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부 UIL 17 강한얼

코로나 /kəˈɹoʊnə/: 왕관

올해 승자는 코로나다. 전세계를 설치며 민생, 경제, 정치판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모두가 피하고 싶었지만, 이 바이러스는 점차 일상에서 떨쳐낼 수 없는 일부가 되었고, 약자부터 강자까지 모두의 얼굴에 마스크를 얹혀놓는 힘까지 행사했다.

‘코로나’의 뜻은 ’왕관‘이다. 이름이 ’코로나‘인 것은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봤을 때 왕관모양이 보이기 때문이다. 맨눈에 보이지 않는 이 왕관은 내가 알기도 전에 사람들을 뚫고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온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기독교인들은 곧바로 하나님과 성경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썼다. 이때 기독교 지도자들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여러 해석을 외쳤다. 하나님의 심판일까,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내린 시험일까?

정답과 무관하게, 확실한 건 이 코로나가 내 마음의 왕관을 들쳐냈다는 것이다. 강제로 사회와 거리를 두게 하고, 나를 지극히 제한된 환경에 몰아넣으며 내 마음 깊은 구석에 숨어있던 우상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 첫째로 드러난 우상은 내 마음 중심을 컨트롤하던 두려움이다. 내가 조금 아프면 코로나일 것 같은 두려움.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감염되지 않으려 걸치는 모든 보호막. 코로나 뉴스는 다 봐야하는 집착.

이렇게 내면에 뿌리박은 두려움은 ’나‘와 ’남‘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사람을 만나면 의심부터. 길거리 구궐하는 노숙자도 코로나 감염자로 가정하는 내 모습.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와 키워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 마음과 행동. 더 무서운 것은 이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이다. 집에 있을 때, 밖에 나갈 때, 다시 들어올 때마다 마음 깊은곳에 쌓이는 작은 감정 찌꺼기들이 쌓였다. 내 마음은 점점 내 생각과 불안으로 찼고, 점차 쓰레기 더미가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막아놓는 것 같았다.

답답함이 지속되며 드러난 두 번째 우상은 나도 모르게 표출하는 분노였다. 모든 일상의 흐름이 내 안전, 나 자신에게 집중되었을 땐 더 예민해지기 일쑤다. 특히 특정 집단들이 코로나를 전파하는데 기여하는걸 보며 더 격노하였다. 내 마음은 그들을 비판하기에 바빴고, 나는 최소한 그들과 같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 집단들이 그 다음 어떤 행동을 할지 예의주시했고, 도대체 그들은 왜이렇게 생명을 아끼지 못하는 무지한 행동을 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선동하는 리더와 폭력의 주체가 되어버린 것도 모르는 추종자들은 내 눈에 어리석어 보일 뿐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때마다 나는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쓰레기를 다시 찾아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 속 쌓아두었던 분노와 원망, 그 쌓인것들을 버리지 않고, 나중에 굳이 다시 찾아보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내 안에 더 많은 우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모이고, 바이러스가 퍼지면, 눈에 띄지 않는 더 취약한사람들이 생명을 위협받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엔 교회건물에 모여서 예배 드려야 한다는 신념. 나같은 사람 없으면 교회가 사라질 것 같은 교만도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하지 않으신걸 잊어버리는 무지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교회를 직접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나는 기독교인으로써 마땅히 신경써야 할 관심의 대상에 눈을 뜨는 대신, 내 자신에게 온 관심을 쏟았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믿는 세상적인 의로움을 품었다. 이렇게 코로나는 내 마음 속 우상을 들춰냈다. 내 마음 속 민낯이 드러날 때, 내 반응은 무엇일까? 오히려 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더 ’강한자‘의 위치에 올라가려 했고, 점차 오히려 노예가 되는 행동과 생각을 품어갔다.

이런 나를 보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나의 약함을 보셨을 것이다. 어둠과 비겁, 연약함과 어두운 상처까지 보듬어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을 잘 아시고, 세상이 보기엔 무력해 보여도 영혼의 빈곤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 폭력의 종이 된 사람조차 안아주시는 예수님을 나는 닮아갈 수 있을까? 한동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내 마음과 인성은 정말 ’남‘을 살리는 긍휼을 품을 수 있을까? 끈기있게 진짜 인생 실력을 자랑할 수 있을까? 

올해는 코로나가 나에게 선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언젠가 끝난다. 그땐 세상이 기독교인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한동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나 자신을 성찰하고 낮아질 수 있는 참 자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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