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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송현지 기자  |  songhj@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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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7  2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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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씨가 맑게 갠 토요일, 정혜 작가를 만나러 그의 공방을 찾았다. 그의 공방은 투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다웠다. 첫인상을 떠올리면 높게 휘어졌던 입꼬리가 생각날 만큼 정혜 작가는 웃음이 밝은 사람이었다. <구룡포 프리덤>의 주인공들이 대개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웃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정혜 작가는 “저를 보면 사람들이 고생 모르고 자란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제 입으로 그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저도 진짜 세상 풍파를 많이 겪었거든요. (웃음) 다들 의외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1 숲 속의 두 갈래 길 - 위로의 무게

“저는 프로스트의 ‘걸어 보지 못한 길’이라는 시를 참 좋아해요. 책 속에서도 그 시가 등장하거든요. 사람들에게는 걸어 보지 못하 길에 대한 후회가 다 있잖아요. 저도 나이가 오십이 됐는데 이십 대에 꿈꿨던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맨 앞에 무슨 작품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넣었죠.”

유진 씨, 이 시 알지?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는 프로스트의 ‘걸어 보지 못한 길’ 말이야.

주인공 ‘정희’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흔적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업의 실패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희의 가정은 대게 소설 속 가정의 전철을 밟는 듯 몰락하고 만다. 남편의 죽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들. 정희의 어머니는 막다른 상황에서 도둑질을 하게 되고, 정희는 그것을 목격한다.

남동생에게 주려고 내 몫으로 나온 과자를 먹지 않고 들고 왔다가 바닥에 던져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골목길로 달렸다. 어머니의 ‘정희야~’하는 고함소리가 환청처럼 내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피팅 모델 직원 선발전에서 일등을 한 정희는 본사 직원들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출장을 간다. 정희는 그곳에서 독일 에이전시 회사 직원 ‘다비드 일리겐스 홍’을 만난다. 미스터 홍은 아홉 살 때 독일 가정으로 입양됐다. 미스터 홍은 정희에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원망이 상처로 남아 여태 아물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다. 정희는 미스터 홍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는 듯 그의 고백 끝에 그와 키스를 한다.
그러나 정희는 자신이 간직한 아픔을 미스터 홍에게 섣불리 털어놓지 않는다. 그녀는 어쩌면 알았던 것이다. 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력이나 아픔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체할 수 없다는 것을. 각자 몫의 아픔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행의 말미에, 정희는 미스터 홍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사람들은 마음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요. 나무라고 다 심는 건 아니에요. 미움의 나무는 심어서는 안 돼요. 당신 마음속에 심겨진 미움의 나무를 뽑아내거든 제게 연락해요. 그때 당신에게 오겠어요.

#2 구룡포 프리덤 -따개비를 지고 살아가는, 고래 같은 이들

한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는 작가의 표현대로, 낯선 시골 골목길에서 엄마 손을 놓친 어린애마냥 한껏 겁먹어 있다. 주인공 ‘민욱’은 이혼의 충격과 친구의 죽음을 마음에 담은 채 고향인 구룡포에 도달한다. 민욱은 강박증을 진단받기 전까지 사회에서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었다. 대기업 월급쟁이로 살며 두 딸의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정기검진에서 강박증을 진단받은 민우는 충동적으로 참치잡이 배 선원 공고에 지원한다. 그는 원양어선을 타고 인도양으로 향한다.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향인 여기도 어제들처럼 낯설음이 칼날 같은데,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제 목이 타들어가는 걸 제 눈으로 보고 살아야 하는 불나방 신세가 되었는지, 지친다.

그러나 그의 도피는 그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온다. 민욱의 갑작스러운 선원 생활에 민욱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평범한 가정을 꿈꿨던 민욱의 아내에게 민욱의 방황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민욱은 참치잡이 배에서 ‘자심’의 죽음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자심은 독일 유학 학비를 벌려고 배를 탄 의대생이었다. 그물 작업을 하던 중에 손가락을 세 개나 잃은 자심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심의 죽음은 민욱에게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된다.

한동안 잊으려 애썼던 인도양 바다에 몸을 던진 자심의 검은 얼굴이 바다에 떠있는 흰 부표처럼 어른댄다. 그가 투신하자 한순간에 파도가 붉은 거품을 게워냈던 게 어제처럼 또렷하다. 자심의 죽음을 목격한 후부터 고등어 알레르기가 생겼다.

정혜 작가는 “인생이 늘 해피엔딩이 아니잖아요. 그게 나한테 고통을 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떨쳐낼 수가 없는 거야. 흉터가 남아있으니까. 짊어지고 가는 거죠”라며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민욱은 다시금 배에 오른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간다. 민욱은 지긋지긋한 따개비를 평생 지고 살아야 하는 고래가 한없이 측은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도 역시 지워지지 않을 따개비의 흔적이 있기에, 그는 측은한 마음을 느꼈던 것이다.

