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보도
[인터뷰 전문] 256호 대학기획 한동대 리더십 인터뷰
강우주 기자, 추연국 기자  |  kangwj@hgupress.com, chuyk@hgupres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23  12:52:3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곽진환 교무처장 인터뷰>

Q 학칙에는 교육 목적을 대한민국 교육이념과 기독교정신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대학이 어떻게 상호 공존할 수 있을까, 기독교라는 측면과 학문이라는 것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곽진환 교무처장(이하 곽): 질문이 틀렸네. 질문 자체가 기독교와 대학은 별개라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사실 이제 모더니즘의 시대의 사고야. 그지? 왜냐면 여러분 알다시피 학문과 이성은 하층부의 개념이고, 하나님의 은총과 초자연적 세계 즉 계시의 영역은 마치 구분된 거로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신앙과 학문은 양립할 수 없다. 이게 이제 데카르트의 실증주의 인거잖아 그지? 왜냐면 학문이라는 것은 합리적으로 검증돼야 하는데, 신앙은 그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학문과 신앙은 별개라는 그 생각에서 이 질문을 만든 거잖아. 근데 이게 틀렸다는 건 알지?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 의해서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인본주의와 계몽주의는 중세 때 중세 때는 사실 수도원이나 대학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잖아. 그치? 근데 기독교적 영향을 없애는 것이 학문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거든. 그러면 이게 바로 밸류프리(Value free)인 것이다. 객관적인 거다 가치 중립적인 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토머스 쿤은 그게 아니다. 데카르트는 학문에서 기독교 신앙을 제거한 순간 무신론과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집어넣은 거다. 그러니까 밸류프리(Value free) 한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학문은 가치중립적인 것과 객관적인 게 아니라 무신론과 인본주의 인간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것에서 나온 거지, 가치 중립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야. 그게 바로 모더니즘이 사형선고 받은 것 아냐. 그러니까 이 질문 자체가 기독교와 대학 학문과 신앙은 별개다. 이래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모든 학문에는 전제가 있다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기독교적 학문이 연구 가능하게 된 거야. 기독교적 학문연구 at 현대학문세계라는 책 읽어봤나? 찾아봐. 필독서야. 현대학문에서 기독교적 연구가 가능하게 된거야. 기독교 대학이라는 것은 불교대학과 마찬가지로 다 가능한 거야. 그러니까 기독교 대학하고 대학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가? 이것은 모더니즘 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에서는 누구나 당연한 거야.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 학문 연구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리는 뭐냐면 이것이 바로 다원주의가 되겠지. 진리가 상대화되고 진리가 다원화되는 건데, 기독교 대학은 모든 진리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말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가장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가장 앞뒤가 막힌 그런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까 포스트 모던은 기독교 학문에 있어서는 기회이기도 하면서 위기이기도 하는 거야. 왜냐하면,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다. 하나님의 진리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학교가 어떻게 생겼느냐면, 밀라노 칙령 313년에 기독교 공인되면서 기독교 타락이 일어난 게 313년이야. 기독교가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타락했어. 11세기까지는 중세를 암흑으로 얘기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가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롤 모델 했으면 괜찮은데 타락을 한 거야. 오히려 교황이 황제보다 더 강한 파워를 가지고, 카노사의 굴욕. 그러다 보니까 기독교가 너무 타락하면서 또 하나가 뭐 나면, 그 시대의 모든 헬라 문화. 이 헬라 문화는 뭐지? 사단적이고 비기독교적이잖아. 이걸 다 불살라버렸어. 인간 이성의 찬란한 유산 불살라버리고 쫓겨났어. 얘들이 어디로 갔냐면 아라비아반도로 간 거야. 11세기에 이슬람 권역이 정치적 파워를 갖게 되면서 동로마 서로마 침공하게 되면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됐지. 왜냐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러면서 십자군 전쟁을 가면서 이 사람들 명분은 잃어버린 걸 회복하는 거였어. 죄수들이 갔어. 갈 사람들이 없어서. 신분 세탁해준다 해서 초기에 좋았던 일차 때부터 그런 건 아니지만 2차 3차 가면서 명분이 약해졌다. 중요한 건 이때 전리품으로 헬라 서적을 가져 왔어. 아라비아어로 된. 아라비아어로 된 헬라 서적을 번역하기 위해서 전문 기관이 필요했어. 그게 바로 대학의 시작이야. 내가 이야기하는. 이태리 파리대학 이런 대학들이 길드 형태로. 이슬람 언어로 쓰여져있는 이 헬라 문화를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진 거야. 인간의 이성이 이처럼 위대하구나. 지금까지 억압했는데, 상층부 하층부 개념을 나눴잖아 그치? 그러면서 인간이 이성에 대한 회복. 르네상스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14세기 15세기 사이 이제 유럽 사회가 엄청난 혼란에 빠져요. 지금까지는 기독교적인 생각에서 철학은 신학의 하녀였던 그 단계에서 이제 철학이 힘을 가지게 된 거야. 그때 등장했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래서 토미즘이 된 거야. 토미즘이 뭐냐하면 하나님 은총 세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까 얘기하는 상층부 하층부. 하나님 은총과 인간의 이성, 학문과 계시 등등. 지금은 이성과 학문이 등장하면서 서로 관여하지 말자. 기독교는 상층부에만, 일반 학문은 밑에만 하라 해서 평화 공존을 이룬 거야. 기독교는 세속 학문으로부터 침입으로부터 막을 수 있고, 세속학문은 하나님 은총이 우리 학문을 인정해라. 신앙 영역을 인정해라. 이게 계몽주의까지 유지가 된 거야, 그러다가 데카르트 등장하면서 신앙 하나님의 은총 영역을 공격했어. 이거 다 거짓이라고 한 거야. 실증주의는 눈에 보이고 증명 가능한 것만 진리이다. 앞으로 학문이 더 발달되면 이것이 다 사라질 거라고 말하는 게 모더니즘이야. 모더니즘 되면서 모든 기독교는 학문에서 추방을 당한 거야. 데카르트가 한 말이 무엇이냐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적 자살 행위다’ 이렇게 말한 거야. 그래서 학문과 이성은 대립 관계가 된 거야.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중진리설, 공존하는 것. 그러니까 상층부의 진리 하층부의 진리 그게 토미즘이야. 이중진리설. 서로 관여하지 말자. 평화 공존하자 근데 이게 무너졌지. 데카르트는 무슨 소리냐 이게 다 이성이다. 다 무너뜨린 거야. 그래서 학문이 발달되면 기독교 신앙은 사라질 거다. 이게 데카르트의 예언이었어요. 왜냐하면, 신앙의 불합리성은 학문의 합리성 앞에 다 무너질 거다. 그게 바로 모더니즘이 지금까지 온 거야. 20세기 초반까지. 그 전통을 받은 사람은 기독교적 학문이라고 하면 이게 다 미신이야. 왜냐하면은 기독교라는 패러다임이 들어간 거잖아. 전제가 들어간 거잖아. 그런데, 토머스 쿤은 데카르트는 가치 중립이 아니란 거야. 신을 제거하는 순간 무신론이라는, 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할 수 없듯이 신이 없다는 것도 증명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무신론은 과학이 아니야.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 종교라는 거야. 실제로 인본주의는 미국 대법원에서 종교라 판시를 했거든. 인본주의는 종교라는 거야.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 종교라는 거야. 그니까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우주에 의해서 모든 학문은 어떻게 돼? 가치중립적인 학문은 없는 거야. 모든 학문은 전제를 갖는 거야. 무신론적인 전제, 불교적 전제, 기독교적인 전제. 이렇기 때문에 대학과 기독교는 데카르트의 전제에 의하면 양립이 불가능하고, 토미즘에 의하면은 서로 이분법으로 나누자. 학문과 신앙의 모델은 대립 모델이 있고, 이중진리설 서로를 인정하는, 파티션이 있어. 세번째로는 인터그레이션(Integration), 융합이라기 보다는 학문과 신앙이 별개가 아니다. 학문의 발전이 신앙에 영향을 주고 신앙이 학문에 영향을 준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신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가 없는 신앙은 절름발이와 같다. 