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이권능 목사

우리 삶에서 기가 막힌 상황을 만났을 때, 그 환경을 보며 낙심하고 좌절하기란 쉽다. 성도라면 이런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압살롬 반역 때에 다윗은 자신의 편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이심을 고백한다.(시3:3) ‘영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보드(כָּבוֹד)”는 ‘무겁다’는 단어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무거움’, ‘중함’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내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영광되시는 하나님이 내 머리를 드신다.”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도 하나님이 ‘중함’으로 들어오셔야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게 믿음이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아이가 없어서 금식하며 눈물 흘리는 한나를 통해 오래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제시하신다. ‘하나님이 세우다’는 이름의 “엘가나(אֶלְקָנָה)”가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먹지 아니하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네가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한다면, 지금껏 내가 준 사랑은 뭐니?”라고 하자(삼상1:8) 한나는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고, 없는 것 때문에 완전히 눌려있던 한나가 자신의 마음을 토해낸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5) ‘통하다’, “샤파크(שָׁפַך)”는 ‘쏟아 내다’라는 뜻이다. 지금껏 한나 속엔 자신에게 없는 아기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한나는 이제까지 자기 안에 하나님이 무거움으로 자리하지 못했음을 알고, 자신을 꽉 채우고 있었던 문제를 쏟아낸 것이다. 내 속을 꽉 채우고 있는 문제, 나를 지배하고 체질이 돼버린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토해내야만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5)라고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다. 하나님 백성인 그들이지만, 다른 나라들이 그들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성도는 그 안에 하나님이 중함으로 들어있어야 되는데, 어느새 말씀보다 세상의 기준이 더 중하게 되어 버린 모습이다. 하나님의 중함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흩날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선 “나를 버렸다.”고 표현하신다.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겔8: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소에 살고 싶으신데, 하나님 계셔야 될 방에 다른 짐들이 들어오니까 방을 빼서 나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내 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들을 쏟아내야 하나님이 내 안에 중함으로 들어오실 수 있다. 오늘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무게는 전혀 신경 안 쓰면서 육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또한 온통 돈, 온통 가족 때문에 고민했던 모습들이 보인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 문제를 토해내고, “네가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시며 짐 싸는 하나님 붙들어서 다시 내 소중한 가치로 모셔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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