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은 마을이 전에 없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모습 뒤로 벽화마을은 몸살을 앓고 있다. 무분별한 그림, 관광객의 낙서, 지역민의 갈등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벽화마을의 상태와 주민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직접 찾아가 벽화마을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에 귀 기울여 봤다.

바래진 벽화와 고유성을 상실한 마을

▲ 모자이크로 꾸며진 계단이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종로구 낙산에는 산 아래부터 정상까지 집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이화 벽화마을이 있다. 드라마와 예능에 자주 조명될 정도로 인기 있는 벽화마을이었지만 희미해진 벽화와 관광객의 낙서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었다. 한창 관광객이 많은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의 많은 상점이 굳게 닫혀있었다. 간간히 카페와 기념품 파는 곳만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문을 열어 놓았다.
벽화에 칠해진 페인트는 특성상 지속해서 보수하지 않으면 때가 타고 색이 바래지기 쉽다. 이화마을 중앙에는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날개 그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특히 흰색으로 칠해진 그림들은 금방 흉물이 되곤 한다. 마을에서 만난 토끼 캐릭터는 누렇게 때가 타 털갈이가 필요해 보였다. 또한, 벽화 곳곳에 많은 낙서가 벽화를 덮고 있어 벽화가 잘 보이지 않았다. 카페를 돋보이게 하려고 그려진 많은 벽화에는 관광객들의 수많은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도시나 마을은 그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화 벽화마을의 벽화는 그 정체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화 벽화마을은 오래된 집들과 비좁은 골목길 등 1980년대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서울에 몇 안 되는 성곽에 자리한 역사성이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우선시한 이화 벽화마을은 마을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벽화사업이 진행됐다. 마을과 무관한 만화와 영화 속 캐릭터 그림은 물론이고 작가 개인의 정서만이 담긴 그림들이 마을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또한, 마을 외진 곳 군데군데 락카로 그려진 *그라피티(Graffiti)는 마을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마을의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둘러본 이화 벽화마을은 마을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 이화 벽화마을에 들어서자 낙서가 된 벽이 보인다. 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벽화사업이 빚어낸 불협화음

마을 개발에 따른 편익은 주민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장사하며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얻는 주민의 경우 관광객에게 긍정적이지만 장사하지 않는 주민들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이 썩 달갑지 않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객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쓰레기를 참다못해 벽화를 지웠다. 장사하지 않는 주민들은 피해만 보고 얻는 이득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화 벽화마을 정상으로 향하는 두 개의 긴 계단에는 주민들의 손에 지워진 얼룩덜룩한 그림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주민은 “우리 집 앞에 술 먹은 사람도 있고 저 지붕 위에 똥 싸놓은 사람도 있었어”라며 관광객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 원래는 올라갈 수 있었던 듯 하지만, 현재는 통행이 금지돼 있었다. 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반대로 이화 벽화마을에서 장사를 하는 있는 통장님의 경우 “쓰레기가 막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고지금은 아예 청소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리고 딱 밤이 되면 조용해요”라며 주민들이 받는 피해가 크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카페 ‘개불’ 사장 최홍규 씨의 경우 초창기 벽화사업 때 허름한 집을 구입해 리모델링하고 근사하게 꾸며 카페를 차렸다. 벽화 사업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동전의 양면이랑 똑같은 거야. 이런 재생사업을 하면서 전혀 주민들이 피해를 안 본다고 할 수 없어. 최소화할 수밖에.” 최 씨는 피해를 감수하면서라도 마을의 활성화를 위해 벽화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관광객이 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카페로 건물값을 노린 기회주의자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화 마을을 개선하기 위해 진행된 벽화 사업은 주민들 간에 갈등만 깊어지게 하고 있었다.
바래지고 낙서로 지저분해진 벽화, 지역의 고유성을 고려하지 않는 예술 사업은 벽화마을의 원래의 취지를 퇴색시켰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관광지화에 주민들의 사이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 골목 골목 관광객들의 소란을 참지 못한 주민들의 흔적이 보인다. 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벽화마을

▲ 페인트가 아닌 모자이크로 단장한 소현리 벽화마을의 모습. 장민용 사진기자 jangmy@hgupress.com

경주 소현리와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은 이화 벽화마을이 겪은 벽화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한 벽화마을이다. 지역 고유의 설화가 표현된 벽화와 새로운 벽화 재료는 소현리 벽화마을만의 차별점이다. 소현리 벽화마을에는 다른 벽화마을과 달리 모자이크로 된 타일 벽화가 마을을 수놓고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도자기 파편들의 투박함과 아름다운 색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소현리의 모자이크 타일 벽화는 기존의 페인트를 이용한 벽화의 단점인 쉽게 지워지고 때 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타일을 주재료로 이용했다. 덕분에 쉽게 변색되지 않아 관리가 수월하다. 모자이크 타일 벽화는 벽에 밑그림을 그린 후 점토판을 가마에 구워 만든 타일을 벽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또한, 소현리 벽화마을은 마을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진덕여왕, 최진립 장군, 백탑 등 마을 설화를 벽화의 컨셉으로 삼았다. 마을 큰길을 따라 펼쳐진 모자이크 타일 벽화에는 벽화뿐만 아니라 소현리 마을의 설화를 담고 있어 관광객에게 마을의 역사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를 제공한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주민 공동의 경제적 이익 창출을 통해 주민 갈등을 해소한 마을이다. 초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없어 이화마을 주민과 같은 문제에 처해 있었다. 이에 동피랑 벽화마을 주민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전 주민 80가구가 모여 생활협동조합 ‘동피랑 사람들’을 만들었다. 동피랑 사람들은 동피랑 마을이 정부 지정사업 ‘마을기업’에 선정된 뒤 5,000만 원을 후원받아 주민 자체적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경제적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을의 갤러리, 공판점, 상점 등을 통해 얻은 수익을 지역주민과 공유하고 있다. 더불어, 동피랑 사람들은 벽화 기념품을 만들 때 검사 및 공정 일부를 60세 이상 마을 주민의 집에서 할 예정이다. 이처럼 동피랑 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문화와 관광이 결합된 벽화마을의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사진을 찍고 지나친 벽화 뒤에 벽화 그림만큼 다양한 주민들의 사정이 있다. 마을을 변화시키려는 사람,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주민들까지 만족시키는 벽화마을이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한 듯 하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벽화마을이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라피티(Graffiti): 벽이나 화면에 스크래치 기법이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는 방법으로 그린 낙서같은 그림이나 문자.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