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하다. 가까웠던 지구가 멀어지고 당연했던 일상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겼다.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거센 물줄기가 언제쯤 잠식될 것인지 섣불리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순식간에 퍼져버린 변화 속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갑갑함과 삭혀지지 않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의 틈을 막기에도 숨이 벅차지만, 변화된 일상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단지 일상의 회복뿐일까. 

 

최근 몇 년 동안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대중의 뭇매를 맞은 사건들을 돌아보면 공통적인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 성범죄라는 맥락이다. n번방이 대중의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 ‘웰컴 투 비디오’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16일, 미국 법무부는 *다크 웹에서 운영됐던 세계 최대 아동 음란물 웹사이트 중 하나인 웰컴 투 비디오(일명 W2V) 피의자들을 공개했다. 32개국 국제 공조 수사 결과, 검거된 아동 음란물 소지자 310명 중 한국 국적인 사람은 228명에 달했다. 사이트의 운영자는 당시 23세였던 한국인 남성 손정우로 밝혀졌다. 이용자만 128만 명에 이르는 해당 사이트에서는 온갖 성 착취 영상물들이 유통됐는데, 생후 6개월 된 아기까지도 그 대상이 됐다. 

 

피해 범위와 이용 규모가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해당 사건은 한국 사회 내 심각한 성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2015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 산업 규모는 연간 37조 6,000억 원으로, 매일 같이 마시는 커피 산업의 6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매일같이 몸으로 체감하지 못할 뿐, 한국 사회 내 음란의 죄는 그 감각조차 잃어버린 듯 무지하고 또 만연하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n번’째 범죄가 언제, 어디서 자행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처벌에 있어서는 성범죄의 책임을 개개인에게 물어야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십여 년간 대중을 경악하게 했던 성범죄들 모두 수법과 전개 방식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지만 결국 문제의 원인은 성을 착취하고자 하는 쓰레기 같은 욕망의 발현, 곧 성적인 타락이었다. 성적인 타락의 근원은 정상적인 관계의 왜곡 및 붕괴에 있다. 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다른 자극으로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집착이 점차 커지면 그것은 곧 삶의 목표가 되고 자신은 그 목표의 노예가 된다. 잘못된 삶의 목표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고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죄’라고 말한다. 

 

우리는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당장 현실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를 두려워할 것인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숨겨진 죄악들을 두려워하고 경계할 것인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백신은 없고 전염력은 강하기 때문이다. 죄 또한 그러하다. 죄라는 바이러스는 육신만이 아닌 영혼까지 좀먹는다.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계의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크 웹: 접속 허가가 필요한 네트워크나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접속할 수 있는 웹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