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입- 모로오카 야스코

조은샘 (법학부, 16)

“증오하는 입”은 혐오발언과 혐오범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혐오발언과 그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는 히틀러로부터 시작된 혐오발언이 제노사이드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20세기의 참상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류는 전쟁의 20세기를 경험하며 혐오라는 감정의 파괴력을 체험했다. 평화로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혐오라는 감정이 물리적 폭력으로 바뀌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던 일들이 옛날 이야기처럼 희미하게만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혐오라는 이름으로 우리 속에 살아 숨쉬는 나치를 발견한다. “극혐”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의 신조어는 우리 사회에 혐오라는 감정이 절정에 치닫았음을 보여준다. 21세기는 총과 칼이 아닌 혐오발언으로 매일같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혐오발언을 강력하게 규제할 수 없는 이유는 혐오발언이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데는 특별한 의무 및 책임이 따른다” 는 국제 인권법 자유권규약 19조 3항에 근거하여 혐오발언의 법적 규제를 주장한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다. 또한 혐오발언을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속에 들어있는 가해의사가 너무나도 명백하다. 혐오발언 자체가 언행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혐오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법적 규제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헌법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자유와 권리란 매우 모순적인 것이어서 한 사람의 자유와 권리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를 형성해 가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가 필수적이다. 타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내 영역을 타자에게 내어주고 나도 타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침범을 관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혐오로 대하는 자는 “함께”라는 인간의 본질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20세기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최악의 세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속의 나치에게 혐오라는 양분을 계속 공급한다면 20세기의 참상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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