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괴롭다. 바라보는 대상이 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인식할 때 외롭다. 고개를 돌리면 금방이라도 편해질 것만 같다. 온갖 딴생각들을 동원해, 깨달은 바를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노력해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머릿속을 온통 차지해버린 그것은 나를 지독히도 따라다닌다. 고개를 돌릴 수 없을 만큼.
부족했다. 취재원, 독자 그리고 내부 구성원까지도 ‘아쉬웠다’고 말하는 신문을 낸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다시 되짚어 본다. 순간들 속에서 내렸던 판단들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리며, 재정비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부하가 걸린 듯 머릿속이 복잡하다. 앞으로의 계획들보다 여섯 번 달리기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발행 직전, 찾아온 이들에게 왜 개강호 신문을 발행해야 하는지 입증해야 했다. 입증하고자 내뱉은 말에 거짓은 없었다. 신문 발행 이후, 더 많은 이들 앞에서 설명해야 했다. 그들이 입증을 바란 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는 입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들려오는 많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충분히 열악한 연구환경이 더 악화될까, 면접 시기에 학교 모습이 안 좋게 비칠까 걱정하는 말들이 이해는 갔으나 동의는 되지 않았다. 요구되는 책임들 사이에서, 언론으로서 요구되는 행동을 우선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한동신문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말을 듣는 것은 참 뼈아팠다. 감히 그 아픔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고, 아픔을 해결할 수도 없어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죄송스럽다.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의 말 만을 드릴 수밖에.
지난 호 신문에 구조보다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 기사를 실었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구조보다는 개인에게 있다고 판단했고, 그 사안이 보도할 만큼 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왜 더 좋은 기사를 보여주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 역시 따른다. 산적한 문제 중 구조적 문제 역시 존재한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 제2의 제3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구조적 문제 역시 조명할 것을 다짐한다.
다시 처음을 본다. 욕심을 상기한다.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분수를 인식하기 전 욕심을 가지기는 쉬운 듯하다. 그러나 인식한 후에도 욕심을 가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열정이다. 계속해서 달리게 만드는, 한계 그 너머를 바라보게 만드는 동력. 두 가지의 지점만 정하기로 한다. 처음과 끝. 시작한 이유를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본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