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12시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한다. 그들의 요구는 단 한 가지 일본군 위안부 조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다. 천 번이 넘는 수요집회를 열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2018년 5월 25일, 현재까지 살아있는 위안부 생존자는 총 28명이다.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자들은 당시의 아픔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영화 <눈길>은 이러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비춰준다.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

종분과 영애는 부모의 말을 잘 따르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소녀들이다. 종분은 영애의 오빠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영애는 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교사의 꿈을 키운다. 꿈으로 가득 찼던 소녀들의 삶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폭력으로 송두리째 짓밟혔다. 종분과 영애는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소녀들과 함께 강제로 기차에 실린다. 기차에 있는 누구도 기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참을 달려 소녀들이 도착한 곳은 일본군 위안소였다. 햇빛 한 줌 겨우 들어오는 창문이 뚫린 방에서 소녀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군인에게 강제로 성폭행당했다.

“영애야 저기 봐라. 산도 없이 어찌 저리 넓데. 영애야 너는 기차 타봤지? 참 끝도 없이 간다. 봐라. 어디까지 갈려나. 엄마가 기다리겠는데 말도 못 하고 와서 나를 찾을 텐데. 나를 찾을 건데. 한참을 찾을 건데” - 극 중 종분의 대사

종분이와 소녀들이 위안소에서 배급을 받고 있다.

위안소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위안소에서는 매일 강제로 피임약을 복용시켜 소녀들이 임신 되지 않도록 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하다 보니 성병에 걸린 소녀들도 있었다. 만약 임신하거나 또는 성병에 걸리면 총살을 당했다. 조선말을 썼다는 이유로 일본군의 구둣발에 차이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러한 삶 속에서도 소녀들은 서로 의지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일본군이 위안소의 소녀들을 총살하려고 할 때 영애와 종분은 이를 눈치채고 위안소에서 탈출한다. 영애와 종분은 하얀 눈으로 덮인 산길을 정신없이 달린다. 하지만 결국 탈출할 때 총에 맞은 영애의 붉은 피가 하얀 눈을 적신다. 종분이는 목화솜같이 하얀 눈을 영애에게 덮어주고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향해 걸어간다.

“종분아, 이거 너가 가지고 있어. 여기 있는 우리 애들 너가 기억해야해. 난 좀 쉬었다 갈게. 니가 왜 혼자야. 애들이 다 너랑 있는데. 이제 가. 가야 돼. 너 혼자 보낸다고 섭해 말어. 눈 봐라 종분아. 엄마가 고향서 목화솜 누던 것 생각난다. 참 따듯했는데 이렇게 폭신폭신했는데..." – 극 중 영애의 대사

서로에게 눈길을 주다

할머니가 된 종분은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옆집에 사는 고등학생 은수를 만난다. 은수는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졌고 얼마 전까지 같이 살던 할머니마저 잃었다. 학교에 가봐야 친구도 없고 담임선생님마저 은수를 외면한다. 종분은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학교 밖을 떠도는 은수에게 왠지 모를 동정심을 느낀다. 은수가 한 아저씨와의 실랑이로 경찰서에 붙잡히자 은수는 종분을 자신의 보호자라고 경찰서에 불렀다. 종분은 은수를 탓하는 경찰과 아저씨에게 “혼자서 야가 할 것이 뭐가 있겠어. 무섭고 외로워서 나가는 것을. 그것을 잡아주지 않고 같이 술 마시고, 주물러대고”라고 소리친다. 경찰서를 나온 종분과 은수는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무게를 진 은수는 종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할머니,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좀 쉬워지나?”라고 울먹이는 은수에게 종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꿈 많던 소녀의 삶들이 무너져버린 그때의 기억을.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차가운 눈길 위에 서 있던 은수와 종분은 서로에게 온기가 돼 준다. 은수는 종분을 의지하고 성실하게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됐다. 은수를 만나면서 종분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종분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80년 가까이 영애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1940년대 만주에서의 기억은 80년 가까이 종분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종분에게 은수는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은수를 통해 종분은 부끄러워 숨기려 했던 과거를 직면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최종분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위안부 문제 해결 사회 운동에도 앞장선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종분와 은수는 서로를 녹여주고 치유해준다.

영애가 종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있다.

