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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한 이곳에 삶을 지어 올리다
유설완 기자  |  yusw@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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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5  23: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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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 적이 없다. 이리저리 만져봐도 내가 들고 있는 삶의 나침반은 고장 난 것이 분명했다. 단 한 번도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지 못했다. 고3 때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가고 싶었다. 역부족이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반드시 가고 싶다는 마음, 유명 대학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은 날 재수로 이끌었다. 잠을 참고 꿈에서조차 공부했다. 하지만 삶은 내가 원하는 데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쳤다. 더 이상 공부 따윈 하기 싫었다. 홀린 듯이 한동대를 택했다. 오기 전까지 이곳이 기독교 대학인 줄도 몰랐다. 정말로 지쳤었나 보다. 정직과 공동체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한켠,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더 이상 예전의 그 열정은 식어버렸고 지친 나는 그저 이곳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파도치지 않는 바다, 뜨겁지 않은 태양처럼 어디 하나 모자란 나의 삶을 돌아봤다. 분명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선택한 목적지에 가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렇기에 불시착한 이곳에 정이 가지 않았다. “사람이랑 선택을 내린 후에 자기 삶의 우연성에 만족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사랑할 수도 있으니까” 생텍쥐페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도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하지만 난 그게 잘 안됐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내 삶의 우연성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 선택한 내 삶의 차선책들을 난 사랑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난, ‘의미 있다고 착각할 만한 일’에 몰두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학부, 팀, 학회, 동아리, 프로젝트 활동에 몰두했다. 그래도 이곳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모래로 쌓은 성은 너무나도 쉽게 파도에 휩쓸려 갔다. 습관적으로 찾아오는 미련은 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내가 원했던 그곳에서 출발했더라면...’, 가지 못했던 곳에 대한 이상은 하늘보다 높아졌다. 새로운 출발만이 날 구원해줄 것이라 여겼지만, 관성과 무기력함은 날 여기서 벗어나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관성적으로 ‘의미 있다고 착각할 만한 일’을 위해 17년 6월 여름방학에 난 한동 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르는 곳에 주인 되라, 그러면 서 있는 모든 곳이 참될 것이다’ 난 스스로 선택했지만 선택한 곳에 주인 되지 못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신문사에서 미련조차 발목 잡지 못할 정도로 힘든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우며 기자들과 기사 쓰던 날들, 피드백에 긴장하며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고 취재를 위해 새벽 기차에 오르며 지는 별을 보던 나날들이 내 삶을 채웠다. 신문사에서 1년, 어느새 부정할 수 없는 4년 반의 시간이 한동대에 쌓였다. 언제든지 떠날 것이라 여겼던 이곳이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의 경험이, 고통이, 추억이 쌓여 넘지 못할 것 같던 내 삶의 임계점이 이곳에서 넘기고야 말았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미련들이, 내가 선택한 차선책들이 어느새 삶이 되고 말았다. 내가 모래로 쌓은 성마저 번번이 휩쓸어 갔던 바다는 내 집이 됐다. 이곳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사랑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후천적 고향, 내 삶의 차선책인 포항 한동대 20평 작은 신문사, 불시착한 이곳에서 내 삶을 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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