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법무부 저스티스 서포터스 – 시나브law

 

최근 들어, 우리는 신문 기사나 인터넷 기사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 분석에 따르면 전국 신문/방송사 54곳 보도 중 성적 수치심이 언급된 기사는 1990년 9건, 2000년 162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2641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올 해(2020년) 8월 9일 기준으로는 534건에 달한다.

 

• 수치(羞恥) 「명사」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표준국어대사전)

• 수치심(shame) :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정서 (심리학용어사전, 한국심리학회)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대법원의 판결문에서도 등장한다.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를 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판례를 통해 대법원이 판단한 ‘추행’의 의미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2011 도 8805)이라고 나온다. 즉,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접촉이 강제추행이라는 것이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셨습니까?’ 수사관이 물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예요, 수치심은.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어요. ‘아뇨, 수치심 안 느꼈는데요?’ 피해자인 제가 불리해질 걸 알면서도 그랬어요.” <한겨레>가 취재한 내용을 인용하면, 20대 중반 이나은(가명)씨는 2017년 늦은 밤 길거리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 피해자 조사를 받으러 경찰에 출석한 나은씨는 피해감정이 수치심이었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가 느낀 피해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닌 “불쾌함”이었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안 느꼈다고 말하자, 나은씨는 수사관의 태도가 바로 달라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아, 그러세요?’ 하면서 받아 적더라고요. 다른 질문은 없었어요. 그때부터 더 이상 피해 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거나 조사하려 하지 않고, 가해자 의견을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나은씨는 피해자인 자신이 “강제추행죄 구성 요건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을 해버린” 것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현재 법대로라면 나은씨처럼 ‘수치심을 느끼지 않은’ 성폭행 피해자도,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거짓 진술’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천 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분노, 공포, 무기력감, 불쾌감 등 천 개 이상의 피해감정이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그들의 감정을 담을 수 없다. 그들의 피해 감정은 지문처럼 다양하기에 정확하게 분류되고,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함에도 단 하나의 대답, 수치심을 강요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길 가다가 퍽치기당하면 수치스러워요? 열 받고 어이 없잖아요. 안 부끄럽잖아요. 그런데 성폭력 당하면 왜 부끄러워야 해요?”(40대) <한겨레>에서 인터뷰한 20-40대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들의 대답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회가 성적 수치심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1969년 형법 대개정이 이루어지면서 현재 독일 판례는 ‘음란’과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적용하지 않는다. 대신 ‘불쾌감 유발’ ‘성적 남용’ 같은 표현으로 대체됐다. 가해자의 행위를 되도록 객관적 언어로 담으려 한 것이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와 제14조 제1항에 대한 법 개정 움직임도 있었다. 2017년 9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박남춘 의원 대표발의), 2018년 4월 ‘성적 수치심’을 ‘성적 모욕감’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이춘석 의원 대표발의), 2019년 3월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수치심을 유발’한다는 표현을 가해자의 행위가 중심이 되는 ‘성적 대상으로 하여’로 바꾸는 개정안(윤소하 의원 대표발의)이 나왔지만, 아직 법은 바뀌지 않았다.

출처 - <한겨레> ‘성적 수치심, 안 느꼈는데요? ‘성적 빡치심’을 느꼈어요’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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