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다
최은총 기자  |  choiec@hgupres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2.05  23:34:5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최근 한국교회 내 여러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세습부터 여성 문제, 재정비리와 학력위조와 같은 세속화 문제까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꼭 검토해야 할 주제를 제안하며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청어람 ARMC’의 양희송 대표와 여성 신학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있는 실천여성회 ‘판’의 최은영 공동대표에게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청어람 ARMC의 양희송 대표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양희송 대표(이하 양 대표): 2005년부터 12년간 기독교 대중들을 대상으로 인문사회, 예술들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청어람 ARMC’의 대표로 있다. 한동대에서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었다.


Q 현재 바라보는 한국 교회 내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양 대표: 문제는 많다. 한국 개신교는 교단도 여러 가지고 하나로 딱 묶여서 통제가 되는 조직이아니기 때문에 사건사고는 여러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단시간에 사고를 줄이고 대응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 이 세 가지 큰 틀에서 한국교회 내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다.


Q 교회의 세습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 대표: 구조적인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세습은 중, 대형교회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1980년대 이후 대형교회에서 전반적으로 세대교체에 실패하고 있다. 세습반대운동연합 자료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300여 개의 교회가 세습을 진행했다. 대형교회가 세습이 아니고서는 자신들 조직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됐다고 본다. 전임목사와 후임목사의 분열이 일어나는 등 세대교체에 실패한 대형교회들이 위협을 느끼고 세습을 해야겠다는 판단에 이르는 것 같다.
또한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교회 운영 자체에 권한이 분산되고 합리적인 조직 운영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목회자 중심으로 교회운영이 이뤄진 성직주의와 같은 이유도 있다. 목회자에 과도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권한, 권위를 가진 목사가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가 없는 거다. 후임자를 들이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봐서 아들이나 사위 등 친인척을 들여 현재 만들어 놓은 구조를 가능한 변화시키지 말고 최대한 유지하자는 생각이 목회자와 성도들 안에서도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Q 세습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양 대표: 신학적인 측면에서 비판하자면 기본적으로 교회가 혈연공동체가 아니고 언약공동체라는 점에서 혈연으로 목사직을 승계하는 것이 옳지 않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11세기 무렵 서양에서 기독교 국가체제가 이뤄지고 난 후 성직자들 친인척들이 중요한 교회 직책 등을 독식한다. 혈연중심의 족벌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세교회에서도 금지를 했고 종교개혁을 촉발했던 선례가 있다. 한국교회의 세습은 중세의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던 상황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인으로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Q 세습의 해결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양 대표: 세습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대형교회들은 자기 덩치를 주체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 세대 목회자들이 성장시켜놓은 것들 다음 세대로 넘겨주지 못하고 세대교체에 거의 다 실패하고 있다. 그 덩치를 분할하거나 쪼개서 적정한 규모로 나누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지 않을까.
Q 교회 내 여성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양 대표: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회 안과 서양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가 고착되고 그것이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사례가 무수히 많이 등장했다.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이 오·남용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여성에 대해서도 오남용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여성의 권리, 존재를 두드러지게 보호하고 높게 끌어올리는 모습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특별히 신약의 예수님의 태도나 초대교회 공동체 내 여성들의 역할은 당대 문화에 비춰볼 때 굉장히 전향적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남녀차별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의 소중함을 훼손하는 것을 어느 방식으로도 용납하지 않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지금 사회에 와서는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잘못된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주요 교단에서 여성의 권리를 억압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이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여성 목사안수가 되는 교단에서도 여성 목사의 자리가 제대로 확립돼있는가에 대해서도 갈 길이 먼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의 변화에 발맞춰가면서 자기 변신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