“나는 이 눈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요. 옛날에는 목화 따다가 말린다고 죄다 방에다 널어놨었거든. 그게 보기만 해도 얼마나 포근했는지 몰라. 눈이 쌓인 것 같이 얼마나 부들부들했는지 몰라요” – 극 중 종분이 대사

잘못은 그들에게 있지 않다

종분의 끔찍한 과거와 은수의 버거운 삶의 무게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따로 있다. 과거 일본 정부는 어린 소녀들을 끌고 가 강제로 전쟁에 동원했다. 은수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았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아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외로운 삶을 살던 둘의 만남은 서로에게 힘이 됐다. 종분과 은수는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기죽어 있냐며 힘을 불어넣어 준다. 종분이는 경찰서에서 은수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외쳤다. 은수는 종분이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듣고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치유되기 시작한다.

영애와 종분이가 빨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또 생지옥이야. 나는 끌려가서 기록에 남지않아 친구의 이름을 빌려서 살았지. 그 때 여자들 이상한데 끌려갔다 왔다고 말이 많았어. 부끄러웠어. 그 길로 고향을 떠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어”
“그거 부끄러운 것 아니예요. 할머니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요. 그 새끼들이 나쁜거지”- 극 중 종분과 은수의 대화

<눈길> 이나정 감독과의 만남

<눈길> 속 이야기전개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일본군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이나 그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 등 자극적인 장면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았다. <눈길>은 자극적인 장면이 아닌 위안소에서 살아가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했다. 이나정 감독은 “폭력의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계시고 그것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작가님도 대본을 쓸 때 소재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라고 말했다.

Q <눈길>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나정 감독: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이 주제에 대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기획을 해 주신 류보라 작가님의 ‘더 늦기 전에’라는 기획 의도에도 진심으로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에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 중 당시 소녀들의 바람을 적은 기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가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 “좋아하는 오빠와 결혼하고 싶다”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푹신한 이불을 덮고 싶다”
그동안은 이 주제가 멀고 먼 일본 강점기의 비극으로만 느껴졌는데, 소박하고 평범한 바람들을 읽다 보니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청춘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은 꿈많은 소녀들의 비극이 절실하게 느껴졌고,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진심으로 잘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용기가 났습니다.
Q <눈길>이 KBS 특집드라마로 먼저 선보이고 영화로 재개봉 했어요.

이 감독: 위안부 관련 문제를 다룬 작품이니만큼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만약 TV컨텐츠 만으로 소비된다면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영화화를 목표로 기획하고 촬영하였습니다. 영화로 제작된다면, 다양한 나라, 다양한 관객층에게 좀 더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버전은 각종 인권영화제나 세계 영화제 등에 많이 초청되어 위안부 관련 문제를 좀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Q 영화 속에서 눈이라는 소재가 자주 나오는데 눈과 눈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감독: ‘눈길’은 ‘눈으로 덮인 길’이라는 뜻도 있고, 우리의 관심이 향한다는 뜻으로 ‘눈길이 간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 소녀들이 걸었던 차갑고 힘겨운 <눈길>을 표현하고 싶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라는 의미도 함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영화 속 ‘눈’은 차갑기만 한 의미가 아닙니다. 포근하게 눈이 쌓인 길을 바라보면서 영애는 어릴 적 엄마가 덮어 줬던 ‘목화솜 이불’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영애가 죽었을 때, 종분이는 울면서 눈송이를 이불처럼 덮어줍니다. 차가운 눈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 눈은 목화같이 포근할 수도 있고 용기 있는 한 걸음을 새겨줄 수 있는, 깨끗한 도화지 같을 수도 있습니다.
Q 영화 속 등장했던 은수라는 캐릭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감독: 1945년에도, 2018년 지금도 차가운 눈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신경이나 쓰겠니.” 폭력을 당해 엉망이 된 영애가 종분이에게 위안소에서 하는 대사입니다. 현재의 은수 역시 그런 심정입니다.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복지 이슈와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부양가족에게 버려졌는데도 법적 부양가족이 소득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합니다. 부모에게 버려져도, 부모가 소득이 있으면 아이들은 국가로부터도 지원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먹을 것도 없고 집도 없는 미성년자입니다.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현재에 나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에 대해 그리고 싶었습니다.

Q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순사에게 맞고, 피를 무서워하는 군인은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이 감독: 조심스러운 접근이지만,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에 대해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소년병들 역시 무작위로 동원돼 전쟁 가운데 죽어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움에 떠는 한 인간의 모습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가해자이기에 설득력 있는 스토리라인으로 자세하게 표현하지는 못했고 간단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짧게 마무리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 감독: 우리는 이 문제가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들어왔고 이미 알고 있는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나와 다르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겪게 된 거대한 비극,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생각해 보면서 많은 분이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4월에 최덕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분들이 이제 28분 만이 남아 계십니다. 전쟁 속 피해 여성, 사회적 약자들에게 한 번쯤 ‘눈길’을 보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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