<구룡포 프리덤> 정혜 작가와의 만남

정혜 작가는 고향인 포항에서 여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책 <구룡포 프리덤> 뿐 아니라 뮤지컬, 스토리텔링집, 시 등 포항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혜 작가는 2000년 수필 ‘강을 건너며 만나는 그리움’으로 ‘포항 문학’ 창간 20주년 기념 신인작품 공모에 당선됐다. 이후 2011년 단편 소설 ‘침묵하는 오후’로 제19회 전태일 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포항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거였죠. 저는 죽을 때까지 써도 이 포항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공감놀이터 어링불’에서 인터뷰 중인 정혜 작가. 본인의 저서 <구룡포 프리덤>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 짓고 있다. 윤예준 사진기자 yunyj1@hgupress.com

Q 작품을 보면, 주인공들이 대부분 쓸쓸해 보여요.

제가 무슨 그런 사람들만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이정록이라는 시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시인이 어떤 강연회에 가서 그런 얘기를 들었대요. 껍데기를 주로 쓰는 시인이라는. ‘풋사과의 주름살’ 같은 게 어떻게 보면 다 껍데기 얘기잖아요. 언젠가 보니까 자기가 껍데기를 주로 쓰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Q 작가님께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아픔에 꽂히시는 거군요.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남들이 보면 어쩌면 파란만장한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살았어요. 동생 두 명이 일 년 사이에 죽기도 했어요. 사기도 당해봤고. 그리고 제가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잘 나가는 문창과 학생이었는데 대학을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삼십 대 때 돈을 벌어서 다시 대학을 갔어요.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제가 너무 힘들어할 때, 후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언니는 초콜릿 상자를 받았는데 그중에서 맛없는 초콜릿만 다 먹었다고. 그래서 이제 맛있는 것만 남았다고요. 그 말이 참 힘이 됐어요. 왜 이렇게 나만 힘드냐고 울부짖던 삼십 때 그런 말을 들었거든요.

Q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소설을 보면서 담담해서 오히려 서글프다고 생각했거든요.

‘숲 속 두 갈래 길’에 나오는 정희의 엄마가 어떻게든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하잖아요.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어떻게든 자식을 먹여야 하는 지경에서 제가 봤을 때는, 살인 빼고는 모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신문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소설 같은 일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저는 욕심 나는 말 중의 하나가 진심을 담는다는 거예요. 대변인이 되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들의 진심을 미루어 짐작하는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어떤 작품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뭔가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좀 박수 쳐주고 싶거든요.

Q 작가님의 작품 중에 포항에 관련된 얘기가 많아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물어요. 왜 그렇게 포항 이야기를 쓰냐고. 제가 창작하는 내용은 거의 다 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얘기거든요. 저는 포항이 고향이고 여기 살고 있는데, 뭔 나라 이야기를 쓰는 게 뭔가 진심이 아닌 것 같아요. 거짓말 같아. 그래서 하다 보니까 포항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같아요. ‘귀신고래를 기다림’이라는 연극을 제가 지었는데요. 연극 대사의 대부분이 포항 사투리에요. 포항 얘기거든요. 칠십 대 분들이 난리가 났어요. (웃음) ‘저거 우리가 쓰던 말 아니야’ 하면서요. 포항 얘기를 쓰면서 서울말 쓰면 안 되잖아요. 제가 톨스토이를 읽었다고 해서 러시아 얘기를 쓰면 안 되는 것처럼요. 제 작품에는 자연스럽게 포항 얘기가 들어가고 포항 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Q 포항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시는 곳이 있으신가요?

구룡포는 바다가 살아있어요. 작업화에 씨든 때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요. 투박한 고기 바늘이 옷에 막 붙어 있어도 사람들이 별로 그것을 신경쓰지 않죠. 그런 것들 때문에 저는 구룡포를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작가님의 삶에서 자연스레 읽히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소설에서도 보면 사람들로 인한 아픔이잖아요. 그럼에도 사람이 좋아져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고향에서 살아가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인적인 일들이 많이 알려지잖아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상처를 안 받아요. 친하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람들과 만나고 같이 일하고 이런 것들이 좋아요. 문학도 비슷한 거 같아요. 처음에는 내 기록이잖아요. 옆에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어, 괜찮네?’ 이러면서 점점 공감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거죠. 그러면서 작품을 쓰게 됐어요. 내가 아는 얘기를 쟤도 하면 반갑고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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