이런 말이 학문과 신앙은 서로 상보적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기독교 대학은 언제 시작이 되었느냐 하면, 17세기에 1630년대에 청교도들이 건너오면서,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메이플라워 타고 신대륙으로 들어온 거 아니야. 그곳에서는 구교의 핍박이 없으니까. 종교의 자유를 찾으러 왔는데, 그러니까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그 당시 초중고는 있지만, 대학은 이제 다른 고등교육을 하는 거잖아. 그래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르치는, 청교도 윤리라던가 기독교 신앙 가르치는 학교가 필요해서 흔히 말하는 모든 그 당시 아이비 대학이, 한 대학 빼놓고 코넬 대학은 상원의원이 대학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든 대학이 코넬대학 유일한 대학이고, 나머지 아이비리그는 전부 다 하버드도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해서거든, 장로교가 세웠어. 프리스턴, 콜롬비아, 모든 대학이 다 기독교 교단에서 지은 거야. 이 대학이 처음에는 기독교 신앙으로 시작하다가 학문이 발전이 되면서 대학이 두 가지 선택을 해야 돼. 아카데믹 엑설런트를 취할 건 가, 아니면 끝까지 기독교 대학의 정체성을 지켜야 되는가. 그래서 1기 대학은 기독교 대학의 정체성을 포기를 했어. 좋은 논문 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수를 모셔오면서 신앙을 안 본 거야. 그러면서 아이비리그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지만 기독교 대학으로의 정체성은 다 잃어버렸어. 하버드 가보면 채플이 있지만, 텅텅 비어 있어. 그런데 모든 대학이 아카데믹 엑설런스를 추구하다가 기독교 대학은 모두 사라져버렸어. 그게 뭐냐면, 교수들 때문에. 교수들이, 실력 좋은 교수들이 왔는데 기독교적인 가르침과 전혀 관계가 없는 거야. 그래서 기독교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야. 학생들은 4년 5년마다 졸업하지만, 이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은 교수들과 교직원들이야. 이게 너무너무 중요해. 그래서 1기의 기독교 대학들은 아카데믹 엑설런스 추구하다가 기독교 대학의 정체성을 포기한 거야. 그런데 2기 기독교 대학은 여러분 잘 아는 캘빈이나 위튼 바이올라 대학은 기독교가 세속화되면서, 그리고 여러분 종의 기원 공산당 선언 1859년 뭐 이렇게 되면서 그 당시에 1기 기독교 대학은 한 100년 200년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적 영향은 미칠 수 없었어 좋은 대학은 됐는데. 그래서 미국 사회에서 다시 우리의 기독교적 지도자를 만들어야 된다. 이 세속의 흐름에, 지금 봐라, 공산당 선언과 이념 대결, 종의 기원 이런 것들은 학문적 도전이잖아. 바로 고 시점에 미국에서 기독교적 지도자를 만들어야 양성해야겠다고 한 대학이 바로 그런 대학이었어. 그 대학의 역사가 130년 150년 돼. 종의 기원 시기하고 똑같아. 1859년 종의 기원 나온. 그러니까 2009년이 150년 되는 해거든. 어쨌든 고때 만들어진 대학은 지금도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어 그렇치만 학문적 영향력은 약해. 왜냐하면은 이런 대학은 연구중심이라기보다는 강의 중심, liberal art 중심 이런 데를 하다 보니까, 자연과학 이런 분야의 최첨단 연구를 할 수가 없는 거야. 왜냐하면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면 우리는 학문을 하는데, 그냥 학문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본. 성경은 우리가 들여다보는 책이기도 하지만 통해서 봐야 되는 책이야. 그래서 성경은 미러 이미지도 있어. 우리가 성경이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내면화하고 말씀에 비추는 것 그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큐티라든가 귀납적 성격연구, 성경공부라는 것은 다 성경을 거울의 이미지로 가지고 공부하는 거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독교 대학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돼. 기독교 대학에는 성경은 통해서 볼 책인 거야. 성경은 창문이야 창문.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성경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보는거야. 그 창문이 노라면 세상은 다 노랗고 빨가면 다 빨개지듯이. 우리는 학문도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뭐라고? 성경만을 유일한 진리로 믿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거야. 이 세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그래서 신앙의 눈으로 본 학문이라는 시리즈가 나와 있잖아. 신앙의 눈으로 본 예술 신앙의 눈으로 본 경제 이런 게 뭐냐면 그 시대의 일환이야. 왜냐면 토머스 쿤이 그렇게 얘기했잖아. 모든 학문에 전제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독교인 전제를 갖고 지금의 모든 학문은 무신론적인 전제를 가지고 이뤄진 학문 체계라고. 요게 나중에 나올지 모르겠지마는.
그런데 여기에서 기독교인 가져야 될 태도가 있어. 그러면 기존 학문의 체계 다 부정해야 되는가? 그건 아니야. 하나님은 특별계시, 특별은총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일반은총의 하나님이거든. 믿는 자들한테만 머리 좋게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일반 학문은 일반 은총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걸 인정을 해야 돼. 여기서 중요한 것이 뭐냐면, 학문은 은총과 이성에서 학문과 이성은 차별이야 구별이야? 차별은 상하 관계야. 구별은 뭐지 상하관계가 없지. 노동도 구별이야. 차별이 되면 이원론이야. 예배하고 노동은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거야. 구별이 없으면 큰일 나는 거야. 노동을 하되 하나님께 구별되는 예배가 있어야 되는 거야. 예배가 일이기 때문에 예배만 드린다 맞아 틀려? 틀리지. 이 두 가지는 똑같이 중요한데 구별돼야 돼. 계시와 이성은 차별이야 구별이야? 당연히 구별이지.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가 거룩한 거잖아. 학문도 그지? 거룩한 거야. 문제는 학문의 방향이 잘못되면 악한 거야. 학문 자체의 예술과 미술, 비즈니스(business)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구조로서는 다 쓰는 거야. 근데 뭐지? 학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학문의 방향이 잘못된 거야. 그게 학문이 구속되는 거야. 우리는 기존의 학문을 부정하거나 멸시하는 게 아니야. 기존의 학문을 존중해. 학문의 방법론이라던가 이 모든 것들을 존중해.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위한 학문이냐. 그에 대한 방향을 우리가 돌이키면 돼.
트랜스폼(Transform)은 폼(form)을 없앤 게 아니야. 하나님이 만든 창조세계가 망가진 거 아니야. 망가졌으니까 우리가 새로 만드는거야? 트랜스폼(transform)이야? 트랜스폼(Transform)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뭐냐면 하나님의 구속은 재창조가 아니야 회복이지. 그래서 이 회복이 중요한 거지. 트랜스폼(Transform)은 다 망가트렸으니까 망가트린 게 아니야. 고치는 거야. 그러니까 학문도, 기존의 모든 학문을 없애는 게 아니라 트랜스폼(transform)이야. 고린도 전서 5장 10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 굴복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학문적인 탁월성을 가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자연적 법칙 자체는 하나님이 만든 거 아냐. 그런데 우리 기독교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냐면, 초기의 한동대학에 큰 두가지 논쟁이 있었어요. 한 부류에서는 한동대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이다.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나는 거기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던 사람이야. 그런 한동대학은 선교 센터라 해야 되지. 지금도 새로운 교수 뽑을 때 신임 교원 인터뷰할 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요. 혹시 박사님은 미션 스쿨과 기독교 대학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그걸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미션 스쿨은 미션 오리엔티드야. 선교 목적이야. 우리 초기에 선교사분들이 학교를 연 것은 학문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학교를 통해서 전도를 하게 하는 거잖아. 그게 미션 스쿨이야. ‘한동대학은 평신도 선교사 양성하는 대학이다’라는 말은 미션 오리엔티드된 것이지. 근데 그건 뭐냐면 어떤 한 기관의 미션이 되려면 고 기관 만이 할 수 있는 유니크한 게 돼야돼. 고거는 뭐냐 선교단체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대학은 달라요,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거야. 이게 빠지면 큰일 나. 