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 굿즈 삽니다.’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에서 이니 굿즈를 원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 ‘이니’가 붙은 기념품 이니 굿즈는 근래 인기를 얻고 있다. 우표, 시계, 타임지 등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니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중고로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다양한 장르에서 굿즈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꺼내든 A 씨의 노트 표지에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옆에 앉은 친구 책상 위의 물통에는 학교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에 나가자 학생들의 가방 뒤에 열쇠고리와 인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학용품을 사기 위해 들어간 교내 문구점에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그려진 볼펜, 다이어리 등이 진열돼 있다. A 씨가 눈을 둘 수 있는 어디에서나 굿즈가 눈에 띈다. 굿즈는 먹고 보고 쓰는 일상 속 소비 모든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 가지각색의 굿즈들이 책상에 놓여있다.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그 이름하여 ‘굿즈’

굿즈란 상품을 의미하는 단어 ‘Goods’에서 파생된 문화 분야 파생제품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초창기 굿즈는 아이돌과 연예인을 응원하는 팬덤(Fandom)에서 쓰는 상품을 지칭했다. 굿즈의 의미는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콘텐츠가 담긴 상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재 굿즈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문화 장르 전반에 있는 특정 인물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품을 뜻한다. 연예인의 얼굴이 인쇄된 책갈피나 풍선, 우비를 넘어 최근에는 달력, 가방, 수첩, 시계 등 생활용품으로까지 확대됐다.
굿즈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소비층도 다양해졌다. 아이돌 팬들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등에 관심을 가진 구매력 있는 성인까지도 굿즈를 구매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이 취업포털 인크루트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키덜트(Kidult) 관련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 76.6%가 산적이 있다고 답했다. 굿즈와 관련된 캐릭터 산업 시장은 점차 성장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2017년 콘텐츠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 만화, 게임, 영화 등 문화 캐릭터 산업의 매출액은 2조 8,737억 원으로 추정되며 전년 대비 4.9%가 증가한 수준이다. 문화 캐릭터 산업 매출액은 전체 콘텐츠산업 매출액에서 11.5% 비중을 차지한다.

▲ 육거리에 위치한 한 상점에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굿즈,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 욕구의 만남

