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민
(공간시스템 98 / 포항대흥교회 청년부 목사)

‘Why not change the world?’ 세상을 변화시키자. 참으로 가슴 뛰는 문구입니다. 저도 이 문장이 좋아서 한동을 사랑했고, 한동을 졸업해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학교를 떠난 지 14년이 흘렀고, 그 세월 동안 배운 것은 나 한 사람의 작은 습관 하나조차도 참 바꾸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제가 저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제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은 어떻게 바꾸어 가며, 더 큰 세상은 또 어떻게 변화시킨다는 말입니까?
‘우리를 위해 변화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셨고,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하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정말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변화였습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주고 받으셨던 분이셨습니다.(요17:5) 그런데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 위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유대교인 중에 유대교인으로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변화되었고, 사창가를 전전하던 마니교도 어거스틴이 변화되었고, 중세의 잘못된 교리 때문에 고통받던 성도들 속에서 함께 괴로워하던 루터가 변화되었고, 칼빈이 변화되었고, 휫필드와 웨슬레가 변화되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변화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끝에 한국교회가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변화시키자.’ 이 시대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참 많이 느낍니다. 금권선거 문제, 교회 세습 문제, 7계명을 범하는 목회자들 문제 등등. 교회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교회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교회들에 편지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파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로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복음을 전파했고, 분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고린도교회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열된 에베소교회와 갈라디아교회도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핍박 받고 환란 가운데 죽어가는 성도들 때문에 울고 있던 데살로니가교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옥중에서 빌립보교회를 향해 기뻐하라고 외친 것도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을 변화시키자.’ 한동대는 한국교회의 축소판입니다. 변화는 작은 소용돌이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팀모임, 방돌이 방순이들과의 관계, 수업시간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임과 만남에는 얼마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있습니까? 한동의 예배 시간에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그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얼마나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풍성히 누려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행위 이전에 존재입니다.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옛 사람인 내가 죽고, 새 사람인 그리스도로 살게 될 때에 그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갈2:20)
‘나를 변화시키자.’ 나부터 변화됩시다. 우리를 위해 변화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그 분 앞에 엎드려 웁시다.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괴로와합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롬8:26) 그분의 탄식을 의지하여 우리 또한 함께 탄식합시다.(롬8:23) 그 처절한 울부짖음 속에서 세상의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