대학의 기능은 티칭과 리서치와 서비스 요 세 가지거든. 교육 연구 봉사잖아. 선교단체에서는 교육 연구를 못해요. 그래서 기독교 대학은 뭐냐면, 미션 스쿨에서 한 단계 점프한 거야. 미션은 기독교적 학문연구를 하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야, 그거는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거야. 기독교 대학의 미션은 사명은 기독교적 학문 연구야. 기독교적 가르침과 기독교적 학문연구와 기독교적 봉사야. 그럼 기독교적 연구가 없으면 대학이 아닌 거야. 그래서 고거는 당연한 거고, 초기에 세가지 국책 연구소 만들었어요. 선교 연구소, 지금 이름이 마민호 교수가 하던 거 선교 연구소, 학문과 신앙 연구소, 그리고 창조과학 연구소. 한동대 유일하거든 요 세가지가 국책 교책 연구소야. 학교에서 돈을 투자해서 하는 곳 세개야. 한동대 교수는 반드시 세가지 중에 하나를 해야 되고, 반드시 세가지 다 했으면 좋겠다.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적 학문 연구와 기독교적 티칭이 있어야 돼. 그래서 우리 최근에 기독교적 티칭하는 기가모가 생겼어. 우리 교수님들도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서 공부하고 있어요. 4시에. 기독교 학문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책 많이 있어요. 이게 뭐나면 기독교와 대학이 공존할 수 있냐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학문 연구와 가르침을 하고 다음 세대 일으키고 이것들이 학교 담장 넘어서 이웃 섬기려는 적극적인 봉사가 섬김이 돼야 되는 거야. 다시 말하면 한동대학교는 3기 기독교 대학이야. 아까 이야기 한 2기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지켰지만은 아카데믹 엑설런스는 포기한 거야. SAT 성적 보면 높지 않아. 그치만 아이비리그 가장 많이 보내는 대학은? 그래 이제 3기 기독교 대학은 토머스 쿤이 등장하면서 토머스 쿤은 기독교적. 모더니즘의 숨통을 끊은 사람이야. 이성 중심으로. 인간의 이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를 모더니즘 무너진 것은 12차 세계대전이 큰 영향을 미쳤거든. 이성적이라는 인간이 수천 명 죽이면서 과연 믿을 수 있는가. 그게 바로 포스트 모던 아냐. 근데 이 포스트 모더니즘 숨통 끊은 게 믿을 게 없다는 거야. 이성을 넘어서. 모든 것들은 상대화된다는 거야. You have your truth, I have mine. 종교도. 화해를 하자.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올라가면 똑같은 거 아니냐. 근데 왜 기독교는 너만 옳다고 하느냐.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에서 힘든 거야. 이야기가 또 다른 데로 가버렸는데 그래서 3기 기독교 대학은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고 하면 아카데믹 엑설런스는 왜 기독교 대학은 포기해야 되나 아니라는 거야. 이 두 가지는 아카데믹 엑설런스는 기도교대학정체성 하면 아카데믹 약해지고 이게 아니라는 거야. 정말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면 이 두가지는 당연히 같이 가야돼. 이게 3기 기독교 대학교야. 우리 한동대학교는, 나만의 생각인 지는 모르겠지만 초창기에 그랬거든. 한손에 성경 한 손에 전공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그 뜻이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경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 이게 3기 대학의 미션이야. 1기는 it or 였는데,이제는 기독교 학문 연구가 가능하다는 거 아냐. 그러니까 실제로 캘빈 많은 교수들이 학문 분야에서도 서두를 달리고 있거든요, 아까 내가 얘기한 이름 뭐였지? 세계적인 사람이야. 여러분 그 책 꼭 읽어봐야 돼. 기독교적 학무 연구 현대 학문 세계. 마스덴. 이 사람이 기독교 뿐만 아니라 세속 학문에서도 굉장히 존경 받는 사람이야. 이거는 수준 낮은 슈도 사이언스 가짜 학문으로 취급받다가 기독교적 학문도 인정 받는 거야. 란팅가 같은 철학자 니콜라스 플란팅가. 미국 5대 철학자 중 하나. 그만큼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정의와 샬롬이 입맞춤을 할 때. 한 때 정의란 무엇인가 그런 걸 하지만 그 사람 못지않게 엄청난 영향력 갖고 있어. 기독교적 학문 한 데가
시기적으로 미국에서는 60 우리나라는 80년부터 시작했어. 2000년 기독교 학문 중에서 학문 영역이 하나님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게 이떄부터. 중세때는 못하게 했잖아. 암흑 시대라고 하는 거는 르네상스 이전부터 말 하는 거야. 잘못된 교권으로 이성을 억눌렀을 때. 르네상스때는 기독교가 이분법을 했지. 이중진리설. 기독교는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한 거야. 데카르트는 기독교 신앙 받으면 지적 자살이라 했고 타락이라 했어. 이게 언제 무너졌어? 데카르트 2000년만에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것이라는 게. 예수님 오신지 2000년만에 시작. 그 전에는 기독교 대학이 있을 수 없었다. 신학에서 모든 것 가르쳤고 중세 삼학 사학 할 때는 기독교 학문 대립. 학문적 진리 기독교 진리 이분화시켰고. 통합된 건 인테그레이션 된건 20세기 부터야. 역사가 짧기 때문에 사례가 없어. 그게 문제야. 앞으로 이제 여러분의 세대가 해야 된다. 한동대학교는 아까 얘기와 마찬가지로 3기 기독교 대학이야.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학문적 탁월성을 모두 추구해야 돼.
뭐냐면 선함이 없는 지식은 악해지거든. 이게 1기 기독교 대학이야. 그런데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거야. 한쪽 악하고 한쪽 약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돼? 둘 다 해야 돼. 선함만 안되고 지식만은 안돼. 선함을 갖춘 지식이 그게 바로 3기 기독교 대학이야. 그래서 1기 기독교 대학은 선함이 없는 지식. 2기는 지식이 없는 선함. 이렇게 표현해서 미안한데 쉽게 이야기 하면 그렇다는 거야. 하나는 악하고 하나는 약한거야. 그래서 안돼. 선함과 지식을 해야 돼.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정체성이 너무 중요한 거야. 성경의 눈으로 모든 분야를 봐야 돼. 경제학과 누구보다도 진보와 빈곤, 토지공유제 누구야 진보와 빈곤.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면서 헨리 조지 들어봤지? 성경의 토지 문제. 토지세만 받으면 세금 걷을 필요 없다는 거야. 왜냐면 성경에도 모든 땅은 네 것이라고 그랬잖아. 전 세계적으로 땅을 개인 소유 못하게 하는 나라가 있어. 싱가포르 이런 나라. 잘하면 빈곤의 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어요. 이런 것들 뭐 냐면 경제 문제도 성경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거야. 신앙 눈으로 바라보는 거. 이런 것들이 뭐 냐면 안경이 중요한 거야. 근데 엉뚱한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안되지. 예수님 가르친 것 다 신화야 이렇게 말하면 어떡해. 그럴 순 없잖아. 그런 교리야 이래 되면 안돼 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 뽑을 수 밖에 없는 거야. 근데 이 모두 갖춘 사람이 그만큼 힘들어. 월급도 적게 주지. 맨날 영어로 강의하라 하지. 논문도 많이 쓰라 하지. 신앙도 좋아야 되지. 그럼 한동대 왜 오겠어. 하튼 그런 딜레마야 우리가. 근데도 많은 분들이지금도 오셔. 그래서 아무리 논문 많고 그런 분도 인사위원회에서 정말 가혹하게 평가한다. 신앙을. 한번도 뽑아 본 적이 없어. 신앙에서 불확실하면. 그래 뽑았는데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 왜냐면 신앙은 속일 수 있잖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잖아. 우리가 그걸 알 수가 없어.
예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전혀 의미가 없으면 받아들일 수 없어.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거든.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야. 같이 할 수 없어. 한두명의 교수 의해 학교는 완전히 뒤집을 수가 있어요. 작년에 처음으로 채플 없애자는 말 한 거 알아? 근데 20몇년만에 처음 들었는데, 나는 너무 충격받았어. 채플이 일방적이다. 뭐 그렇게 불만 가지는 사람 있었어. 근데 공청회 공적으로 채플 없애자는 거 처음 들었어. 근데 이 말은 뭐냐면은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는 거야. 자기는 크리스천이라고 그러면서 그랬거든. 근데 우리는 사실 여러분이 입학할 때부터 서약을 받았어요, 기독교 대학이고 예배를 드려야 되고 이런 거. 그러면은 만일 그것이 자기가 맞다면 한동대학에서 채플 없애려고 투쟁하는 게 옳아, 내가 안 맞으면 떠나는 게 맞아? 나는 떠나는 것도 원친 않지만, 채플 없애려고 투쟁하게 되면 학교가 정체성 학문의 자유 신앙의 자유 또 문제가 나올 거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그지? 그것이 참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잖아. 그치만 우리는 기독교 대학 하나로 기독교적 교육을 하겠다, 그렇지만 기독교 교육이 강요는 아니지. 안 하면 졸업 못해 그런 건 아니잖아. 그치만 가르치는 것들이 사실 일반적인 보편적인 윤리나 보편적인 규범에 나쁜 걸 가르치는 게 아니야. 학교 가르치는 것들이.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나쁘다고 그럴 수 없잖아. 그래서 정부에서 인정을 한 거야.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나쁘다 그러면 미풍양속에 크게 해가 되고 윤리 도덕에 문제 된다 하면 허락 안 했겠지. 우리는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은 거야. 요걸 하겠다고 한 거 아냐. 여기에 대해 하는 거에서 학생들이 맞지 않는 건 학생 선택의 문제지. 서약 다 하고 들어왔으니까 나를 위해 바꿔달라 그건 아니잖아. 한 명 떄문에 다 바꿀 수는 없잖아. 이래 되면 한동대는 존재 이유가 없는 거지. 일반 대학으로 지금 일반 대학 하면 더 유리해요. 우리는 굶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어. 정부는 그런 식으로 공립형 사립대학이 바로 그거야. 유치원부터 공립형 하는 이유가 뭐냐면 정부에서 돈을 받으니까 정부 말을 들으라 그거야. 기독교 대학 알아서 해라. 정부 지원 없다 그거거든. 정부 지원 받으면 공립형 사립대. 간섭 안받으면 사립대 알아서 경쟁해라. 국립 대학도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나머지 대학은 너네가 알아서 해라. 장기적인 그거거든.
