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획 기사다. 모든 기사가 그렇지만 이번 기사 역시 순탄치 않았다. 기사 구조를 몇 번이나 바꿨는지 모르겠다. 각기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사를 갈아엎기를 수차례, 그래도 기사가 나간다.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에서 다양성은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 한 문장을 의지해 비틀거리며 7천 자를 메꿨다. 결과는 언제나 그랬듯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한 나와 내가 쓴 글의 패배일 것이다.
한동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나는 기독교에 대해 의심을 품어 본 일이 없고, 제도권 교육 아래 16년을 공부해오면서 비판하거나 질문하는 법을 배워본 일이 없었다. 여름, 겨울 수련회에 참여하고, 주일 성수에 빠지지 않으며, 학교의 주입식 교육에 따라 좋은 성적을 받았던 나는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달랐을까. 그 동안 교회와 학교에서 배웠던 신념으로 가득 찼던 나는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교회 가지 않는 친구들과 나의 성실함을 비교하며 우월감에 젖었다. ‘나는 적어도 저렇게 살지는 않아’, ‘저런 사람이 무슨 기독교인이야’,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확신에 차니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얻은 우월감을 원동력 삼아 신앙생활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내 말이 옳다고 큰소리 치면서 1학년이 다 갔다. 그리고 휴학을 했다. 휴학을 하고 혼자 서울살이를 하면서 참 많이도 깨졌다. 교회와 제도권 교육이라는 온실 안에서 화초처럼 자라던 내 확신은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며 조금씩 부서져 갔다.
깊은 회의감으로 무장한 채 학교로 돌아왔다. 확신에 금이 가고 삐딱해진 나는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든지, 비혼은 반성경적이라든지, 하나님은 왕권주의라든지 하는 그들의 확신에 경악했다. 그리고 지금도 페이스북 한동대신전해Dream 페이지에는 한동의 확신에 상처받았다는 비기독교인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나치와 독일인의 확신이 유대인을 죽였고, 유대인의 확신이 예수님을 죽였다. 우리는 어떻게 그토록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으며, 그 확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의무감 때문에 교회에 억지로 출석하는 일이 없어졌고, 매일 아침 큐티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어졌으며, 남들 따라 일어서서 눈감고 손들고 찬양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4학년이 된 지금은 모든 것에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척하며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확신’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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