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한동대 학생회관 앞에 대자보가 붙었다.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의 입장’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대자보는 모두 찢긴 채 훼손돼 있었다. 이후 대자보를 붙였던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한동인 모임’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자보 훼손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대자보를 다시 게재했다.

대자보는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의 중심 대학가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가 탄압받던 당시 대자보는 민주화를 바라는 학생과 시민에게 유용한 매체였다. 이들은 대자보를 쓰며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가는 대자보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동대에서도 의견 표출의 수단으로 대자보가 사용된다. 교내 대자보가 처한 상황과 거쳐온 역사를 통해 한동대 대자보의 현장을 살펴봤다.

“대자보 어디 있니?”

한동대 내 학교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자보를 붙일 공간은 두 곳이다. 학생회관 앞 대형 판넬과 벧엘관 외부 벽에 있는 자치회 게시판이다. 대형 판넬은 제22대 총학생회 ‘기대’(이하 기대)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기대 소통국 박우주 국장은 “이단이나 상업성, 폭력성, 선정성 등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한다면 더 이상의 검열 없이 게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치회 게시판 역시 승인절차 없이 대자보를 붙일 수 있지만, 대형 판넬처럼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 설치된 것은 아니다. 자치회 게시판은 사업홍보 및 안내공지를 위해 주로 쓰인다.
이외 공간에 교내에서 대자보를 붙일 경우 승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학생간행물발간규정 제3장 14조에 따라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서는 지도교수나 학과(부)장의 승인을 받은 후 학생처장의 검인을 받아야 한다. 2014년 학생간행물발간규정이 개정되기 이전 조항에는 학생처장이 직접 대자보 게시에 대한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불허의 경우 학생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한편,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는 대자보를 붙이는 전용 게시판이 따로 있다. 대자보가 길을 따라붙어 있는 정경대 후문의 게시판이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의 승인이나 검인을 받지 않고 대자보를 붙일 수 있다. 이는 고려대가 *학칙 제53조에 따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보는 이슈를 타고…

기자는 본지에 기록된 대자보를 기준으로 역대 한동대 대자보를 분석했다. 한동신문에 기재된 대자보의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대자보가 붙은 횟수는 총 33회였다(한 장 이상의 대자보가 붙은 주제당 1회로 계산). 이 중 31회는 학내 사안을 다룬 대자보다. 이에 학내 사안을 다룬 대자보를 중심으로 ▲시기 ▲내용 ▲게시자 성격에 따라 분석했다.
대자보는 2000년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자보의 내용은 개인적인 내용부터 비판적인 내용까지 다양했다. 2003년 발행된 본지 63호에 따르면 건물 층마다 있는 공식 게시판에는 생일축하부터 금연 결의, 사랑 고백 등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붙었다. ▲높은 계절학기 수강료 비판 ▲제한적학점포기제를 취소한 학교에 사과 요구 등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자보 역시 적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2000년대 초반보다 대자보 붙은 횟수가 소폭 늘었다. ▲채플 출결 강화 규정 반대 대자보 ▲신임교수 청빙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 등이 있었다. 2005년 학생 세 명은 채플 출결 규정을 강화한 교목실의 결정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를 썼던 김인욱(산업정보 00) 씨는 ‘교목실장님께 드리는 글’의 제목으로 채플 출결 규정 강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본지 89호에 공개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대자보가 붙은 횟수는 감소하다 2013년도에 증가했다. 2013년 본지에 기록된 대자보 네 장 중 세 장은 총장 인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주재원 교수는 “대자보는 내용(Contents)이 중요한 것이다. 2013년에 대자보가 증가한 이유는 총장 인선이라는 한동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이슈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2013년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대자보가 붙은 횟수는 매년 0~1회 내에 그쳤다.

 

‘소통의 부재’가 낳은 대자보

학내에 붙여진 대자보의 절반 이상은 학교 당국에 ▲요구▲반대▲문제 제기하는 대자보였다. 요구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동대 구성원들이 본인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작성했다는 점이다. 요구문은 총 열 번 중 일곱 번이 ▲이사회 ▲학교 당국 ▲교수 등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작성됐다. 요구문에는 ▲이사회에게 총장 인선 관련사과 요구 ▲교목실에 *포항노회 관련 사과 요구 ▲학교 당국에 도서관 정상화 요구 등이 있다.
반대 입장을 나타내는 대자보는 총 일곱 번 중 네 번이 ▲교목실 ▲총학 ▲학교 당국 등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표명했을 때 작성됐다. 반대문에는 ▲채플 강화 규정 ▲동성애에 관한 총학의 입장 표명 ▲노무현 전 대통령 별거에 대한 총학의 입장 표명 ▲윤상헌 교수 징계 등이 있다. 가장 최근 작성된 반대문의 사례로는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한동인 모임’에서 낸 대자보가 있다. 이는 5월 24일 교목실이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에 일방적으로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 입장을 발표한 것을 규탄하는 대자보였다.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한동인 모임’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학교 당국의 입장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내놓고 싶었다”라며 “대학은 어떤 사안에 대해 민주적 의견 수렴과 다양한 학내 주체들 간의 충분한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공식적인 입장을 선언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문제를 제기한 대자보의 절반은 학교 당국의 운영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미숙한 행정처리 ▲신임교수 채용절차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06년 *평교수연대는 신임교수 채용절차가 변경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 당국이 신임교수를 채용하는 과정에 최종적 권한을 가지는 것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이외 대자보는 ▲역사 대안교과서 사용 ▲학교식당의 부실한 운영 ▲송전탑 설치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였다.
한편, 대자보는 비판과 저항의 도구로 쓰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동 정신 회복을 위한 호소문 ▲총학의 결의문 ▲자치회의 생활관 수칙 철회 안내공지문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게시자 따라 달라지는 대자보