교부금이라 해서 사립대학교만 등록금으로 운영하기는 힘드니까 학교 경쟁이 없잖아. 그래서 생겼어요. 누리 ACE 링크 그런게 뭐냐면 경쟁해서 잘 하면 주겠다 이거야. 정관항을 했거든. CK 빼놓고 다 받았다고. 어 그래서 뭐 하다가 이 얘기 나왔지? 교부금! 그래서 이렇게 바뀌어 나머지 40% 대학은 인원 절감 해야돼. 그래서 많은 대학 총장들이 회의해서 나온 이야기가 뭐냐. 사라지는 대학들 어떤 대학이 사라질 건 가. 딱 한가지. 답변이 뭐냐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 사라진다고 그래. 서울에서 먼 대학부터. 모든 대학 총장들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질거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국립대는 정부가 살리잖아. 거점 대학으로 살리잖아. 서울에 있는 대학하고 지방에 있는 대학. 경북대 부산대. 이거 하는. 한동대가 진짜 어려워. 인원도 줄어들고, 근데 다른 대는 이미 미달이잖아. 신학대학. 그래도 한동대는 아직은 괜찮아요.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야. 한동대가 살아남는 방법. 기독교 대학으로의 정체성을 더 강화하는 거야. 우리는 인구 절벽 플러스 이 중구가 뭐냐면 기독교인 수가 급감하고 있는 거야. 인구 주는 비율보다 더 적은 비율의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four fourteen 알지? 4살에서-14살까지가 3.5%야. 20%가 아니고. 얘들이 대학 들어올 거 아냐. 인구 절벽 플러스 기독교인 숫자 절감이야. 한동대에 올 자원이 점점 없어져. 완전 고갈상태. 그나마 한동대 믿고 보내는 분들은 한동대학이 그래도 세속대학과 다른 그런 대학. 그거 때문에 우리는 보수 골통 보수는 아닌데 보수 골통 뭐 그런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동성애 이런 데에 대해서도 그래서 지금 우리가 200개 신학 대학 중에서도 신학 대학 동참 안 한다. 왜냐면 그렇게 하면 어떤 고생하는 지 알거든. 물론 절차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건 좀 잘못됐어. 조금 더 과정이나 이런 걸 해야 됐는데 너무 급했어. 그렇다고 그래서 나는 뭐 그 그러더라 우리는 그럴수록 우리가 좀 더 공론화 하는 게 더 필요했다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래서 기독교적 정체성 더 강화를 해야지만 이 한동대가 살아남을 수 있어. 그나마 자녀들을 한동대에 보내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거든.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던가 이런 것들이. 그런 게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거든. 또 하나는 국제화야. 왜냐면은 없잖아. 자원이 없잖아. 근데 지금까지 한동대의 국제화는 어떤 거냐면 우리가 돈을 주고 데리고 왔어요. 선교사를 가는 것보다 좋은 학생 잘 가르쳐서 훈련시켜 보내면 선교사 10명 보내는 것보다 더했기 때문에 우리가 코너스톤 장학금 이런 게 뭐냐면 외국인 학생들 우리가 돈 주고 데려왔어요 근데 이제는 자기 돈 내고 유학 오는 학교 만들겠다는 거야. 중국 인도네시아 이런 데는 인구가 1억 넘는다. 중국 크리스천이 1억이 넘는다. 기독교인이 비율 낮지만 1억 넘어요. 중국은 아직 공산국가인데 초중고는 국제학교가 있어요 기독교 국제학교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스쿨(School) 있어요. 대학은 없어. 얘들이 기독교 대학 가고 싶은 거야. 돈은 있어. 대안은 미국밖에 없어. 그래서 한동대가 그들의 대안이 될 수 있어. 걔들은 자기 돈 내고 오는 거야. 다른 대학은 취업하러 한국에 왔다가 사라지는 그게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GC나 이런 것들 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한동대 오면 미국 유학 안가도 미국 유학 간 것처럼 영어로만 높은 수준 가지고 졸업할 수 있다. 지금 요기다가 플러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서 지금 국제 기숙사도 300명 규모로 짓고 하잖아 이게 뭐냐면은. 적극적으로 이것도 하나의 선교야. 대상이 중국 일본도 있어. 일본이 가장 비율은 낮지만 그들 중에 기독교 대학 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 말레이시아 이런 쪽은 외국인 교수님들이 열심히 나가고 있어요 리쿠르팅 하려고 홍콩에서도 그렇고. 걔들은 경제력 갖고 기독교 대학을 가고 싶어서 오는 애들이야. 그런 식으로 우리가 글로벌이 돼야 돼. 여러가지 의미의 글로벌. 그래서 반기문 센터 하는 이유가 고것이 앞으로 우리 한동대가 아까 얘기하는 벚꽃 피는 순서에서 이겨낼 수 있는 왜냐면 모든 게 불편하거든. 교통도 그렇고 지역도 그렇고 지진까지 났으니. 요번에 우리가 입시 얼마나 힘들었는 지 알아. 근데 더 좋은 애들이 왔다는 거 알지. 그러니까 뭐냐면은 그럴 수록 내가 가야겠다 이런 애들이 있었다는 거야. 우리는 그런 식으로 차별화가 안되면 안돼. 이럴 때일 수록 좀 더 분명하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진짜 중요한 건 이거야. 좋고 싫은 것은 쉽게 할 수 있거든. 교수님들 중에서도 보수 진보 있잖아. 보수 진보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거잖아. 나는 성향적으로 진보가 편해 보수가 편해 이런 거. 근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학교가 판단하면 큰일 나. 학교가 망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근데 우리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 어떤 때는 진보가 옳을 떄가 있고 어떨 때는 보수가 옳을 때가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서 우리는 보수 골통 소리 듣는 것도 안돼. 어떤 때 우리는 진보적이어야 돼. 아 문재인 정부가 잘하면 지원을 해야지.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돼. 민주당 무조건 싫어 이거는 기독교인이 취해야 될 태도가 아니야. 그거는 자기 취향이지. 근데 지금 많은 사람들 보면 우리 교수님들 보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지고 싸우는 거야. 모 교수님 붙여놓은 거 있다며. 너네는 모르구나 이거 다 빨갱이들이다 이런거 붙여놓은 사람이 있다더라고. JTBC. 근데 그거는 좋고 싫은 거잖아. JTBC라고 다 틀린 거 아니잖아. 옳은 거 있잖아. 근데 그렇게 하면 학교가 분열돼요. 그 이 모든 것들이 그런 것들의 일환이야. 그래서 내가 교무회의 할 때 항상 하소연을 하는 게 뭐냐면 교수님들 우리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야 됩니다. 좋고 싫은 건 개인적인 의견으로만 묻어둬야지, 그걸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누구는 빨갱이다 이렇게 말하면은 이거는 완전히 좀 그래. 그거는 뭐 교수님들도 그런데 학생들은 오죽하겠어. 그래서 너희들도 절대로 이념 논쟁은 되면 안돼요. 이념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판단해야지 사실 이거는 회색이 아니야. 회색은 그 기준이 왔다 갔다 바뀔 때 회색이지 우리는 이 기준을 가지고 있잖아. 정말 우리는 정의는 정의지. 이걸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진짜 정의라고. 편을 안 들고 도와준 걸 생각하지 않고. 안 도와준 거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진짜 힘든 길이예요. 이게 어쩌면 십자가를 지는 길. 양쪽 다 어려워요. 그래서 교수님도 좀 진보적인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어. 바른 소리하는 진보. 또 바른 소리하는 보수. 그치만 이 둘 간의 대화가 되고. 생각은 다르지만 옳을 수도 있고. 누가 옳을 지 몰라. 그렇잖아. 지금 이 통일 문제도, 야 나는 제주 43사태가 지금도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교수끼리도 대립이 너무 강해. 지성인들이. 까딱하면 트리거 하면 이념으로 겠더라고. 이념이 없어. 근데 결코 우리는 이념에 사로잡히면 안되고 분명한 기준이 있잖아 진짜 우리는 분명한 기준이 있잖아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가야 돼. 본질에서 벗어났다 미안하다. (이 부분도 충분히 본질에서… 중요한 거 같다. ) 그 말 꼭 좀 적어줘.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로 판단하지 말자. 옳고 그름으로 우리가 판단합시다.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가슴에 담아 둡시다. 그걸 가지고 자꾸 논쟁하지 맙시다. 그건 내 진짜 우리 교수님들한테도 내 항상 하는 얘기야.

