 계신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 원장:
정부 부처의 기관장처럼 보이는데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외교부에 직접 소속되어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저의 보스인 겁니다. 저는 외교부 3 차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국립외교원을 전담하고 있지만, 외교부 회의에도 참가합니다. 

국립외교원은 관료들도 오지만 학자들도 오는 곳이고, 교육기관인 동시에 연구기관입니다. 교육과 연구는 늘 다루던 문제였고, 교수님들도 다 학회에서 만나는 분들이기에 학교를 떠나긴 했어도  학교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반 공무원, 반 학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아주 다른 일은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를 빌려서 학교 국제어문학부에 교수님이 부족한데 빠져나와서 학생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말은 전하고 싶습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학교에 관해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얼마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의 8기 합격생을 뽑았습니다. 그중 여러분의 선배 한명이 합격했습니다. 한동대 최초인 것 같고요. 워낙 경쟁률이 높고 어려운 시험인데 여러분의 선배가, 그것도 제가 있는 동안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기쁘고 또 (함께할 생각에) 기대가 됩니다. 

▲사진2: 김준형 원장 비대면 인터뷰 캡처

정 기자: 
공무원과 학자의 생활을 동시에 하시니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업무를 수행하시면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무엇인가요?

김 원장: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매일 출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웃음). 출근하는 길도 멀고 교통체증도 많아서 힘듭니다. 방학이 없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7살 때부터 방학이 있었으니까 한 50년 정도 방학이 있는 삶을 살다가 방학이 전혀 없어진 진 셈입니다. 

또 하나는 학자에서 관리자로의 전환입니다. 저는 학자니까 일종의 참모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학자는 공약과 정책을 고안, 조언, 자문하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학자로만 규정했는데 관리자가 됐습니다. 기존의 연구업무와 교육 업무도 있고 관리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정 기자:
그러면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교수님만의 비법이나 취미생활 같은 게 있으신가요?

김 원장: 
없습니다(웃음). 학교에 있을 때는 학생들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출장을 가더라도 교수 신분일 땐 출장을 가면 스케줄과 기간을 조정하여 그 나라를 관광하는 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공무원 신분으로 공식적인 출장을 가기 때문에 일정만 마치고 바로 와야 됩니다. 물론 제가 교수일 때보다 의전이나 호텔은 많이 좋아졌는데 실제로 별 재미는 없습니다(웃음).

정 기자: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외교원에서 외교관 후보자들을 가르치시는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한동대 교수로서의 생활과 현재 외교원장으로서의 생활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 원장:
예, 당연히 차이가 있고요. 한동대 졸업생은 가끔 만나기도 하고, 지도했던 국제정치학회도 가끔씩 보기는 하는데요, 다릅니다. 여기서는 관리자로서 가끔 특강을 합니다만 세세하게 그들과 교류하지 않습니다. 한동대는 학생들과 교류가 많은 것이 특징이고 장점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외교원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외교관의 실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학교에 돌아가면 실제로 외교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 해줄 얘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 기자: 
교수님의 수업을 빨리 듣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지금까지 교수님은 1년간 외교원장의 업무를 담당하셨는데, 1년을 돌이켜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으시다면 몇가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 원장: 
제일 처음 들어왔을 때 울컥한 경험이 있습니다.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은 것입니다. 제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했을 때는 외교관이 꿈이었습니다. 그 당시 외무고시를 통과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1학년 때부터 독서실에 들어가 준비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연세대의 삶은 영화 <1987>과 흡사했습니다. 연세대에 입학하자마자 시대적 요구나 신앙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1학기도 마치기 전에 고시를 포기하게 됐습니다. 사실 도전을 안 했으니 포기가 아니지만, 늘 외교관의 꿈이 마음 한 켠에 있었습니다. 

