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비상식적인 일이 자행되는 성역의 공간들이 있다. 대학 내 랩이 바로 그곳이다. ‘진로’라는 권력을 쥔 교수는 연구실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 폭언이나 횡령에 대해 학생들은 쉽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대학마다 그 수위는 다르나 랩 내 수직적 구조는 결코 상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정직과 아너 코드를 운운하는 한동대도 성역은 아니었다.
한 동문의 제보로 인해 한동대의 몇 교수들이 연구실 내 학생 인건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취재 결과 일부 랩에서는 학생 연구원 통장으로 들어온 인건비 중 일부를 제하고 공금 통장으로 보내는 것이 원칙화돼있음을 확인했다. 확인하지 못한 랩까지 고려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르는 실정이다. 연구 책임자인 교수는 인건비를 추가 지급받기 위해 연구실과 관련 없는 학생 명의를 빌려 연구원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모인 랩 공금은 냉장고와 같은 생필품이나 회식비, 혹은 대학원생의 급여로도 쓰였다. 그러나 정작 랩에 소속된 연구원들은 공금의 규모나 사용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공금 지출에 관련된 사항은 담당 연구원이나 교수만 알고 있어 공금이 랩과 전혀 관계없는 일로 지출돼도 이에 대해 연구원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가에 만연한 연구비 유용에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연구비가 부족해서, 운영비가 부족해서, 혹은 대학원생에게는 인건비가 지급되지 않아서’ 등, 이유는 많다. 10년째 해묵은 이 문제가 결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님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옳은 일을 선택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점에서 마땅한 책임이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에 있는 학생들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명의를 요구하거나 인건비의 일부를 보내게 해 인건비 유용에 동참시켰다는 점에서 교수자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학생 연구원이 명의도용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명의를 도용한 것 또한 권력 남용이다.
아너 코드를 배우고 정직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한동대에서 교육자의 연구비 유용은 좀 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겠다는 무감독 시험 제도는 결과주의적인 시대에서 ‘양심적인 과정’에 초점을 두는 제도다. 이를 배웠을 선배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이를 외면했다. 학교 밖에서 만난 세상에서 끝내 결과주의적 마인드에 굴복한 것일까. 남들 다하는 세상에서 도태되기 싫었던 걸까. 두 명의 교수 모두 아너 코드의 교육을 받았던 선배들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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