Q 나머지 질문도 다 설명이 된 거 같은데.

곽: 아 고러고 내 하나만 더 할게. 교수 채우는 것도 있고, 기독교 정신 기반한 학문 어떻게 학문 적용하냐 그래서 내 아까 얘기하던 건 뭐냐면은 우리 아까 기독교적 학문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의 학문들 무시하느냐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거지 그걸 우리가 존중해 일반 은총의 하나님 일반 은총의 영역이거든, 그래서 학문의 방법론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아주 합리적인 게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존중하는데, 그치만 이 학문이란 건 학문의 동기 과정 결과 적용 이것은 뭐냐면 방향이 올발라야 한다는 거야. 이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어… 많은 학문들은 팩트(Fact)와 의미(Meaning)가 있다면 새로운 팩트를 자꾸 찾으려 하는 것이 학문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생각 하는 사람이 있어요 스템셀을 했다던가. 그것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남이 안한 거만 찾으면 돼. 이것이 연구 중심의 대학이야 그래 그쪽은 뭐냐 발표(Publish) 하거나(or) 실패(perish), 논문 안쓰면 다 나가야 돼. 근데 기독교 대학은 뭐냐하면 팩트의 발견도 (1:02:18) 중요한데 의미(Meaning)가 중요한 거야. 왜냐면은 이 기술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건가. 인간복제 빈곤 이런 것들을 밸류(Value) 를 연구하는 게 중요한 거야. 그거는 우리 기독교 대학교가 할 수 있어 그래서 새로운 걸 찾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그 연구도 굉장히 중요해. 그래서 미국엔 뭐냐면 ELSI 여러분 들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생명과학 복제기술 되면서 ELSI 프로그램이 시작 됐어. 이게 뭐냐면 동물 복제를 할 때 모든 라이프 사이언스 연구비 5%를 여기ELSI에 주는 거야 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이야 또는 Issue 둘다. 요 기술들이 사회에 미칠 영향들을 철학자 윤리학자들 연구비를 주는 거야. 자연계에서는 발견하고. 요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 이게 어떤 영향 미칠까 하는 걸 연구 하는 거야. 그래서 ELSI에서 연구를 황우석 박사가 다시 배아복제 하겠다고 해서 ELSI는 노(No) ‘당신은 자격 없어’라고 했거든. 고걸 판단하는 것. 그게 뭐냐면 모든 기술과 발견에 뭐가 있어야 된다? 의미가 중요한 거야. 요것들이 뭐냐하면 기독교적 가치. 인류의 보편적 문제 가지고 발견할 수 있겠지만은 사실 이렇게 되면은 가족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이런 거 다 사라지거든. 이런 문제 있기 때문에, 또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인류 보편적인 그런 가치를 가지고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독교 진리가 인류 보편적 가치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왜냐면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참된 인간이 된다는 것과 똑 같은 거 거든. 하나님 형상 대로. 그래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 가치가 기독교적 가치와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거의 공존하고 있다고. 인간은 존엄하다. 인간은 존엄 가능하다는 뭐냐면 인본주의에서는 인간은 발전 가능하기 때문에 존엄하다지만 성경은 아니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거야. 인본주의자들의 존엄은 열등하거나 장애자들은 퇴출 대상이야. 우생학이잖아. 실제로 나치들은 장애자들은 청소했잖아. 왜냐하면 진화에 반했기 때문에.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진화에 반하는 사람은 청소 해 줘야지 만이 그게 선이야.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장애자는 인종 청소의 대상이야. 그치만 성경에 있어서는 장애인도 뭐라고? 하나님의 형상이야. 그러니까 존귀한거야. 그니까 똑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얘기하더라도 파운데이션 완전히 다른 거야. 그렇지만 인간이 존귀하다는 그 가치는 하지. 파운데이션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 이런 여러가지 차이점들 우리가 잘 이해해야 된다. 특히 인간에 관해서는. 또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거 잖아. 기독교적 인간은 뭐야 인간은 아무리 학문에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죄인 이상을 넘어설 수 없어. 그래서 기독교에서 봐도 인간은 죄인이야. 피조물이라는 걸 넘을 수 없어. 바탕은 뭐야. 하나님의 형상이야. 아무리 악한 인간도 짐승만도 못한 인간 틀렸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은 없어. 정말 연쇄살인범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그 밑으로 내려갈 수 없는 거야. 짐승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인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관은 이 세상이 말하는 인간관과는 달라. 끝이 있고 한계가 있어. 무슨 말인지(알겠지?) 진화론은 밑도 끝도 없어. 하등 동물에서 시작해서 끝까지 되니까. 이게 되니까 기독교의 차이가 있는 거야. 계속 발전해야 존엄한 게 아니지. 그리고 아까 뭐가 있었던 거 같은데, 교수 채용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지.
기독교 정신과 다르다고 판단되는 학문에 대해서는 요거에 대해서는 정말 조심해야 돼. 기독교 학자들이 많이 잘못한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 있어요. 학문과 신앙이 만나면은 서로 영역이 다른 것도 분명히 있어요. 왜냐면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 했는데 그러는데 표현 다르게 표현하는 거지. 서로 다른 표현 하는 영역 분명히 있어요.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라는 명제는 종교적 명제잖아. 1 더하기 1은 과학적인 명제잖아 요런 차이가 있어요. 같이 표현하는 것이 있어요. 똑같은 자연 상황 표현하는 데 다른 게 있어. 가령 예를 들어서 지구는 돈다. 근데 성경에서는 지구가 중심이라 말했거든. 지구가 공중에 떠 있다는 걸 봐서는 성경에서 말한 진리나 학문적 진리에서는 맞다고 그러니까 이건 이견이 없어 다행스럽게 똑같애. 학문의 진리와 성경의 진리가 똑같아. 근데 또 문제는 다른 경우가 있어. 성경은 모든 동물을 종류대로 창조했다고 그러고 학문은 뭐지? 한 종으로부터 진화했다. 다르잖아. 그래 이 경우는 디베이트(Debate)가 되겠지. 그래서 이건 뭐냐면 누가 옳고 그르냐는 이 패러다임으로 결정돼요. 이거 패러다임은 뭐냐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야. 지금은 진화론이 강하기 때문에 창조론 인정 안 되는데, 요 패러다임은 바뀔 수가 있지 왜냐면 노말 사이언스(Normal Science)가 Abnormal이 생긴다. 이상현상이 생긴다. 기존의 패러다임 맞지 않는 경우 생긴다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뭐냐면 너가 틀리다는 거야 패러다임이 맞고, 그래서 이게 계속되면 어떻게 돼 위기가 돼요. 자꾸 외의 현상이 너무 많이 생기니까 예외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문제가 생기는 거. 크라이시스 기존 패러다임하고 새로운 위기가 돼. 요 패러다임 바뀌면 요게 레볼루션(Revolution). 요 혁명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 바뀐다는 거야. 그래서 이 노말 사이언스(Normal Science)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뀐다는 거지. 지금은 진화론이 요 크라이시스(Crisis) 까지 와있어요. 창조가 지적 설계가 패러다임이 될 수 있어. 설계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어쨌든 고런 게 있기 때문에 다를 때는 뭐냐하면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해. 무조건 틀렸다가 아니라 우리도 모르거든. 그니까 괜히 아는 척했다가 실수해 뭐 지구는 중심이다 했다가 틀리면. 모른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거야. 그게 뭐냐면 연대 문제야. 연대 문제는 지금 한동대 지금은 정리됐어요, 한때는 우리나라 창조과학이 지금 대표적인 게 이경우야. 모르는 영역으로 아는 척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야. 왜냐면 지금 창조과학은 젊은 지구론만 설명하려고 하고 있거든. 이재만 선교사님 같은 분들 대부분 오천 년 육천 년 하잖아. 근데 젊은 창조론자들은 어리다고 주장하거든 똑같은 창조과학이야. 너네들은 어떻게 알고 있어? 오래됐다 생각하는 사람? 수십억 년 아니지만 오래됐다 생각하는 사람? (오천년) nobody knows. 진짜 몰라. 교목실하고 여러 가지 얘기 있었는데 아직은 우리는 많이 틀릴 수 있다.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픈돼야 된다. 계속 우리만 옳다고 하는 건 도그마(Dogma)거든? 우리는 틀릴 가능성이 있다. 그 틀릴 때 항상 우리가 고쳐나갈 거다. 그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말을 쓰지 성경적이라는 말을 안 쓰는 이유는 기독교적이라는 말을 쓰지 성경적이라는 말을 안 써요. 성경을 배워도 다 이해를 못 하니까. 그지. 지금 성경적이라는 말은 틀릴 수가 있잖아. 그 기독교적이라는 말은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말이 있잖아. 역사적으로 틀린 게 많았으니까. 근데 성경은 틀린 게 아니잖아. 성경은 틀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성경적 세계관이라는 말은 나도 차마 그 말 못 해. 학생들에게. 내가 이게 성경적이라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렵다는 거야. 가장 성경에 가까운 거다 그런 말은 할 수 있어도. 그래서 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용어조차도 그렇게 하는 이유가 그거까지는 내가 조심스러운 거야. 그래서 이거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역사적으로 틀렸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고쳐져 나가야 된다, 바뀌어야 된다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 비블리컬(Biblical) 월드 뷰(World View)는 지향해야 하는 뷰(View)고 현실은 크리스천 월드 뷰(Christian Wrold view)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비블리컬 월드 뷰는 현실이 아니야 우리가 지향점이고 비블리컬 월드 뷰를 향해서 나아가는 거지 근데 지금 우리는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는 거. 틀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요 기본은 뭐 냐면 신 칼뱅주의 영향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도예베르트가 이 모든 기초를 쌓은 거야. 이 두사람이 현대 기독교 세계관 틀 해 놓은 사람이야. 이 후에 자유대학 후예들이 미국 캘빈대학 만든 거야. 그 사람들이 미국의 캘빈대학 만들고 그래서 카이퍼 자유대학은 굉장히 의미가 있지. 그래 이거는 흔히 말하는 개혁주의라고 이야기해. 복음주의 중에서도. 개혁주의는 뭐냐면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될 대상으로 본다. 그게 유대인 세계관이랑 유사해. 티쿤 올람(Tikun Olam)하고 굉장히 유사한 세계관이야. 유대인은 평균 아이큐가 94밖에 안되고 대한민국은 105야 세계 1위야. 유대인이 공부 많이 할까 대한민국이 많이 할까 우리가 압도적으로 공부 많이 하지. 고3까지만. (웃음) 아이큐도 11이나 높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냐. 그게 티쿤 올람. 티쿤 올람은 세상을 바꾼다 이런 뜻이 있어. 세상을 리페어(repair) 한다. 우리가 말하는 트랜스폼(transformer) 같은 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잖아. 근데 인간의 타락으로 돼서 이 세상을 항상 변화시키고 개혁 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고게 티쿤 올람이야. 있는 걸 그대로 동양적인 거지? 있는 그대로 즐기는 거잖아. 변화와 개혁이 없지. 변화하려면 체제에 대한 불순종. 유대인들은 항상 바꿔야 돼. 그러니까 창의성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노벨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야. 그 또 하나가 후츠파(chutzp)라는 정신이야. 후츠파는 뻔뻔하다. 아주 권위에 대한 도전. 근데 이게 뭐냐면 마따 호세프라는 말 들어봤어? 마따 호세프라는 말은 뭐냐하면 유대인 수업 때 하는 말인데 너 의견은 뭔데? 정답은 없어. 항상 선생이 학생들한테 마따 호세프. 아무리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다 인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애들이 얼마나 기고만장하겠어. 우리는 선생한테 말 한마디 말 해도 다 틀렸다 하니까 기가 죽어서 말을 못 하는데 아무리 틀린 말을 해도 잘했다 그러거든. 그러니까 애들은 뻔뻔해지는 거야. 어느 정도 뻔뻔하냐면 유대인은 거지도 뻔뻔해. 동양인들은 측은하게 약한 모습을 보여야 되잖아. 근데 유대인 거지는 안 그래. 얼마나 떳떳한데. 왜 그러냐면은 나는 너에게 나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 거기 때문에 네가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 그래야 되는 거야. 유대인들은 선행을 해야 되거든. 그 선행을 할 대상이 있어야 될 거 아냐. (웃음) 유대인들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거든, 그게 바로 후츠파 정신이야. 거지들도 얼마나 프라이드가 있는데, 절대로 비굴하지 않아요, 당돌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에 상처를 받아. 나도 그래서 이스라엘 갔다가 하나님이 실수한 줄 알았어. 팔레스타인은 아주 친절해 유대인들은 너무 뻔뻔하고 거만하고 호텔 가도 팔레스타인 호텔 가면 진짜 친절하다, 유대인 호텔 가면 내가 돈 내놓고 내가 불안해. (웃음) 서비스가 없어 그래서 내는 하나님이 실수하신 게 아닌가 하는 정도로 그 정도로. 그래서 살아남는 기술이긴 한데 처음 보면 팔레스타인들이 호감이 가. 가난하지만 나누고 친절하고 유대인들은 거짓말도 잘하고. 흉악하다는 말이 들 정도로. 야 흉악하다. 거짓말도 잘하고. 이스라엘 당한 적이 있거든. 하튼 이야기를 많이 밥도 못 먹고.

