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변현승 기자 byeonhs@hgupress.com
▲사진 변현승 기자 byeonhs@hgupress.com

 

20-1학기 전면 비대면 수업이 결정됐다. 한동대 학생은 이전과 같은 대면 접촉을 하지 못한다. 작년까지 한동대 학생은 동아리, 학회, 신앙 공동체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교류를 하며 지내왔다. 비대면 수업으로 기존 교류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추세이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남아 있기에 여전히 편하게 모임을 하기 어렵다. 사람을 만나지 못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외로움이 찾아온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모두 혼자가 된 상태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이들은 비슷한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하지만 여러 학자는 외로움과 고독함에 내재한 의미로 둘을 구분한다.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외로움을 ‘혼자 있는 고통’으로, 고독을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 정의했다. 정신분석학자 설리번(Sullivan)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으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정의했다. 

 

인문 수필집 <고독의 힘>의 저자 원재훈 작가(이하: 원 작가)는 고독에 관해서 읽고, 보고, 느낀 것을 24장으로 나눠 소개한다. 원 작가는 사람을 ‘고독에서 태어나 고독에서 사라지는 존재’로 정의할 정도로 고독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가졌다. <고독의 힘>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외로움을 고독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는 <고독의 힘>에서 고독을 통한 풍요로운 삶을 격려한다.

정하람 기자 junghar@hgupress.com

 

 

긴 고독의 터널 끝에

 

만델라의 위대함은 노벨평화상 수상, 인종차별 정책 폐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되는 것에만 있지 않다. 그의 위대함은 기나긴 고독의 시간을 견뎠던 데에도 있다. 젊은 만델라는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해 군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1962년, 당국은 추적 끝에 46세의 만델라를 체포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46세는 정치인으로서 너무 젊은 나이였고, 종신형은 그의 투쟁 의지를 꺾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만델라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외로운 감옥에서도 묵묵히 미래를 준비했다. “인간에 대한 나의 믿음과 신념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어두운 순간이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다”. 1990년 2월 11일, 출소의 날이 찾아왔다. 약 일 만일의 장엄한 고독은 그에게 세상을 바꾸는 힘을 주었다. 말년에 그는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고 압도하여 뛰어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고독한 감옥에서 느꼈을 절망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그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1597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산도가(閑山島歌)>는 이순신 장군의 고독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한산도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 큰 칼을 만지면서 깊은 시름을 하는 차에 / 어디서 *1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는구나’. 1597년 2월 이순신은 파직당하여 한양으로 압송됐다.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 타인의 공을 뺐고 남을 모함한 죄 등의 죄목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 이후 53세의 나이에 이순신은 *2백의종군을 하여 따르는 병졸 하나 없이 전쟁터에서 싸웠다. 이에 더해 백의종군 중 그는 모친의 부고를 접해 모친상을 치렀다. 조정이 뒤늦게 그를 복직시켰지만, 이순신 장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12척으로 130척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전장이었다. 자신을 신임하지 않는 왕, 조정 신하들의 모함, 거대한 전란.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이 홀로 서 있는 것처럼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고독 중에 <한산도가>를 썼다.

 

어둠 속 빛을 뿌리는 고독한 등대같이

 

원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등대를 관리하는 해운항만청 직원들과 *3무인 등대 관리에 동행했다. 그가 향한 곳은 남해안에 위치한 무인도들. 일렁이는 파도를 뚫고 도착한 무인도는 수십 걸음만으로 섬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 그는 거친 돌과 젖은 흙을 밟고, 여러 섬을 오가며 등대를 점검했다. 등대 점검이 마무리되어 어둡고 막막한 바다, 파도에 흔들리는 선상에서 기진맥진한 채로 모두가 뭍에 닿기만 기다렸다. 멀리서 정박할 항구 쪽 등대의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선장, 직원, 작가 모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띄워졌다. 