게시자가 속한 집단과 게시자가 게시하는 대자보는 서로 관련이 있다. 먼저 게시자의 집단과 대자보의 성격이다. 단체는 ▲요구 ▲문제 제기 ▲반대하는 대자보를 두루 게시한 반면 일반 학생은 반대, 총학생회 집행부(이하 총학)는 요구 및 캠페인에 위주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일반 학생이 붙인 다섯 개의 대자보 중 세 개는 총학, 나머지 두 개는 학교 당국에 대해 반발하는 대자보다. 반면 총학은 반대 입장을 표명한 대자보 대신 요구와 캠페인에 관한 대자보를 많이 붙였다. 캠페인을 다룬 대자보에는 ▲사석화 방지를 위한 문화캠페인 ▲주민등록 이전을 위한 캠페인 등이 해당한다. 다음은 게시자가 속한 집단과 대자보 게시의 빈도이다. 일반 학생과 단체는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대자보를 계속 붙이고 있지만, 총학은 2008년 이후로 대자보를 게시하지 않고 있다. 총학은 대자보를 붙이지 않는 경우 히즈넷 및 인트라넷에 글을 게시하거나 학교 당국에 직접 공문을 보냈다.

사라진 대자보

벽에 붙은 대자보가 사라진 적도 있다. 대자보가 철거된 사례는 다섯 번이며 모두 학내 사안을 다뤘다. 자진 철거 한 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강제로 철거된 것이다. 이 중 학교 당국에 의해 철거된 것은 ▲이사회에게 총장 인선 관련 사과문 ▲학생간행물 발간 규정을 요구하는 대자보로 두 번이다. 교수에 의해 철거된 적 역시 두 번이다. ▲유영익 교수 임용 반대 ▲역사 대안교과서에 대한 대자보가 철거됐다. 두 대자보는 게시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른 교수에 의해 제거된 사례다. 철거자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교목실에 *포항노회 관련 사과를 요구한 대자보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주 교수는 “강제로 철거하는 것은 소통의 의지가 없고 커뮤니케이션의 미숙한 형태가 표현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발 늦은 학외 관련 대자보

학외 사안을 다룬 대자보는 학내 사안을 다룬 대자보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붙기 시작했다. 학내관련 대자보는 2000년대 이전부터 게시됐던 반면, 학외 관련 대자보의 게시가 확인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비공식적인 온라인 게시판에서의 논쟁을 제외하고 공식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시 학생들은 i2(교내 인트라넷)에서 찬성 및 반대의 답글을 달며 논쟁을 펼쳤지만, 대자보가 게시되지는 않았다. 총학 역시 학외 사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으나 시의성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2008년 제13대 총학 ‘유쾌한 동행’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두 달 늦게 표명했다. 당시 제13대 총학 이성우 정책국장은 “총학의 의사결정은 총학 내부의 전체적인 합의를 중시한다”라며 “이 때문에 여러 번 합의가 이뤄지다 보니 입장표명의 시기가 늦어진 것 같다”라고 밝혔다(본지 125호 2면 참조).
2015년 전국적으로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가 게시되자 교내에도 학외 사안을 다룬 대자보가 게시됐다. 이어 2016년에는 32명의 한동대 교수가 쓴 시국선언문 대자보가 붙었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주 교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는 한동의 정체성과 리더십의 방향성인 것 같다”라며 “우리 학교는 아직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중이기 때문에 미숙한 행정처리나 리더십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등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더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아날로그적인 대자보는 아직 살아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대자보의 ‘진정성’에서 찾는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천수만 개의 글보다 직접 쓴 대자보는 자신의 생각을 더 강하게 낼 수 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중앙대학교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심각성이 큰 주제일수록 대자보 등 오프라인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시간과 노력이 더 드는 대자보는 휘발성이 큰 온라인 콘텐츠와 달리 ‘사안을 쉽게 넘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학생간행물규정 제3장 제14조: ①홍보물을 게시 또는 배부하고자 하는 단체(개인)는 홍보물 제작(발간) 및 배부 허가원에 홍보물 내용원고를 첨부하여 지도교수나 학과(부)장의 승인을 받아 학생처장에게 제출한다. ②학생처장은 제출된 홍보물의 배부 또는 게시를 허가하는 검인을 날인한다.
*고려대 학칙 제53조(사전신고): 학생단체 또는 학생이 다음 각호의 행위를 하고자 할 때에는 소속 대학장 또는 학생처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①광고·인쇄물의 교내 부착과 배부 ②교내 시설물의 점유·사용 ③외부 인사의 학내 초청
*한소리 단체: 2007년 GLS 교수임용 절차를 두고 문제를 느낀 소수의 일반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모임
*포항노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산하로써 시무목사 15명과 15곳 이상의 당회(교회) 및 교인 2,000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기관이자 회합이다.
*평교수 연대: 일부 한동대 교수로 구성된 비공식단체이다. ‘신임교수 임용절차에 문제 있다’라는제목의 글을 2006년 10월 26일, 11월 7일, 11월 22일 세 차례에 걸쳐 히즈넷에 올린 적이 있다.

 

'동성애에 대한 한동대학교 입장'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훼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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