Q 한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나요?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얘기 많이 해주셨는데 한동대 내에서 이런 정체성은 이상적인 거고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것이고 한동대 현실과 다른 점이 있으니까 그런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한동대에서 어떤 변화가 가장 필요한지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곽: 한동대 가장 어려운 변화의 기점이 와 있거든? 진짜 리더십 바뀌는 그런 어려움도 있고 사실 그때 학교가 좀 어려웠지. 그때 지혜로운 게 잘 극복했어요. 리더십 잘 정착되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 한동대가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거는 뭐냐면은 지금 앞으로 오 년 내에 굉장히 많은 교수들이 나가요. 앞으로 10년 내에 46% 교수가 나가. 지금까지 20년 있거든 한동대 교수들이. 떠나는 거야. 급변하는 거야. 그래서 이 학교가 계속 정체성 유지되려면 새로 들어오는 교수님이 정말 좋은 교수님이 들어와야 돼. 지금과 똑같은 수준이 들어오면 한동대 지금 수준 유지해야 될 거고 지금보다 떨어지면 한동대가 점점 나빠질 거고 지금보다 더 훌륭한 교수님 오시면 한동대 발전되는 거거든. 지금은 엄청난 급변의 시대야 정말 기도를 많이 해야 돼.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는 공채를 하면은 좋은 분들, 지금까지는. 찾아가라 좋은 분들 찾아가서 애걸복걸해서 한동대를 위해 도와달라고. 사실 그렇게 해야 될 판이야. 그래서 와서. 기다려서는 안 돼. 그래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좋은 분들을 모셔봐야 돼. 이게 한동대가 제일 중요한 일이야 앞으로 앞으로 10년 내에 세한 통계 교무처 가면 알 수 있는데, 46% 정도 바뀌어. 계속 교수님들이 나가는 거야. 그래서 이 새로운 교수님들이 이 전통 이어나가야 될 거 아니야. 여기서 잘못돼 버리면 한동대는 왜곡되고 변질될거야. 그래서 지금 좋은 교수님 리쿠르팅이 가장 중요한 거야.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래서 교무처가 지금 건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학부장회의 할 때마다 좋은 인재 pool들을 확보해라 리스트를. 그분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서 모셔오너라, 총장님께 말해서 비행기 값 마련해주겠다. 가서 모셔오라는 거야. 가서 좋은 교수님 모셔오는 것들 정말 한동대 살릴 수 있고 한동대를 위해서 평생을. 근데 그런 분들은 좋은 분일수록 좋은 데 가 있을 거 아냐. 그렇잖아. 그래서 그분들한테 우리가 가서 애걸복걸 해서 모셔와야 돼. 한동대 얘기하면서. 초기에 그렇게 오신 분들 많거든. 진짜. 전임 총장님께서 그렇게 오시고 좋은 데 포기하고 오시고. 지금도 왜 그게 불가능하냐는 거야. 선배들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들어오는 선배들 몇 명 중에는 요번에도 작년에도 지난 학기 한동대 출신 뽑으려고 한 게 아니었어. 진짜로. 정말 내가 너희들한테 맹세코 고백하는 데 한동대가 우수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근데 월급이 계속 차이 나는 거야. 계속 그런 경우 있어요, 그러면 오지 마라. 오지 마라 그랬더니 오데. (웃음) 처음에는 더 달라고 딜을 하더만 (웃음) 내가 그 생각 가지고 한동대 오면 해피(Happy)하지 않다. 여러분 선배가 지금 왔어. 내가 이해가 되는 게 너무 월급 차이가 많아. 나도 진짜 월급 차이가 많았거든. 앞자리 수가 많이 달랐어. (웃음) 그래서 그게 제일이야. 여러분들이 좋은 교수님 모셔올 수 있도록 한동의 미래가 여기 달려있어. 변화도 중요하고 요것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몇 년 뒤에는 반 정도 바뀌는 거야. 10년 내에. 그러니까 그분들은 초창기에 오셨던 한동대 전설 있잖아. 전설이 전통이 돼야지 전설이 되면 안 되는 거지. 그게 지금 제일 중요한 거야. 그래서 지금 최고로 신중하게 된다.

