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나와 다르지 않은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북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흥미로운 설정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보세요>는 한국에 살고 있는 중년여성 ‘정은’이 우연히 북한 여성으로부터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보세요>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통일 기획전 부분에서 상영된 단편 영화로 부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정은과 북한 여성의 삶을 비추며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는 분단 상황과 남북 관계의 변화에 대한 바램을 담고자 했다.

<여보세요>는 오는 5월 극장에서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여보세요> 한 마디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정은은 어머니가 6·25 때 헤어진 여동생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거나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겠다고 조르는 모습에 당혹스럽다.

어느 날, 정은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북한 사투리 억양이 배어있고 그녀는 ‘여기는 북조선’이라고 말한다. 황당한 정은은 보이스 피싱이라 생각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린다. 다음날에도, 며칠이 지난 후에도 여자는 정은에게 전화를 걸어 ‘남조선’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심지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정은은 큰돈을 요구하고, 생각지도 못한 큰 액수에 화가 난 여자는 정은에게 실망감을 내비친다. 두 사람은 언쟁 끝에 전화를 끊는다.  

한편, 정은의 어머니는 여동생을 만나러 가겠다며 밤에 병실을 나와 헤매어 다니고 어머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판단을 한 정은은 북한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자신도 그녀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예상치 못하게 전화통화를 통해 시작된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고, 두 여성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부 감독은 지척의 거리에 있음에도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쌓아가는 남과 북의 현실을 두 여자의 모습을 통해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그리고 영화 속 두 인물이 초반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듯이 한반도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염원하게 된다.

 

가깝지만 먼 나라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는 작품의 줄거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해 상상해보게 한다. 현재보다 남북 간의 경비가 삼엄했던 과거의 경우, 관계 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갈 소지가 다분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정은은 통화를 하기 전 항상 주변을 살핀다. 영화 속 긴장하는 정은을 보며 관객들도 함께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놀랍게도 북에서 전화가 온다는 사실에 대한 비현실성이 크게 자각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제는 전화 연결이 가능해졌다’라고 한다면, 큰 의심 없이 ‘미처 몰랐는데 언제부터 가능해졌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가깝다고 느끼기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고, 복잡한 이해관계 가운데 갈등으로 인한 괴리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상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북한과 남한이 서로 자유롭게 전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비록 가상의 설정이라 할지라도 영화는 우연한 대화를 통해 물꼬를 튼 관계에서 안부를 묻고, 사정을 묻고, 그 가운데 마음이 움직이는 인물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영화가 담고 있는 그 변화의 과정은 남과 북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전화라는 매체는 대화를 만들고 대화는 소통을 이끌어 낸다. 이렇듯 사소한 소통의 시작이 바로 남북 평화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체제와 이념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다

 

<여보세요>의 연출을 맡은 부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현실을 담은 영화 ‘카트’, 몽골 이주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니마’ 등은 사회적 약자가 경험하는 삶과, 그 안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위와 같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힘이 약한 이들의 힘겨운 현실을 등지지 않고, 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보세요>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낸다. 민감한 문제를 담아내면서도 자극적인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는 작품의 연출 방식은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어 관객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 <여보세요>다.

 

<여보세요> 부지영 감독과의 만남

 

부지영 감독의 작품 <여보세요>는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통일부장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분단의 상황 가운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통일에 관련한 작품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부지영 감독(이하 부): 통일부는 2015년부터 해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하는 단편 영화들을 선발, 제작지원 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기성 감독들에게도 제작 의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그간 통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통일이 되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지만 남, 북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북한의 핵 폐기 등 복잡한 문제들이 엮여 있어 점점 내 문제라기보다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됐습니다. 특히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로 인해 한반도 통일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이후에는 의지만 있다면 한반도 정세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밀쳐두었던 숙제처럼 단편영화 제작 제안을 받아들였고 분단국가에서 사는 평범한 개인으로서 한반도 통일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하는 기회를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영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북에서 걸려온 전화를 남에서 받는다’는 설정을 넣으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 ‘북에서 걸려온 전화를 남에서 받는다’는 설정은 영화적 상상력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실제 자료조사에 근거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료조사를 통해 미처 몰랐던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 제가 압도적으로 놀랐던 것은 북한 주민의 20%, 그러니까 500만 정도가 휴대폰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수치는 더 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쓰는 휴대폰은 인트라넷으로 작동되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휴대폰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지역에 한해서 통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마당(북한의 종합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북한 주민들 중엔 중국과의 무역에 용이하도록 중국산 휴대폰을 구해서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산 휴대폰은 우리가 쓰는 휴대폰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중국산 휴대폰으로는 (와이파이가 잡히는) 중국과 가까운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세계 어느 곳과도 통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과 거의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조건에 기반해서 영화 속 주인공 정은이 북한에서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는 설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물론 기저에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호의적으로 변하고 남북한 정상들의 통일 의지가 높은 건 환영할 만한 일인데 실제 남과 북에서 살고 있는, 언젠가 서로의 땅을 오고 가고 마주치고 혹은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를 우리들은 사전에 어떤 교감이나 교류를 나누고 있는가. 국가적으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닌 그러니까 이산가족 상봉이나 스포츠, 문화 예술 교류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의 평범한 교류는 나눌 수 없는 건가 라는 의문에서 북한 여자와 남한 여자가 우연히 전화통화를 한다는 설정이 생긴 것입니다.

Q ‘정은’에게 처해진 현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바는 무엇인가요?

부: 정은은 홀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성 노동자입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간병하기 위해 낮에는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건물 청소를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 ‘영신’은 6.25 때 피난길에서 부모님과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과 헤어져 남한에서 오랜 세월 한 맺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정은에겐 하루하루 현실이 버겁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아프지만 지난 과거는 그녀 삶에서 중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신의 증상이 심해져 북한에서 이미 운명을 달리한 여동생 영옥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와 칠보산에 가겠다고 정은을 채근하기 시작하면서 정은의 고민이 깊어져 갑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내 앞의 삶만을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에겐 인장처럼 뚜렷이 분단의 역사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한 비극도 엄연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는 언제라도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정은도 이제껏 모른 체하고 싶었던 영신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결국 분단이라는 시대 상황을 느끼고 작게나마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Q 전작들을 비롯한 감독님의 작품에서,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감독님께서 작품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부: 많은 감독들이 그렇듯 저도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영화를 만듭니다. 인간을 망치고 절망에 빠뜨리고 죽이는 것도 인간이고 사랑하고 감싸고 응원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입니다. 세상엔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런 다양한 인간들을 만난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경험을 합니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인물을 만들어낼 때 고민이 깊습니다. 인물을 표피적이거나 전형적으로 다루지 않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영화를 볼 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송수빈 기자 songsb@hgupress.com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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