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변현승 기자 byeonhs@hgupress.com
사진 변현승 기자 byeonhs@hgupress.com

 

여성의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1텔레그램 대화방 속에서 피해자를 조롱하는 말이 오갔다. 미성년자부터 성인 여성까지, 그들은 대화방 속 참여자들이 원하는 성적인 행위를 해야만 했다. ‘지인 능욕’이라며 주변 여성의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해 피해자를 모욕하는 글을 쓰는 방도 생겼다. 피해자가 자살한 사실조차 대화방 참여자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됐다. 피해자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통받는 그 방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n번방, 어쩌면 예견된 사건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범죄는 예로부터 꾸준히 발생했다. 1999년부터 100만 회원을 거느리며 불법 촬영 영상과 성 착취물이 공유된 ‘소라넷’은 운영자 1명만이 징역 4년을 처벌받았다. 2015년 등장해 수천 개의 아동 성 착취물이 거래된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는 사이트를 통해 4억에 달하는 이익을 얻었지만,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던 디지털 성범죄의 흐름에 따르면 n번방 사건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n번방 사건이란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 n번방에서 일어난 성 착취 사건이다. 해당 채팅방 운영자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그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판매했다.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이들의 수법은 이렇다. 주로 트위터에서 수위 높은 게시물을 올린 미성년자에게 경찰을 사칭하면서 겁을 준 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캐내 성 착취물을 요구하거나 영상을 제작, 유포했다. n번방에는 실시간으로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를 강간하는 영상이나, 여성의 가학적인 성적 행위가 담긴 사진이 공유됐다.

 

n번방 사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박사방은 지난해 7월 만들어졌다. 박사방은 ‘박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운영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사는 피해자의 몸에 칼로 자신이 지시하는 단어를 새기게 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했다. 박사방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땀 흘린 신상공개, 그러나 끝나지 않은 검거

 

지난달 16일, 박사방의 운영자 25세 남성 조주빈이 체포됐다. 경찰에 체포된 후 조 씨는 자신이 박사가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범죄 행위를 시인했다. 지난달 18일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타인의 수치심과 어린 학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주세요”라며 청원했다. 해당 청원은 청원 동의자 수 270만 명을 돌파하며 국민청원 도입 이후 역대 최다 인원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달 24일 서울지방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에서 조 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조 씨의 신상공개는 *2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신상공개 첫 사례다.

 

‘박사’가 잡혔다고 해서 n번방 사건은 해결된 게 아니다. n번방의 시초인 ‘갓갓’과 n번방의 운영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가해자들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n번방 사건에 가담한 ‘와치맨’ 전 씨는 지난해 공중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한 영상 등 불법 촬영물을 게시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됐다. 회사원으로 드러난 전 씨에게는 지난 19일 징역 3년 6개월이 구형됐다. 검찰은 전 씨를 기소할 당시 n번방과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후 n번방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며 추가 조사를 위해 *3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지난 6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는 전 씨에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 씨의 음란물 유포 혐의에 대한 다음 재판은 내달 25일 열릴 예정이다. 

 

미성년 가해자도 수두룩

 

이번 성 착취 사건에는 미성년 가해자도 다수 포함됐다. ‘태평양’이라는 닉네임으로 성 착취물 공유방 ‘태평양 원정대’를 운영한 이 군이 구속됐다. 이 군의 나이는 만 16세로, 박사방의 유료회원 출신이다. 이 군은 텔레그램 안에서 최소 8천 명에서 최대 2만 명의 회원이 가입된 ‘태평양 원정대’를 운영했다. 또한 ‘로리대장태범’이라는 닉네임으로 텔레그램에 성 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배 군은 지난 31일 춘천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신의 범죄 행위를 모두 인정했다. 배 군의 나이는 19세로, 공범들과 *4피싱 사이트를 통해 유인한 여중생 등 피해자 3명을 협박하고, 성 착취 영상물 등 76개를 제작해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유포했다.

 

성 착취물 공유방을 연결하는 ‘링크공유방’의 운영자인 닉네임 ‘커비’도 미성년 가해자다. ‘커비’는 18세 고등학생 조 군으로, 조 군이 운영한 링크공유방에서 약 2만 개의 성 착취물 링크가 공유됐다. 링크공유방은 ‘와치맨’이 구속된 지난 9월부터 급속도로 성장했다. 앞서 붙잡힌 ‘박사’는 조 군의 링크공유방을 이용한 운영자 중 한 명이다. 조 군의 링크공유방에서는 성 착취물 링크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박 사이트, 마약 판매 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 등도 공유됐다. 

