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던 여름이 가고 이제 밤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게으른 나와 달리 계절은 성실해서 어느새 이런 바람을 가져다 주나 보다.
이번에 사회문화부에서 대학보도부로 자리를 옮겼다. 사회문화부에서 내가 주로 썼던 주어들은 나와 일면식도 없거나 물리적 거리가 멀 때가 많았는데, 대학보도부에서 써야 하는 주어들은 나와 매일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이들이었다. 주어들과의 가까운 물리적 거리는 내게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사를 쓸 때마다 중력처럼 마음과 머리를 짓눌러 ‘왜 기사를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끝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기자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학보사를 떠났다. 나라고 예외일까. 기사를 쓰다가 ‘왜’라는 질문에 숨이 턱 막혀서 한숨을 내뱉어 밀어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압박감에서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취재원에게도, 데스크에게도, 동료 기자들에게도 기댈 수 없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사실’뿐이다.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나는 왜 이 기사를 써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생각이 미칠 때, 기자는 오직 사실에만 기대야 한다.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이 사실인지에만 집중해야 한다.
내가 한동신문의 지면 한켠을 차지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 기사가 사실이라는 것.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느라 숱하게 밤을 새우면서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취재원이 제보해준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일어났던 모든 과정들은 사실에 닿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었다. 사실은 저 멀리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데, 나는 그곳에 닿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기사가 나간다. 문장 하나하나 사실이 아닌 것은 없는지 기자를 매섭게 몰아붙여준 데스크에게 감사하다. 용기 있게 사실을 제보해준 취재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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