<최정훈 교목실장 인터뷰>

Q 어떤 분들을 채플에 초청하시나요?

최정훈 교목실장(이하 최): 나머지 아홉에서 열여섯은 이제 RC 칼리지에서 각 RC마다 하죠. 그때는 각 RC 교수님들하고 담당 목사님들이 강사 초청하기도 하는데요, 채플에 오는 강사님들은 외부에서 총장님 부탁으로 오실 때도 있고 또 우리들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분 같다 그러면 초청할 때도 있고. 딱 정해서 초청하는 건 없어요. 다양한 영역에서 물론 신앙과, 때로는 설교, 간증, 특별 찬양하시는 분들 와서 신앙적이면서도 다양한 강사분들 초청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Q 교목실에서 기독교가 아닌 종교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떤 노력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 사실 채플에서는 기독교대학이기 때문에 아시는대로 다른 종교를 중심으로 예배드리긴 어려워요. 어디나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인제, 저희 교목실에서는 뭘 준비하고 있냐면, 전도부스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믿지않는 학생들이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라던가, 신의 존재라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수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 동영상이라던가, 소책자라던가, 대화할 수 있는 부스를 계획하고는 있어요. 믿지 않는 학생이 사실 매주 채플 들어오는게 쉽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그 채플 기회를 통해서 믿지 않는 학생도 복음이 접하기를 바랍니다. 예 고런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Q 한동대가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기독교 가치에 따라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한편으로 일부 학생들은 기독교 대학임을 알고 왔어도 한동대가 추구하는 가치나 교육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사립학교 자치권과 학생 개인 학습권이 충돌할 때 어느쪽이 우선시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 일리있는 말씀인데요, 이런 거예요. 인제 학교 들어올 때. 이런 거죠. 우리가 미국에 가면 미국법을 따라야 되는 거예요. 이거는 학생 개인 권리를 무시 하는 게 아니예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간다고. 무슨 말이냐면 한동대가 기독교 대학임을 알고 한동대가 세워진 목적 자체가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이념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거예요. 강제로 들어온 게 아니예요. 들어오는 학생도 그걸 알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혹 모르고 들어왔더래도 저희는 인제 그런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고 혹 내 이런줄 몰랐는데 그러면 본인이 다시 결정할 수 있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강제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면 학생들이 오해하는 거잖아요. 왜냐면 원래 목적이 그런 거니까. 들어올 때 그걸 알고 들어오는 거고. 또 학교 회칙과 헌법에도 제시되어 있어요. 기독교 이념을 가지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들어온 학생들이 그거는 따라야 되는 거죠. (학칙 2장?) 예. 그렇기 때문에 불교대학 가면 내가 불교대학 가가지고 나 기독교 가르치겠다 그러면 거기서 그렇게 하라고 그러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Q 아까 헌법관련해서 말씀하셨는데 헌법에서 어떤 내용을 말씀하시는 건지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 아 구체적으로 여기서 헌법을 다 말할 수는 없고, 제가 지금 말한 그것이 다 포함된 그거예요. 간단히 요약하면 한동대학은 건물, 우리 저 현동홀에도 붙어 있잖아요? god's university라고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그런 식으로 글로벌 대학이면서도 신앙을 기독교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고런 내용이 담겨있죠. 네 그렇습니다.

Q 기독교와 대학의 균형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대학은 열린 공간이어야 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학문의 기회가 마련되고 다양한 관점이 제공돼야 하는 동시에 한동대는 기독교라는 정체성 지켜야 하잖아요, 현재 학교 안에 대학과 기독교의 균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 그 말을 다시 표현하자면 학문의 자유와 신앙을 말하는 거잖아요? 대학으로서 학문의 자유가 있는 거고 기독교 신앙이 있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학교에 예를 들어서 학생들이 사상이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싶다, 그건 반대하지 않아요. 그러나 동성애 강사 사건이 왜 났냐면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서 서로 토의하고, 동성애가 무엇이냐, 동성애가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성경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냐 그걸 자유롭게 토론하는 거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잘 써주세요. 그러나 그 때 예를 들어서 기독교에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기독교에 반대되는 이념이나 사상을 갖고 학생들끼리 토론하는 것과 그것을 강조하는 그것을 가르치는 강사가 와서 여기서 강의하는 건 다른 거예요. 이런 거예요. 미국만큼 자유로운 곳이 없어요. 그러나 미국에서도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그런 거를 가르치고 그러면 잡힙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오해 있는 것이 왜 자유인데 그러냐. 이걸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오늘의 인본주의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거예요. 인간은 자유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은 인간은 자유라고 그러는데 그 인간의 자유는 신율적 자유다. 이렇게 말합니다. 신율적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자유라는 거예요. 하나님 믿지않는 사람들은 인본주의적 자유,그건 뭐냐. 하나님의 말씀 없이 인간 개개인의 판단으로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자유예요. 그러니까 자연히 상대적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기독교 대학에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교내에서 우리가 토론을하고 자유롭게 질문도 하고 다 할 수 있지만. 이런 거 비슷한 거죠. 민주국가에 와갖고, 예를 듭니다. 내가 공산국가에 가가지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인간은 자유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허락 하겠어요? 반대로 북한 공산당이 한국에 남한에 와갖고 북한 체제가 옳다 김일성이 하나님이다 북한에 공산주의 사상이 옳다 그런 걸 허락하겠어요? 허락안해요. 그런데 허락 안한다고. 공산당원이 한국은 민주 국가고 남한은 자유국간데 왜 뭐라 그러냐. 말이 안되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요? 그런 거예요. 그게 잘못 오해하면 대학은 자유인데 왜 억압 그건 억압이 아니라, 자유는 어느 나라나 아까 말한 것과 똑같아요. 우리나라 법 안에서의 자유예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자유야. 하나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 근데 아담은 먹었죠? 이런 거야. 내 마음대로야. 내 자유야. 그런데 하나님은? 내 자유야 그래요? 아니야. 말씀 안에서 자유야. 똑같아요. 한동대 자유야. 신앙 안에서 학문 자유야. 그러나 말씀 안에서 자유야. 그런데 토론을 할 수 있지만 기독교적 사상과 반대되는 가치관을 가진 강사가 와서 여기는 자유기 때문에 이게 옳다고 말 할 수 있어. 아니예요. 학생들이 이게 혼돈을 하는 거야. 학생들이 오해를 하는거야, 교목실에 대해서.