그 꿈이 돌아 돌아서 이뤄졌습니다. 국립외교원의 옆 건물 외교센터 외교여권과에서 27분 만에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아마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 같은데요. 그것을 발급받았을 때, 울컥했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걸 받으면서 ‘사람은 너무 요령을 피우는 것보다, 자기 길을 꾸준히 가다 보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두 번째 기억나는 일은 외교원 교수님들의 신분을 보장한 것입니다. 정년 보장은 교수님들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교수들이 들어오면 학교처럼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었는데 2012년 법이 바뀌어 교수님들이 계약직이 됐습니다. 그래서 신분보장이 되지 않았는데, 제가 들어와서 거의 기적에 가깝게 정년보장이 되게끔 법을 바꿨습니다. 저는 떠날 사람이지만, 교수님들은 여기 있을 거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많이 고마워합니다(웃음). 

정 기자: 
마음이나 생각에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 원장: 
마음과 생각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유튜브나 글을 보시면 제가 강하게 얘기하고 정부에 비판적입니다.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던 사람으로서 생각을 같이하지만, 과거에 학자로서 독립성을 가지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됐습니다. 제 발언을 언론에서 문제 삼아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이 개인적으로 안 맞아서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의 이론과 실제 외교 정책 실무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책을 쓰고 정책을 얘기할 때 이제는 훨씬 더 현실적인 변수를 감안하게 됐기에 행복하기도 합니다. 

정 기자: 
교수님은 외교관을 꿈꾸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떻게 외교관을 꿈꾸게 됐고, 또  이 길을 꾸준히 걸으시게 됐나요? 

김 원장:
그때는 순진한 생각들이었습니다. 외교관이 멋 있잖아요. 하지만 현재는 전 세계로 워낙 여행도 많이 다니고, 글로벌 기업의 지사도 가는 등 글로벌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옛날보다 외교관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외교관들을 만나 보면 3D업종이라고 얘기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 불편함을 겪고, 우아한 협상을 하는 게 아니라 공항에 배웅 나가야 하고 복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공무원과 똑같다고 말합니다. 부부가 떨어져 있어야 하고 오지로 가야 해서 오히려 선교사 같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에 많이 공감합니다. 

외교관이 멋있어 보이는 부분에 더해서, 우리나라는 외교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작은 나라이지만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베네치아의 무역과 외교 역량 덕분입니다. 무역과 외교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며 평화를 얻어낸 국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좌우명이 있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복지이고 외교의 본령은 평화다”. 정치는 짐승과도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를 돌보는 문명의 체제라면 평화는 외교의 가장 귀한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교에 관심을 두고 이 길을 온 것 같습니다. 

정 기자:
사실, 모든 국가가 ‘이익’을 위해 권력 다툼을 하고 있다는 게 과언이 아닐 정도로 냉혹하고 각박한 곳이 국제사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은 말씀은 국제 정치에서 현실성이 없는 얘기 같습니다. 한동대에서 국제를 공부하는 학생이면 평화를 이룩하라는 신앙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 고민이 한번쯤은 있었을 것 같은데, 교수님은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사진3: 김준형 원장 비대면 인터뷰 캡처

김 원장:
기본적으로 평화가 온순하고 착하고 부드러운 것이고 전쟁은 격렬한 것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화는 치열한 외교협상의 결과이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도 필요합니다. 즉, 평화는 복합적인 것입니다. 평화를 부르는 것이 세상을 모르는 뜬구름 잡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분단에 만성화 되어 있으니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가기 싫은 군대를 가장 전성기 때 가야합니다. 남북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늘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를 겪습니다. 또 우리는 북한의 핵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아주 구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얘기한다고 이상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평화를 전세계에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국가입니다. 왜? 우리의 평화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평화는 진실되고 설득력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 얘기하는 평화나 중국이 얘기하는 평화는 배후에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전세계와 인류를 향해서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평화가 부족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기자:
교수님은 언제쯤 학교로 돌아오시나요? 많은 학생이 교수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김 원장: 
일단 임기는 2년인데 재임이 가능합니다. 재임에는 저의 뜻도 중요하고, 임명하신 분의 뜻도 중요합니다. 1기 임기는 21년 8월에 끝납니다. 지금 생각으로 학교에 죄송해서 1기 임기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아가게 되면 내년 9월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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