Q 교회 내 여성 문제 해결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양 대표: 일차적으로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정확하게 어떤 맥락에 이야기들이고, 이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흘러왔는가, 문제를 바라보는 주요한 입장이나 시각은 어떤 것이 존재했는가. 사전학습 없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개신교나 교회가 페미니즘에 썩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더 잘 공부할 필요가 있다. 교회 안에 맥락이나 조건과 연관 지어 페미니즘을 바라보면 좋겠다. 여러 강연을 듣거나 페미니즘 관련한 개론서나 고전서를 읽으며 공부하고,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대학 이상의 지성인의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대화와 학습이라는 과정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어떤 사안을 들여다보는게 필요하지 않나. 전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대학생 이상 글을 읽고 합리적 사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우선적인 태도는 아니지 않는가 싶다. 어떤 종류의 사회적 이슈들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토론하고 하는 방식으로 대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교회 안에서 문제 되는 사안은 말도 못 꺼내게 하는데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 때는 포스터 모더니즘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반기독교적이라고. 그런 방식은 비판적 사고를 할 겨를 없이 모르면서 반대하거나 모르면서 찬성하는 맹목적인 방식의 대립밖에는 안 만들어진다. 꺼내 놓고 토론을 해야 각각의 논점에 대한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이슈에 대해서 가로막는 방식의 대응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초보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덮어놓는 것이 아니라 꺼내서 이야기를 해가며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Q 교회 내에서 여성 문제를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양 대표: 교회가 지적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교회에서 많이 하는 말이 사람들이 이런 것에 노출되면 신앙에 위험이나 위협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성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비판적인 능력을 키울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거다. 그건 종교개혁의 가르침과 전면으로 위배되는 거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성직주의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교황이나 사제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직접 나아갈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가 개신교 정신이다. 성직자가 중심에 서서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 마틴 루터의 입장이고 개신교의 출발이다. 계속 대화, 토론, 공부, 학습을 이야기하는게 개신교적 신앙이 확립될려면 이것들이 필요하다. 사제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순종하는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 깨우치고 학습하려는 태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개신교적 신앙은 불가능하다. 한국교회에 여러가지 많은 문제에 이유가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개신교적 특성을 잃어버린 것, 성직자에 순종하는 것을 신앙의 최우선적 미덕이라고 만들어버린 문제가 가장 크다.
Q 재정비리, 학력위조 등과 같은 세속화는 원인과 해결 방향성은?
양 대표: 일반론적 차원에서도 세속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지만 교회가 스스로 중요하다는 생각하는 가치가 정립이 안 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기독교 신앙에 무엇이 중요한가. 교인 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가. 큰 건물을 갖는 것 무엇이 중요한가. 예수 따라 산다는 결단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 사람들에게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교회가 내보여야 할 가치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고 다른 것들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세속화 현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교회 본질이 뭔지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실천여성회 ‘판’ 의 최은영 공동대표

   
 

Q 실천여성회 ‘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최은영 대표(이하 최 대표): 1980년대에 조직된 ‘한국여신학자협의회’라는 기독여성단체가 있다. 우리는 대전지역내 신학전공자들이 모여 지회 형태의 ‘대전여신학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2000년에 출발했다. 2014년에 여신학자라는 명칭이 갖는 벽으로 모임에 들어오기를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계셔서 부담을 줄이고 일반기독여성들의 참여를 증진시키고자 실천여성회 ‘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판은 여성 신학을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의 성 평등, 정의, 평화에 대한 독서모임, 공개강좌개최 등의 활동을 한다.
Q 교회 내에 페미니즘과 여성 신학이 대두되고 있다. 어떤 활동이나 이야기들이 이뤄지고 있나
최 대표: 사실 한국에는 1980년대부터 여성신학이 들어왔다. 1980,1990년대부터 선배여성신학자들이 꾸준히 번역, 저술해오고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여성 신학이 주목받게 됐다. 여러 강좌를 열거나 여성 신학을 배우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교회내 여성차별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관심은 늘었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여성 신학, 페미니즘적으로 성서읽기에 대해 들어보기 어렵다. 교회 내에 여성 문제에 대한 큰 변화도 없다.