Q 한동대학교 기독교 정신이 특정 종파에 국한되어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 한동대 기독교는 교수님들도 그렇고 목사님들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우리 한동대 신앙의 장점은요, 초교파예요. 특별한 교단이 없어요. 목사님 중에서도 침례교, 장례교 목사님 그렇게 돼 있죠. 장로교 목사님 침례교 목사님. 교수님들도 장로교 교수님들도 있고 침례교 교수님들도 있고 그렇게 여러 교파가 다 있어요. 그러니까 다양한 교파가 함께 있기 때문에 어떤 한 특별한 교파만을 주장하지 않아요.

Q 기독교적 가치관이나 사상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 강요한다는 질문 자체는 잘못된 것 같아요. 우리는 기독교 가치관을 강요한다면 믿지 않는학생도 믿으라고 그러지. 그런데 믿지 않는 학생에게 믿으라고 강요해요? 안하지. 우리가 기독교 가치관을 진리라고 가르치는 거지, 가르치는 것과 강요는 다른 거예요. 강요는 그걸 안믿거나 안들을 때 징계를 가하는 걸 강요라고 하지만, 이거는 가르치는 거죠. 아까 말했지만 가르치지 말라 그말은 못해요 한동대학은 들어올 떄부터 인정하고 들어오는 거죠. 본인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그걸 인정하고 들어오는 걸 포함하기 때문에.
오늘 인터뷰한 내용과 관계된 대학 학문의 자유나 신앙에 관한 것이라든가. 오늘 신문에 나올것 아니냐. 인터뷰에 관해 질문과 의문이 있으면 학생들과 토론의 장을 갖고 싶어요. 그럼요. 오늘 얘기한 것에 대해 저는 항상 입장이 같고. 또 내가 지금 안타까운 것은 서로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써주세요. 서로간의 대화를 할 때 오해가 풀릴 수 있다. 학생들도 학교의 가르치는 방향, 목적, 가치관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 필요한 것 같고, 학교도 학생들에 대해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면 고칠 수 있는 기회의 장 만들면 좋겠어요. 그래서 인터뷰만 하지 말고, 신문 suggest 하고 싶어요. 우리 한동신문사에서 그런 장을 만들어봐. 추천. 이렇게 신문에도 쓰지만 학생 몇명하고 목사님 몇명해서 토론의 장을 만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럼 아마 학생들 꽤 올거다. 오늘 한 질문 가지고 직접 학생과 토론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요? 사진을 찍으면서 그 내용 기록하면. 다음번에 그렇게 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원철 학생처장 인터뷰>

Q 한동대는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특정 가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한동대가 기독교 대학이라는 걸 알고 들어왔지만 한동대가 추구하는 가치나 교육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동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학생 개인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조원철 학생처장(이하 조): '기독교대학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왔지만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나 교육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동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은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인재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육하는 한동대학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입학 후에 교육고정과 생활 원칙들을 잘 따르겠다'는 서약을 하고 입학하지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개인의 자유와 한동대학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충돌한다면, 하나님의 대학이 갖는 교육의 이념과 목표 그리고 인재상 등에 대해 잘 설명하고 가르칠 뿐 아니라 당사자도 학교를 신뢰하는 열린 마음으로 배워나가는 노력을 피차 해야 할것이다. 팀 단위의 공동체리더십훈련 과정에서 팀 교수님들에 의해 그리고 선 후배 사이의 생활관 중심의 삶과 다양한 학내 활동과 문화 활동들을 통해, 강제하지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대학의 학생으로서 한동대학교가 표방하는 가치를 추구해 나가도록 서로 도와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Q 학칙에는 교육목적이 '대한민국에 교육이념과 기독교 정신'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과 대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조: 나는 단연코 한동인들 중에 한동대학교의 존재 목적이 미래형 지식생산능력을 갖춘 인재양성 쯤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질문의 해답은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있다고 본다. 대학본관 로비에도 설명되어있는 '장인 공(工)'자 형의 우리 대학 교육이념에서 볼 수 있듯이 한동대학교는학문적인 수월성만 추구하는 대학이 아니라 인성과 영성을 함께 도야함을 추구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베드로후서 1장 5절 이후의 말씀으로 이를 설명하곤하는데,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하나님의 사랑에 까지 이르는 여덟단계의 성숙을 권고하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믿음), 인성(덕), 지성(지식)' 은 성숙 단계의 기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학문적인 수월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않는가? 학문의 주인도 하나님이라는 고백 위에서 전공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대학의 본연의 목적과 그 지식을 정직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자 하는 기독교 정신은 통합되어야 한다. 이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한동대학교는 마땅히 '기독교 정신'과 '대학'이 공존하는 곳이다.

Q 한동대학교가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어떤 부분에서 유지가 돼야 할지 궁금합니다.

조: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대 명제이다. 그것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한동 어너코드의 중심 말씀을 놓지지않는 한동이 되기를 원한다.

Q. 히즈넷 공지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던 소통의 장이 어떤 식으로 계획되고 있는지, 한동대 내에서 기독교 정체성과 관련된 담론 형성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 지 궁금합니다.

조: 그동안에도 한동문화회복위원회 주관의 소통의 장들이 있어왔다. 일년에 한 두 차례 팀 단위로 하기도 하고 공청회 형식으로 하기도 했다. 더 실질적인 주제들을 표집하여 이를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방법이 있겠고 특정 이슈, 예를들면 학생지도와 징계같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학생지도위원회 교수들과 함께 질의응답의 형태의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학생리더십들과 주요보직교수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의 장도 마련하겠다.
기독교 정체성에 대한 것은 성경말씀의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현재 추구하는 것들을 더 견교히 하는 방식으로 그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기독교인이 아닌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동대의 정체성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지도하는 게 좋을까요?

조: 첫번째 질문에 포함된 것과 유사한 질문인데,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서약서'를 썼다는 것은 그 내용대로 노력하겠다는 '약속'이며 그 신뢰의 바탕 아래 한동대학교의 입학을 허락받은 것이다. 1학년 교과과정에 한동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다루는 것도 다시 한 번 한동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더 견고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교수와 선배들이 이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삶으로 솔선하고 모범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기독교 정신'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들(총학 등)은 기독교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조: 공동체리더십훈련에서 추구하는 것을 기억하자. '공동체화', 제자화', 리더십' 등 세 가지 아닌가. 학교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행해지지만 그것을 준비하고 새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이 훈련되기 바라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인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하나님의 대학의 섬김을 위한 학생리더십이라는것을 잊지않고 어떤 행사나 정책을 위해 일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학생사회를 향해서 행하는 일 속에 한동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 될 것으로 믿는다.

 

강우주 기자, 추연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791-708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로 558 한동대학교 학생회관 102호, 한동신문사  |  대표전화 : 054-260-1241~2  
발행인: 장순흥  |  주간: 허명수  |  편집국장: 박소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광준
Copyright © 2013 한동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