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언변이 좋고 화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는 언변이 탁월하지 못할뿐더러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어색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취재는 항상 나에게 일종의 도전이다. 
나는 내가 부족한 만큼 더욱 전략적으로 취재를 준비한다.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처음 계획했던 방향과 다른 답이 나올 변수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질문 리스트를 만든다. 하지만 철저함이 지나쳐 인터뷰 대상자의 답변을 섣불리 확정 짓고 특정 내용을 도출해내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나는 취재 시 인터뷰 대상자들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 기사의 의도에 부합하는가를 따지며 일희일비하고는 했다. 부끄럽지만 그들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준비해간 질문을 임의로 살짝 비틀어 어떻게든 원하는 결론을 얻어내려고 시도하는 얄팍한 술수를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학기 동아리 관련 기획 기사를 작성하며 내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만난 많은 동아리 회장들이 내 사고의 전환 계기가 되어주었다. 동아리 회장들은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 동아리를 존속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진실하게 나눠주었다. 그중 몇 명은 눈시울을 붉히면서까지 동아리를 향한 뜨거운 애정과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진실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준 그들과 달리 나는 이제껏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로만 들었을 뿐 결코 마음으로 듣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인터뷰 내용 중 기사에 쓸 만한 매력적인 발언을 색출하는 데 혈안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기자로서 일종의 고해성사를 한다.

상대를 소재거리로 치부했던 과거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고자 마감을 늦추고 종이신문 지면에 실리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오랜 기간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빼곡하게 만들어간 인터뷰 질문 리스트를 읊던 전의 모습과는 달리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듯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발언의 예상 파급력에 따라 중요도를 매기던 전에는 느낄 수 없던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동 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열정을 가지고 뜨겁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게 되었고 인터뷰 대상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자로서의 특권이자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통과 공감. 어쩌면 진부하고 재미없는 단어일 수 있다. 혹자는 소통과 공감이 가장 막연하고 뻔한 답이라며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통과 공감을 실제 삶에서 경험해본다면 이를 결코 클리셰로 여길 수 없다. 그 과정은 충분히 가치 있고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글을 통해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오래간만에 신문사 입사 당시 썼던 자기소개서 파일을 꺼내 보았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조명하고 약자와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사람냄새가 나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저 말을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시 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서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방법을 아주 조금씩 배워가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 어떤 의미로 ‘사람냄새가 나는 언론인’이 되겠다고 다짐했건 나는 이를 통해 내가 추구해야할 모습을 재고하게 되었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자질과 역량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 다른 이들에게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사람냄새’를 우위에 두고 싶다. 글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냄새’가 나는 기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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