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구성원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규칙은 공동체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세워진 구성원간 공동된 합의이며 공동체는 규칙을 통해 존속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과 정의가 없는 규칙은 구성원을 옭아매는 덫에 불과하다. 공정과 정의 없이 규칙이 세워지거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규칙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규칙은 구성원의 권리를 오히려 속박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오래 존속하기 위해서 규칙은 덫이 되면 안 된다. 구성원간 공통 목적과 공통 이익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실현될 때 공동체는 오래 유지되고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규칙만이 공동체를 오래 존속시킬 수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규칙은 권력을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동체 구성원은 평등해질 수 있다. 반면,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규칙은 공동체를 존속시키지 못하고 결국 자멸한다. 이처럼, 덫이 된 규칙은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사회 규칙과 다름 없다. 카를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 규칙을 통해 공정과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사회 규칙은 권력에 의해 합의되고 이용되며 권력이 사회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 구조로 인해 구성원은 공통된 합의조차 이뤄내기 어렵다.
한동대의 규칙인 학칙은 과연 공동체를 존속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덫으로써 옭아매고 있는가. 며칠 전 ‘사랑하는 한동인 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지글이 히즈넷에 올라왔다. 해당 공지글은 ‘정해진 규정을 존중하고 학생의 본분을 다한다면 징계를 재고할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의 신분이라면 무슨 일이든 정해진 규정을 겸허히 수용해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오랜 존속을 위한다면, 규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만으로 끝낼 수 없다. 규정이 공통 목적과 공통 이익을 위해 내려진 공통의 합의일지라도, 공통된 합의가 구성원간에 공정하고 정의롭게 내려지지 않았거나 규정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현실에 적용되고 있지 않다면, 규정은 구성원을 옭아매는 덫이자 권력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 규칙일 뿐이다. 이는 공동체를 오래 유지시키고 존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학보사도 피해갈 수는 없다. 언론의 역할 수행이라는 공통 목적과 공통 이익을 위해 학보사에도 사칙이 존재한다. 사칙에 따라 주간교수의 편집권 참여가 합의됐지만, 사칙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내려지지 않은 합의물이거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사칙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다면, 사칙은 구성원의 권리를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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