소비자가 굿즈를 소비하는 형태는 다양하다. 소비자들은 굿즈의 상품성과 실용성을 저울질하며 구매를 결정하기도 한다. 박동주(부산 사하구 25) 씨는 “코카콜라에서 새로운 텀블러나 보온병 등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는 데 질이 나쁘거나 쓰지 못할 것 같으면 사지 않아요”라며 “보통 쓰려고 사긴 하는데 여러 개 사서 계절에 따라 텀블러를 번갈아 쓰고 또 쓰임새에 따라 겨울에는 보온병, 여름에는 얼음 담는 컵을 주로 써요”라고 말했다.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김정애 교수는 “소비자들은 생활용품의 기능적인 측면과 더불어 쾌락적인 측면에 대해 소비를 함으로써 일반적인 생활용품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더라도 충분히 굿즈를 소비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 중 사용이 아닌 소장의 목적으로 굿즈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있다. 굿즈를 수집하는 소비자들은 좋아하는 콘텐츠 상품에 한해 실용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기도 한다. 포항에서 굿즈샵을 운영하는 이규철 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굿즈가 있으면 금액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비싸면 사기 위해 돈을 모았다가 사요”라고 말했다. 김재홍(부산 해운대구 30) 씨는 “팬심을 가지고 소장하는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는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만족감, 충족감을 줘요”라며 “예전에 한정판이나 예약제품을 살 때 점심을 굶을 각오하고 돈을 모아서 산적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굿즈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표현의 가치는 실용성, 기능성과 같은 가치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기업은 굿즈를 사용하고 수집하는 소비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 기업은 상품에 덤을 포함해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덤 마케팅을 시행하고 있다. 햄버거, 커피숍 등 유사 상품이 넘쳐나면서 제품 간의 차별화 요소가 적어짐에 따라 소비자 유인책으로 굿즈를 덤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매년 맥도날드에서는 해피밀 세트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장난감 세트를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맥도날드에서 맘에 드는 굿즈가 나오면 굿즈를 모으기 위해 하루 이틀은 해피밀만 먹은 적이 있어요”라며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고 싸게 밥 먹을 때 굿즈가 딸려오면 좋으니까, 그리고 굿즈 질이 엄청 안 좋은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런 덤 마케팅은 덤으로 딸려오는 굿즈가 희소성을 띨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매해 연말이 되면 커피를 구매한 고객에게 신년 다이어리를 제공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소비자는 17잔의 커피를 구매해야만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플래너는 재고가 없어 구하기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유다겸(서울 가산동 29) 씨는 “이왕 마시는 김에 다른 커피숍보다 자연스럽게 스타벅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있어요. 이왕 마시는 거 한잔 더 마시면 다이어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마케팅 덕분에 매년 한국 스타벅스 전체 매출의 9% 정도가 다이어리, 텀블러 등의 굿즈가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 중 일부는 굿즈에 열광하는 다른 소비자의 반응에 영향을 받아 굿즈를 구매하기도 한다. Social Network Services(이하 SNS)와 뉴스를 통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굿즈의 경우 굿즈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군중 심리에 따라 다수가 사는 것을 따라 사기도 한다. 박 씨는 “요즘 카카오 프렌즈가 엄청 인기잖아요,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가 새겨진 체크카드인데 그게 한창 이슈가되서 저도 덩달아 신청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구입된 굿즈들은 단순히 사용되고 소장하는 것을 넘어 주변 사람들과 함께 굿즈에 대한 만족과 감정을 공유한다. SNS와 블로그에 자신이 산 굿즈를 올려 의견을 공유한다. 박 씨는 “인스타 같은데 굿즈를 샀다고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주변에서 ‘또 샀냐’, ‘예쁘다’라며 반응해줘요”라고 말했다. 유 씨의 경우 구입한 텀블러를 직장에서 쓸 때 주변 동료의 텀블러와 비교하고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현재 새로운 소비 트렌드 흐름을 따라 굿즈를 사는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혼자 활동하고 즐기는 혼족, 어떤 분야에 열정과 흥미를 가진 덕후, 한 번뿐인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산다는 욜로(YOLO)족 등이 굿즈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 씨는 “적당히 먹고 살면서 지장 없는 한도 내에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굿즈를 사요”라며 “성인이 돼서는 이제 내가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건전한 취미로 굿즈를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소비 트렌드에 대해 김 교수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소비 트렌드는 꾸준히 나타날 것이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것이에요”라며 “사람들이 불안, 스트레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소비를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 텀블러에 그려진 유명 커피숍의 상표가 눈에 띈다.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굿즈, 새로운 사회참여 방식

굿즈는 더 나아가 사회참여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배지와 위안부 팔찌 등 후원과 추모를 목적으로 한 굿즈가 생겨났다. 온라인 펀딩 플랫폼(Platform) ‘텀블벅(Tumblbug)’에서 고등학생 디자이너가 만든 세월호 굿즈 거울과 배지가 판매됐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제작된 굿즈는 판매 수익의 일정 금액이 기부금으로 쓰인다. 굿즈가 판매되면서 모인 기부금은 416 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님을 통해 세월호 단체나 유가족에게 전달된다. 위안부 굿즈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김 교수는 “제가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고 저의 가치관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에요”라며 “(굿즈를 구매하면서)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집단으로 응집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주제로 한 굿즈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강화하거나 지지층을 넓히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굿즈를 사면서 지지와 선호를 표현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정치인들의 굿즈가 대선 기간에 큰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의 선거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새겨진 모자, 힐러리를 대통령으로(Hillary for America)가 새겨진 머그컵 등 다양한 굿즈들이 소비자들 앞에 선보였다. 각 정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굿즈는 정치 팬덤을 늘리는 동시에 정치 후원금으로 쓰일 수익을 벌어들인다. 한국의 경우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서 에코백, 텀블러, 머그잔 등을 각 500개 정도 제작해 당원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바 있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의 굿즈가 인기를 끌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 2017년에 다시 한번 굿즈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치굿즈는 자신의 의사표명 역할도 될 수 있고, (지지자는) 굿즈를 구입함으로써 지지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나 해당 팬덤에 소속하고자 하는 것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라고 괴테가 말했다. 이제는 책상 위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물병, 손에 찬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시계,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가 나를 말해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데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 교수는 “결국 소비는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에요”라고 말했다.

*키덜트: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한다. 키덜트는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20~30대의 성인계층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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