Q 한국교회 내의 여성 문제에 대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최 대표: 이전에는 7~80% 정도가 여성일 정도로 여성이 많았다면 지금은 여성들이 교회를 많이 떠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그때의 순종과 헌신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부정적으로 보기만은 어렵지만, 여성들이 고정적인 성 역할에 맞춰진 어르신들이 하던 주방봉사나 허드렛일 등을 도맡으면서 여성들이 남아있기를 힘들어한다. 교회 내에서 목회자들이나 소위 당위원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이전 것을 고수하면서 젊은이들과 여성들을 탓하는 분위기의 문제도 있다.
또한 목회자의 성폭행, 성범죄의 문제와 성서와 교회 전통을 가지고 와서 그 잣대로 성서에 나오는 여성에 대해서 차별적인 언급이 통용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과 대표적인 교단에서 여성 목사 안수가 이뤄지고 있지 않는 등의 여성차별 문제가 있다. 한 사례로 우리 회에 연락이 온 20대 여성분이 있었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과 여성 혐오까지는 아니여도 여성 차별적인 언사, 비유들이 많이 나오는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은혜를 못 받았다 믿음이 없는 거다, 왜 목사님 말에 딴지를 거냐 식의 답변을 들은 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가에 대한 자괴감, 죄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여성 목회자 같은 경우 어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기 원하고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린이부서들을 맡기도 한다. 의결기구에는 여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들도 교회 내에 문제들로 볼 수 있다.


Q 교회 내 여성차별의 원인은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최 대표
: 유교,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교회 내에도 영향을 준다. 성서해석의 문제도 있다. 성서에 아담과 하와 창조 구절에서 어떤 이들은 여성이 죄를 이 땅에 가져왔고 여성은 남성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부차적인 존재라고 얘기하며 여성을 부정적 존재로 바라본다. 창세기 1장 27절에 대한 남성과 여성, 여기에는 어떠한 순서상의 차별도 역할상의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2장과 3장에 나오는 하와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을 통해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준다. 바울 성서에 여성은 잠잠하라라는 구절 등 여성차별적인 몇몇 언급으로 인해 교회와 사회는 영향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과거 서구 제국주의는 자연을 인간에게 위임하셨다라는 성서 구절을 뒷받침으로 자연개발을 강행했다. 이 구절은 자연과 인간을 동반적인 관계로 바라보지 인간이 더 위계적인 존재로 얘기하는게 아니다. 한쪽만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신학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원래 뜻을 같이 고민하고 좀 더 근본적으로 확장해 바라보자는 것이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오직 성서로 돌아갈 것을 얘기하는데 자칫 문구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외국인, 장애인, 여성,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있다. 노예계급제도에 대한 옹호도 있고. 문자적으로만 이해 하기엔 지금 사회적 상황과 너무 괴리가 있다. 문자주의적 해석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역사비평적, 공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성경에 써있으니까 반대해야 한다 등의 지엽적인 사고가 아닌 시대적 상황을 보면서 역사비평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의 관점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시대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공시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본문자체는 그대로이지만 그 본문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지배자의 눈으로 볼지 약자의 눈으로 볼지. 성서에 대한 질문을 가지면서 해석하고 성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Q 교회 내 여성차별의 해결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최 대표
: 남성과 여성이 대립각으로 가는 것은 반대한다.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에 과격한 면들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 속 초대교회 당시에 읽혀진 바울의 선언을 보면 남녀가 같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같고 종과 주인이 같다고 말한다. 바울의 평등 선언이고 초대교회 당시 세례식에서 읽혔다고 한다. 이 선언은 당시 시대의 상황을 살펴봤을 때 혁명적인 선언이다. 성서 내에 그런 신앙고백을 통해서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여성들이 부각되지 않지만 약자, 소수, 여성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고 교회내에 자연스럽게 있었던 남성 위계적인 문화를 바꿔 가는 시도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개인 모두가 평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하게 만들어진 존재인데,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차별을 이어가는 교회 내, 그리고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시선들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정리 최은총 기자

최은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791-708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로 558 한동대학교 학생회관 102호, 한동신문사  |  대표전화 : 054-260-1241~2  
발행인: 장순흥  |  주간: 허명수  |  편집국장: 송현지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광준
Copyright © 2013 한동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