 

등대는 뭍이 가까웠다는 안도감의 상징이다. 어둑어둑한 바닷속에서도 등대는 작은 무인도를 발판 삼아 자기 자리를 지킨다. 홀로 비바람을 맞으며 뭍에 오는 사람에게 어스름한 빛을 비추어 뭍이 가까웠다는 안도감을 선물한다. 이를 두고 원 작가는 어두운 바다에 고고히 빛을 뿌리는 등대같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고독하게 배려와 헌신의 삶을 다짐하는 사람을 생각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홀로 걷기

 

Q <고독의 힘>에서 고독함이 한 사람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해요. 고독함은 작가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나요? 

 

원재훈 작가(이하: 원 작가): 저는 소설과 시를 쓰는 사람이에요. 문학은 혼자 하는 일입니다. 제 일이 작가이기 때문에 고독함이 필수요소가 되었어요. 협업도 물론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지요. 같은 글을 쓰지만 드라마 작가나 카피라이터는 많은 회의를 진행해요. 이와 반대로 저는 자신만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어요. 또 저는 태생적으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고등학생 때도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 한 두시간 동네 산을 올라요. 이게 굉장히 고독한 일이에요. 언덕과 내리막길을 혼자 걸어가요. 넓은 산이 마치 좁은 골방처럼 느껴져요. ‘여기서 나는 혼자다’, ‘멈추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되죠. 고독은 나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고 이것 없이 제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요.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요. 

 

Q 고독함과 외로움이 되게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를 담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외로움과 고독함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원 작가: 요즘 사람은 구분하지만 저는 표현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고독하지만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이 말이 제가 말하는 고독의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고독과 외로움을 나눠 개념 정리를 해도 괜찮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굳이 나누어 표현해보자면 이럴 거 같네요. 고독은 자발적 선택이고, 외로움은 다가오는 것이지요. 걱정 같은 거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이 외부적인 요인에 굴하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Q 고독을 위한 고독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이 말해주더라구요. 작가님은 고독함을 추구하는 삶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 작가: 한 사람의 삶은 개인적인 역사이죠. 그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세상 사람들이 고독을 위한 고독을 느끼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흐나 슈베르트 같은 사람처럼 말이에요. 고흐가 위대한 예술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고독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에요. 작가나 예술가는 그런 고독이 없으면 안 돼요. 저는 이들의 그림과 음악은 좋아하지만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들의 삶은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일반적인 사람에게 필요한 고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정도라고 말하고 싶어요.

 

Q 현재 많은 대학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해서 많은 학생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이런 학생에게 해줄 말씀이 있나요? 

 

원 작가: 대학생들은 청춘을 마음껏 즐기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서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해요. 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인 거지요.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는 격리 상태를 내가 선택한 것처럼 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내가 제주도 와있다고, 알래스카에 있다고 생각하고, 꽃을 바라보면서 곧 풀릴 날을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이 시간을 다음을 위한 준비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이죠. 나중에는 고독한 준비 시간을 더 원하게 될지도 몰라요. 부지런히 준비해서 좋은 시간을 맞이하세요.

 

Q 한동신문을 읽는 독자층은 연애에 관심이 많을 20대가 주를 이룹니다. <고독의 힘> 3부 제목이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어라’이더군요.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나요? 

 

원 작가: 사랑할 때 많은 대상이 있어요. 신을 사랑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도 하죠. 성애는 어떻게 보면 사랑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사랑의 속성은 자기희생과 자기 포기에 있어요. 하지만 성애에 빠지면 계속 같이 있고 보고 싶어 하죠. 본인이 혼자서 못사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불행해져요. 혼자서 못사는 인간은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보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죠. 너무 멀어서 헤어지기보다 너무 달라붙어서 헤어지는 일이 더 많아요. 엄마에게 젖 달라는 듯이 달라붙곤 하죠.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살아요. 혼자서도 강인해야 해요.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세요.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평화로워져요. 적당한 그리움의 간격을 유지하고 다가가야 해요. 내 외로움은 내가 감당하고 상대방의 외로움을 감당해줄 태도로 다가가다 보면 상대방의 부족함을 품어 줄 수 있게 될 거예요.


 

*1 일성호가: 구슬픈 피리 소리

*2 백의종군: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감.

*3 무인 등대: ‘무인도에 있는 등대’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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