▲일러스트 한지혜 기자 hanjihye@hgupress.com

 

더 큰 자극을 향한 끝없는 합리화

 

n번방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사용되는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규범을 따르며, 비도덕적 일탈을 합리화한다.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신성만 교수는 “그들만의 하위 그룹을 형성했을 경우, 일반 사회에서의 도덕적 가치와 규범이 아닌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관이 규범이 된다”라고 말했다. 범죄집단의 행동을 설명하는 ‘중화 이론(Neutralization theory)’에 따르면, 사회적 일탈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했더라도 특정 상황적 신호에 빗대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n번방 사건의 피해 여성 중 일부는 SNS로 신체 일부를 찍어 올린 행위로 협박 피해자가 됐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비난하며, 피해자가 성 착취와 같은 문제를 당할 만한 행동을 했다고 성 착취 행위를 합리화한다.

 

가해자들이 성 착취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한 것은 ‘중독’과 관련이 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중독의 큰 특징이다. 신 교수는 “인간은 어떤 식욕과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정 행동을 시작하는데, 그때의 만족이 즉각적이고 강렬할수록 중독될 위험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동일한 행동을 통해 자극을 반복해서 얻게 되면, 그 자극의 강렬함은 내성을 경험하며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가해자들은 법적 처분을 받고도 다시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다. n번방 이용자들에게 중독 치료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조주빈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가해자의 중독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n번방 속 성 착취물과 같은 대상으로부터 격리시켜 해독과정을 거친 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양상을 발달시키도록 습관 변화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

 

n번방 사건이 해외에서 일어났다면?

 

미국에서 발생한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 미국의 경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하면 초범이어도 최소 1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형량이 선고된다. 아동 포르노물을 소지한 사람에게도 최대 10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으며, 포르노에 등장하는 미성년자가 12세 미만이라면 최대 20년까지 형량이 늘어날 수 있다. 아동 음란물 제작, 배포 혐의로 지난해 기소된 피의자 마크 반웰은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마크 반웰은 고수익 모델 일을 미끼로 허위 페이스북 프로필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성적인 사진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사진을 보내면 온라인으로 누드 사진을 게시하겠다 위협하며 점차 수위 높은 사진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총 43명으로 대부분이 미성년자이다. 앞서 언급된 ‘웰컴투비디오’의 미국인 이용자는 징역 15년형, 영국인 이용자는 22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인 한국인 손 씨는 1년 6개월 형을 받아 이번 달 출소를 앞두고 있다.

 

가해자 엄벌은 필수, ‘다면’의 목소리

 

한동대 여성 관련 학회에선 n번방의 운영자부터, 소비하며 방관한 이용자 모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동대 법여성학회 ‘다면’은 “각각의 현행법만을 적용하지 않고, 방조죄나 교사죄 등을 적용하는 판례를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라며 “필요하다면 해외 사례들을 참고하여 아동·청소년 성 착취, 디지털 집단 성폭력 등에 관한 새로운 입법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다면은 무엇보다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을 자리잡게 하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꾸준히 일어났음에도 가벼운 처벌 태도로 일관했던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다면은 “이번 사건이 과거와 동일하게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성 착취가 개인의 난잡한 성향 정도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다면은 가해자의 숫자와 잠재적 범죄자 취급에 초점이 맞춰진 논쟁이 아닌, 한국 사회가 용인해온 여성 혐오적 범죄의 맥락들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기자회견 당시 조주빈은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현실의 그는 난관에 부딪힌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그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평생을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모든 성범죄를 결코 가벼운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n번방 피해자는 앞서 구속된 16세 범죄자보다 어린 여자아이들도 있다.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 내 무관심하기 그지없는 성범죄 처벌에 대한 경고이다. 가해자의 반성하는 태도를 고려해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게 아닌,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1텔레그램: 2013년 등장한 무료 보안 메신저.

*2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5조)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3변론재개: 변론이 종결되었음에도 증거 등이 불충분하게 제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신청하여 변론을 종결하지 않고 재판을 재개하는 것이다.

*4피싱 사이트: 개인 정보를 빼내기 위하여 만든 인터넷 사이트. 주로 믿을 만한 사람이나 기업에서 보낸 것 같은 안내 메일을 보내어 위장된 인터넷 주소로 접속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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