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수십년간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금기였다. 그렇기에 제주 4·3사건은 그들 만의 역사로 남을 뻔 했다. 기억 속 저편에 남아있던 그들의 아픔을 알려준 것은 다름아닌 책 한권이었다. 바로 현기영 작가가 쓴 ‘순이삼촌’이다. 이 책을 통해 제주 4·3사건은 최초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당시 저명한 문학비평지 ‘창작과 비평’에 실렸다. 하지만 이 책은 제4공화국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현 작가는 제주 4·3사건의 참상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순이삼촌’은 금서조치를 당했다. 그만큼 지난 대한민국 사회는 제주 4·3사건을 잊혀진 기억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순이삼촌’을 금서에서 해방시켜 준 것은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정부의 어두웠던 진실을 밝혔던 민주화 운동이 대한민국 역사의 슬프고 어두웠던 진실 또한 밝혀줬다. 이렇듯 ‘순이삼촌’과 민주화의 열풍의 도움으로 제주 4·3사건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순이삼촌’이 나오고 20년이 흐르고 1999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이후 제주 4·3사건의 진상규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으로서 최초로 사과를 했다.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통과됐어도 제주도민의 슬픔은 해소돼지 않았다. 제주 4·3사건은 정식적인 명칭이 없이 하나의 사건으로 불리우고 있다. ‘5·18 광주민주항쟁’, ‘6월 항쟁’ 등과 달리 역사적인 이름이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도 제주 4·3사건을 보기가 힘들다. 70년이나 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 외에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70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제주도민의 슬픔을 덜어주기에는 7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순이삼촌’을 통해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했던 현기영 작가처럼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무리 되지 않은 제주 4·3사건의 진상규명을 하루 빨리 마무리해 제 2의 제주 4·3사건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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